일요일 11시에 방영하는 진품명품 시간은 우리 고미술품의 진가를 확인하는 국내 유일의 고미술 감정 프로그램으로 시청률이 높다. 이를 통해 고미술품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옛 것에 대한 안목을 키워 조상이 남긴 유산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고미술품의 주제로 자주 소개되는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는 주로 8폭 병풍으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회화의 소재로 등장하는데 이에 대한 내용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회화(繪畵)는 중국 후난성(湖南省) 소수(瀟水)와 상수(湘水)가 합류하는 곳의 경치를 여덟 폭으로 그린 산수화를 말하는데 소수와 상수는 중국 후난성 동정호(洞庭湖)의 남쪽 영릉(零陵) 부근으로,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그린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중국에서는 북송(北宋)의 이성(李成. 919 ~ 967년 추정, 북송 북해(北海) 영구(營丘) 사람. 당나라의 종실(宗室) 출신의 화가)에 의해 처음으로 소상팔경도가 그려졌고, 송적(宋迪 : 북송대(北宋代)의 문인이면서 화가 소상팔경도를 그린 이후, 팔경(八景)은 승경(勝景) 또는 절경(絶景)을 가리키는 단어로 자리 잡았다.)도 이른 시기에 ‘소상팔경’을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일찍부터 전해져 크게 유행하였다.
소상팔경은 이미 고려시대부터 그려졌다고 여겨진다. 조선시대에는 초기부터 말기까지 줄곧 유행하였으며 조선 후기의 민화(民畵)에서도 종종 그려졌다. 따라서 중국의 문화나 미술이 우리나라에 언제 어떻게 전해지고 어떠한 변모를 겪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소상팔경도는 이미 고려시대 명종(明宗) 연간(재위 1170∼1197)에 그려졌다. 명종은 문신들에게 소상팔경을 소재로 글을 짓게 하고, 이녕(李寧)의 아들 이광필(李光弼)에게 그림으로 그리게 하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후 260여 명의 선비가 팔경시 780편 6천여 수를 지었고 대표적인 인물로 고려시대 이인로와 이제현, 조선시대 안평대군과 서거정이다.
세종대 안평대군(安平大君)이 화가를 시켜 소상팔경도를 그리게 한 바 있고, 16세기에는 안견파(安堅派) 화가들이 빈번하게 그렸다. 조선 중기에는 이징(李澄), 김명국(金明國) 등이, 후기에는 정선(鄭敾), 심사정(沈師正), 최북(崔北), 김득신(金得臣), 이재관(李在寬) 등의 작품이 현전(現傳)하고 있다. 이 밖에 민화로 전하는 작품도 적지 않아 유행의 폭이 넓었음이 확인된다.
소상팔경도의 여덟 장면은 대체로 화첩과 병풍에 그리는데, 그 순서는 일정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개 ① 산시청람(山市晴嵐), ② 연사모종(煙寺暮鐘) 또는 원사만종(遠寺晩鐘), ③ 원포귀범(遠浦歸帆), ④ 어촌석조(漁村夕照 또는 漁村落照), ⑤ 소상야우(瀟湘夜雨), ⑥ 동정추월(洞庭秋月), ⑦ 평사낙안(平沙落雁), ⑧ 강천모설(江天暮雪) 등으로 구성되었다.
계절로 보면 봄·가을·겨울 장면이 주로 그려지고, 하루 중 아침이나 낮보다는 저녁이나 밤이 주로 표현되었다. 이는 시적(詩的)인 분위기와 운치를 중요시했던 때문으로 믿어진다. 이처럼 소상팔경도는 순수한 감상화의 대표적인 주제라 할 수 있다.
소상팔경을 주제로 시를 짓고 지은 시에 운으로 화답한 이제현(李齊賢)의 화박석재윤저헌용은대집소상팔경운(和朴石齋尹樗軒用銀臺集瀟湘八景韻)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한다. 익재(益齋)선생에 대하여는 앞서 여러 번 소개하였기에 생략하도록 하겠다.
