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을지문덕 여수장우중문시(乙支文德 與隋將于仲文詩)

며칠 전 을지로 3가 역에 있는 주요 거래처에 다녀오는 길에 문득 이 시가 생각나서 자서해 보았다. 모든 분들이 익히 알고 있는 시지만 을지로는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중국은 이제 세계 제2의 대국이다. 동북공정 진행 등 갈등의 씨앗도 커져 가겠지만 한때 중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연개소문, 강감찬, 을지문덕, 양만춘 장군 등의 기개를 재조명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여수장우중문 시는 고구려 내륙까지 깊숙이 들어온 우중문 장군에게 경고용으로 써 준 시이다. 고구려 영양왕 23년(서기 612년) 중국 수 나라의 양제가 직접 113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출발하는 데만 무려 40일이 걸린 수나라 군대는 고구려 요동성을 끝내 뚫지 못하고 두 달이나 요하에서 지체하자 여름이 되어 전염병이 도는 등 문제점이 많았다. 
그래서 수 양제는 우중문이라는 장수에게 30만 55천 명의 정예부대를 주어서 압록강 상류로 돌아서 평양을 치라고 지시하였다. 을지문덕은 전략적 후퇴를 거듭하여 우중문의 선발 주력부대를 그들의 본대와 점점 멀어지게 하면서, 매복해 있던 고구려군이 식량을 운반하는 수나라군을 잡아 버리도록 지시를 해 두었다.
쾌속질주로 대동강까지 쫓아온 우중문은 을지문덕으로부터 갑자기 "당신이 싸움에 이겼다고 인정할 테니 좀 돌아가 달라."는 내용의 이 시를 받고서야 자기네 부하들을 되돌아보니 부하들이 심히 피로한 데다 식량 보급까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형편이었다. 뒤늦게 본국으로 후퇴를 명령했으나 살수(청천강)라는 강물을 건너가다가 고구려 군대가 미리 막아 놓고 있던 강물을 터뜨려 다 죽고 겨우 2,700명만 살아서 돌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을 수백 년 만에 통일하였던 수 나라는 고구려를 이기지도 못하면서 전쟁을 너무 오래 끌어 결국은 국력이 쇠진하여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 : 수나라 장군 우중문에게 주는 시)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귀신같은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오묘한 꾀는 땅의 이치를 깨우쳤네.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싸움에서 이겨 그 공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원컨대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이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