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영하 10도를 밑도는 혹한의 날씨 때문인지 바깥활동 보다 집에 있다 보니 길어 책 속에 빠져 있거나 글 쓰는 시간이 늘어간다. 요즘 즐겨 읽은 책이 동의대 중국어학과 강경구 교수가 성철선(性徹禪)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공부 법을 안내한 〈정독(精讀) 선문정로(禪門正路)〉인데 내용 자체가 어렵고 한문 문장으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불교용어가 많아 한 문장을 이해하려면 시간이 제법 걸리기도 하는데 이런 부분을 쉽게 풀어 불교에 문외한(門外漢)인 나도 접하는데 큰 무리가 없는 책이다. 완역한 강경구 교수님의 노고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특히 〈선문정로〉는 화두 참구 수행자들에게는 교과서 역할을 했으나 이 책에서 ‘돈오돈수(頓悟頓修 : 깨달음 이후에는 수행이 필요 없음)’를 강조하는데 이는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의 ‘돈오점수(頓悟漸修 : 깨달음 이후에도 수행은 지속돼야한다)’ 사상을 정면 비판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북교계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킨 책이라 한번 읽어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해 긴 긴 겨울밤을 같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앞서 남송시인(南宋詩人) 육유(陸游)와 당완(唐玩)의 채두봉(釵頭鳳)에서 소개한 바 있는 육유는 생전 2만 여 수의 시를 지었다고 하나 현전(現傳)하는 것은 9200여 수라 하니 실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의 시 2수를 살펴보고자 하는데 그중 한 수는 동야독서시자율(冬夜讀書示子律)로 겨울밤 책을 읽는 아들 자율에게 훈시하는 내용으로 총 8수가 있는데 그 중 세 번째 시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절실한 마음으로 배우고 익혀야 하나 책 속에서 얻는 지식은 한계가 있어 오로지 실천을 통해서 그 실체를 깨달아야 한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이처럼 육유의 시는 깊이 있는 내면의 성찰을 반영하고자 하는 철학적 요소를 담고 있는 명시와 함께 춘우(春雨) 한 수를 행서체로 남겨 보고자 한다.
동야독서시자율(冬夜讀書示子律 : 겨울밤 책을 읽는 아들 자율에게 훈시함) - 其三.
古人學文無遺力(고인학문무유력) 옛사람들은 평생 힘을 다해 학문에 매진함에 있어
少壯工夫老始成(소장공부로시성) 젊어서 학문을 닦아 노년에 비롯 성공을 이루었네
紙上得來終覺淺(지상득래종각천) 책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
絶知此事要躬行(절지차사요궁행) 이 같은 사실을 깨달아 반드시 몸소 실천해야 하느니라
춘우(春雨 : 봄비)
春陰易成雨(춘음이성우) 봄날 흐린 날씨 비가 내리기 쉬우나
客病不禁寒(객병불금한) 병든 나그네는 추위를 견디기 어렵네
又與梅花別(우여매화별) 올해도 봄비로 흩날리는 매화와 이별하니
無因一倚欄(무인일의란) 난간에 기대어 꽃을 볼 겨를도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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