화박석재윤저헌용은대집소상팔경운(和朴石齋尹樗軒用銀臺集瀟湘八景韻 : *박석재(朴石齋)ㆍ*윤저헌(尹樗軒)의 *은대집(銀臺集)의 소상 팔경(瀟湘八景) 운으로 지은 것에 화답하다)
1.산시청람(山市晴嵐 : 산촌의 맑은 기운이 감도는 풍경)
漠漠平林翠靄寒(막막평림취애한) 아득한 평야의 숲에 푸른 안개는 차고
樓臺隱約隔羅紈(누대은약격나환) 숲 속의 은은한 누대는 비단이 가렸구나
何當捲地風吹去(가당권지풍취거) 어이하여 바람은 불어 땅을 휩쓸어 가는가
還我王家著色山(환아왕가저색산) 나에게 왕가(王家 : 왕선(王詵) 중국 북송의 귀족화가)의 착색산(着色山: 채색으로 그린 산수화)을 돌려주겠나
2.원사만종(遠寺晩鍾 : 먼 산사의 저녁 종소리)
一幅丹靑展不封(일폭단청전불봉) 한 폭의 단청을 펼쳐 놓으니
數行水墨淡還濃(수행수묵담환농) 두어 줄의 수묵이 흐리다가 도로 짙어지네
不應畫筆眞能爾(불을화필진능이) 그림 그리는 붓으로 진정 그릴 수 없는 것은
南寺鍾殘北寺鍾(남사종잔북사종) 남쪽 절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종소리와 북쪽 절 종소리
3.원포귀범(遠浦歸帆 : 멀리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行舟賈容似兒童(행주가용사아동) 배 뛰우는 장사꾼들은 아이들과 같아서
香火人人乞順風(향화인인걸순풍) 사람마다 향불 사르며 순풍을 비네
賴是湖神能抸應(뢰시호신능잡응) 호수의 신이 여러 사람 소원 다 이뤄주어
衆帆齊擧各西東(중범제거각서동) 모든 돛이 한꺼번에 올라 제 각기 서로 동으로
4.어촌낙조(漁村落照 : 석양에 물든 한적한 어촌 풍경)
落日看看銜遠岫(낙일간간함원수) 떨어지는 해는 점점 먼 산봉우리로 접어들고
歸潮咽咽上寒汀(귀조인인상한정) 돌아오는 조수는 철썩철썩 찬물 가에 오른다
漁人去入蘆花雪(어인거입로화설) 고기 잡는 사람들은 흰 갈대꽃 속으로 들어가니
數點炊煙晩更靑(수점취연만경청) 몇 몇 밥 짓는 연기는 날 저물니 더욱 푸르네
5.소상야우(瀟湘夜雨 : 소강 상강에 밤비 내리는 풍경)
楓葉蘆花水國秋(풍엽로화수국추) 단풍잎과 갈대꽃 수국의 가을인데
一江風雨灑扁舟(일강풍우쇄편주) 강바람이 비를 몰아 조각배에 뿌리네
驚廻楚客三更夢(경회초객삼경몽) 놀라 돌아오니 고달픈 나그네의 한밤중 꿈을
分與湘妃萬古愁(분여상비만고수) *상비의 만고 시름을 나누어 주리
*상비(湘妃)는 요(堯) 임금의 두 딸이며 순(舜) 임금의 두 비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고, 반죽(斑竹)은 아롱진 무늬가 있는 대나무로 전설상 옛날 순(舜) 임금이 창오산(蒼梧山)에서 별세하자, 아황과 여영이 소상강(瀟湘江)을 건너가지 못하고 통곡하면서 피눈물을 대나무에 뿌렸는데, 그후 대나무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나 반죽(斑竹)이 되었다 한다.
6.동정추월(洞庭秋月 : 가을달 비추는 동정호의 풍경)
三更月彩澄銀漢(삼경월채징은한) 삼경의 밝은 달빛 은한이 맑은데
萬頃秋光泛素濤(만경추광범소도) 만 이랑의 가을빛이 흰 파도에 떠 있네
湖上誰家吹鐵笛(호상수가취철적) 호수 위의 누구 집에서 쇠젓대를 부는고
碧天無際雁行高(벽천우제안행고) 푸른 하늘 끝없는데 기러기 떼 높구나
7.평사낙안(平沙落雁 : 강변 모래에 내려앉는 기러기)
行行點點整還斜(행행점점정환사) 줄줄이 점점이 바로 날다 비껴 나는 저 기러기
欲下寒空宿暖沙(욕하한공숙난사) 찬 허공을 내려와 따뜻한 모래밭에서 자려하는데
怪得翩翻移別岸(괴득편번이별안) 이상히도 펄펄 날아 다른 언덕으로 옮기는 것은
舳艫人語隔蘆花(축로인어격로화) 뱃사람들 갈대꽃을 사이에 이야기하기 때문이리라
8.강천모설(江天暮雪 : 눈 내리는 저녁 강변의 풍경)
枊絮飛空欲下遲(유서비공욕하지) 버들개지는 허공에 날면서 더디 내리려는 듯
梅花落地亦多姿(매화낙지역다자) 매화꽃은 땅에 떨어져도 역시 자태가 많이 남았고
一樽且盡江樓酒(일준차진강루주) 강 누각에서 한 독의 술을 다 마셔 비웠고
看到蓑翁捲釣時(간도사옹권조시) 도롱이 입은 어옹의 낚싯줄 거둘 때를 지켜보노라
*박효수(朴孝修 ? ~ 1337) 고려후기 밀직부사(密直副使), 대언(代言,承旨)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석재(石齋). 고시관(考試官)을 지냈으며 1321년에는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다. 원나라에 상서(上書)하여 상왕(上王)을 환국하게 하려고 노력하였으며, 평소에 지조가 있고 청렴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윤혁(尹奕 ? ~ ?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의 문신으로 호는 저헌((樗軒). 밀직사(密直司), 고시관(考試官 : 과거의 시험관), 대제학 (大提學) 등을 지냈으며, 이제현(李齊賢)의 《익재난고(益齋亂稿)》에 그에게 화답한 시가 실려 있다.
*은대집(銀臺集 : 고려후기 문인 이인로(李仁老)의 고시·율시·고부 등을 수록한 시문집. 이인로 자신이 평생에 지은 저서를 모아 손수 편찬한 것이라고 하나, 지금은 일실(逸失)되어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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