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이달 시 2 수 불일암증인운석, 호운(李達 詩 2首 佛日庵贈因雲釋, 呼韻)

이달(李達. 1561~1618) 조선 중기 선조(宣祖) 때의 한시인(漢詩人)이다. 본관은 신평(新平)이고, 자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蓀谷)이며, 동리(東里)·서담(西潭)이라고도 한다. 충청남도 홍주(지금의 홍성)에서 매성공(梅城公) 이기의 후손인 이수함(李秀咸)과 홍주 관기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시의 대가로 문장과 시에 능하고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으나, 신분적 한계로 벼슬은 한리학관(漢吏學官)에 그쳤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에 힘써 이백(李白)과 성당십이가(盛唐十二家)의 작품들을 모두 외울 정도였다. 시문에 뛰어난 정사룡(鄭士龍)과 박순(朴淳) 등의 문인(門人)으로, 특히 당시풍(唐詩風)의 시를 잘 지어 선조 때의 최경창(崔慶昌)·백광훈(白光勳)과 함께 삼당파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의 대표적인 시 2수를 행서와 예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불일암증인운석(佛日庵贈因雲釋 :  불일암 인운 스님에게 주다)

寺在白雲中(사재백운중) 절은 흰 구름 속에 싸여 있고

白雲僧不掃(백운승불소) 구름이라 스님은 쓸 수가 없네

客來門始開(객래문시개) 객이 찾아옴에 비로소 절 문을 열어보니

萬壑松花老(만학송화로) 온 골짜기 송화 꽃 다 쇠었음을....

 

깊고 높은 산중, 흰 구름 속에 묻혀 있는 암자에 그 흰 구름을 어찌 낙엽 쓸어내듯 쓸 수 있으랴. 이 착상부터가 범상한 시안으로는 잡지 못할 만큼 재치가 번득인다. 속세의 손님이 찾아옴에 비로소 암자의 출입문을 연다. 참선하는 스님인 데다가 깊은 산속이니 사립문을 닫아 둘 까닭이 없겠지만, 누렇게 흩날리던 송화 가루도 멈추었으니, 계절이 그만큼 바뀌었음을 불일암의 중이 놀라워함을 나타냈다. 산뜻하고 깔끔한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호운(呼韻 : 운자를 불러 읊다)

曲欄晴日坐多時(곡란청일좌다시) 맑은 날 굽은 난간에 오래도록 앉아서

閉却重門不賦詩(폐각중문불부시) 겹문을 닫아걸고 시도 짓지 않는다네

墻角小梅風落盡(장각소매풍락진) 담장 구석 작은 매화 바람에 다 떨어지니

春心移上杏花枝(춘심이상행화지) 봄 마음은 살구꽃 가지 위로 옮겨가누나

 

위 시에 대하여 홍만종(洪萬宗)이 지은 '소화시평(小華詩評)'이라는 시화집(詩話集)에 소개된 내용이 재미있다. 이달이 하곡(荷谷) 허봉(許篈) 선생과 친하게 지냈는데 허봉의 동생 허균(許筠)이 볼품없는 이달을 모습을 보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자 허봉이 이달에게 시 한 수를 청하며 운자를 불렀는데 이달은 즉석에서 지은 시가 呼韻 시이다. 허균은 이 시를 접하자마자 자신의 태도를 사죄하고 제자로서의 도리를 다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