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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다산 정약용 독소(茶山 丁若鏞 獨笑)

혹한의 절정이 지나고 나면 곧 봄이 다가올 것이다. 과거 200여 년 전 정약용은 1801년 신유옥사(辛酉獄事 : 조선 말기인 1801년에 일어난 천주교도 탄압사건)로 영일군 장기현에 유배되었다가 황사영백서(黃嗣永帛書 :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黃嗣永. 1775~1801)이,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일어나자 신앙의 자유를 강구하기 위해 당시 베이징(北京)주교에게 보내고자 했던 청원서. 두 자 가량 되는 명주천에 썼기 때문에 ‘백서(帛書)’라고 하는데, 깨알같이 작은 1만 3311자나 되는 방대한 내용의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다.)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이배(移配) 되어 사의재(四宜齋)에서 기거하였다.

1804년 가을 다산이 강진 유배시절 43세에 느낀 인생의 모순과 한계에 대해 독소(獨笑)라는 시를 지었다. 18년 유배기간 중 약 500여 권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를 남겼는데 당시 인생의 혹한기는 단연 유배시절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 역시 윤상도(尹尙度) 상소에 연루되어 사형을 면하는 대신 제주도에서 약 9년간 유배기간 중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이 당대 천재들은 매경한고발청향(梅經寒苦發淸香 : 매화는 혹한의 추위를 겪어야 맑은 향기를 뿜어낸다)처럼 한고(寒苦)의 세월을 겪으며 자기완성의 시간을 가졌으리라. 매화향기 가득찬 봄을 기다리며 다산선생 시 독소를 행서체로 자서(自書)해 보았다.

 

독소(獨笑 : 혼자 웃다)

有粟無人食(유속무인식) 곡식 있어도 먹일 자식 없고

多男必患飢(다남필환기) 자식 많으면 주릴까 걱정

達官必憃愚(달관필창우) 높은 벼슬아치는 영락없이 바보

才者無所施(재자무소시) 영리한 자는 재능 써먹을 자리 없네

家室少完福(가실소완복) 집집마다 복을 다 갖춘 경우 드물고

至道常陵遲(지도상능지) 지극한 도는 늘 쇠퇴하기 마련

翁嗇子每蕩(옹색자매탕) 아비가 절약하면 자식은 방탕하고

婦慧郞必癡(부혜낭필치)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어리석으며

月滿頻値雲(월만빈치운) 달이 차면 구름이 끼기 일쑤

花開風誤之(화개풍오지) 꽃이 피면 바람이 망쳐 놓누나

物物盡如此(물물진여차) 세상만사 죄다 이러한걸

獨笑無人知(독소무인지) 혼자 웃는 이유를 남들은 모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