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船橋莊)은 강릉시 운정동에 위치한 조선시대 사대부가 한옥 고택이다. 고택의 인공연못 가운데 세워진 누각이 활래정(活來亭)이다. 활래정은 주희(朱熹)의 관서유감(觀書有感 : 책을 읽는 감흥)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두 자(活,來)를 따온 것으로 앞서 소개한 바 있는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
주희 관서유감(朱熹 觀書有感)
半畝方塘一鑑開(반무방당일감개) 반이랑 방정한 연못이 거울처럼 열리니
天光雲影共徘徊(천광운영공배회)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이 연못 안에 떠 있네.
問渠那得淸如許(문거나득청여허) 묻노니 이 연못이 이리 맑은 까닭을
爲有源頭活水來(위유원두활수래) 샘에서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라네..
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면 누가나 알고 있는 주희의 대표적 시로 독서의 즐거움은 마치 학문의 근원이 맑은 샘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깨끗한 물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1 급수 맑은 물에 사는 가재는 조금이라도 혼탁하거나 오염된 환경에서는 살 수 없듯이 맑은 샘에서 발견되는 가재는 학문적 근원의 상징으로 등장하는데 그 대표적 시 2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시에서 강호(江湖)는 세파에 물든 혼탁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비유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15세에 지었다는 가재(石蟹 : 석해) 시와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의 시 2수가 있는데 신독재 선생은 걸음걸이가 게걸음과 비슷하여 핀찬을 받곤 했는데 혼탁한 세상을 등지고 맑고 깨끗한 곳에서 살아가는 가재를 등장시켜 우회적으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했을 것이다. 두 시가 일맥상통(一脈相通)하고 있어 이를 살펴보고자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석해(石蟹 : 가재) 其一. - 퇴계 이황(退溪 李滉)
負石穿沙自有家(부석천사자유가) 돌을 지고 모래를 파니 절로 집이 되고
前行卻走足偏多(전행각주족편다) 앞으로 가고 뒤로도 빼며 다리는 많기도 해라
生涯一掬山泉裏(생애일국산천리) 한평생 한 움큼 산속 샘물 속에 살면서
不問江湖水幾何(불문강호수기하) 강호의 물이 얼마인지 묻지 않는다네.
其二. - 신독재 김집(愼獨齋 金集)
前步有能後步能(전보유능후보능) 앞으로도 잘 걷고 뒤로도 잘 걷고
背石穿砂自作家(배석천사자작가) 돌을 지고 모래를 뚫어 자기 집을 짓네
靑山一脈寒泉裏(청산일맥한천리) 청산 속에 차디찬 한줄기 샘 속이지만
不願江湖萬里波(불원강호만리파) 강호만리의 물결은 원치 않는다네
퇴계(退溪)라는 호는 이황 선생이 살던 고향의 시냇물 이름에서 유래하였는데 그 시내 이름이 원래부터 퇴계가 아닌 토끼 토(兎) 자를 쓴 토계(兎溪)였고, 지금은 흙 토(土) 자를 써서 토계(土溪)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러나 퇴계는 이를 고쳐 퇴계를 고치고 자호(自號)로 삼았다고 한다.
관직에서 완전히 물러나기로 마음먹고 고향인 토계로 돌아와 46세쯤 시냇가에 계상서당(溪上書堂)이라는 작은 집을 짓고 나서 소회(所懷)를 쓴 ”시냇가로 물러나다(退溪)”라는 시다.
퇴계(退溪)
身退安愚分(신퇴안우분) 몸 물러나니 어리석은 분수 편안하나
學退憂暮境(학퇴우모경) 배움이 퇴보하여 늘그막이 걱정이네
溪上始定居(계상시정거) 시냇가에 비로소 자리 잡으니
臨流日有省(임류일유성) 물줄기 굽어보며 하루를 돌이켜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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