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정점이 지나고 있다. 밤이 길어 집안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지필묵과 친하게 된다.
서예나 수묵화에 쓰이는 문방구로 종이, 붓, 묵, 벼루를 문방사우(文房四友)로 불린다. 먹(墨)은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벼루에 갈아서 먹물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먹은 식물을 태운 뒤 나오는 그을음에 아교와 향료를 넣고 반죽해 굳혀 만든 것으로, 보통 소나무를 태워 나오는 송연(松煙)을 재료로 사용하는데, 현대에는 광물성 그을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본래 먹은 한(漢) 나라 이후부터 이 소나무를 태워서 만든 송연묵(松煙墨)뿐이었다고 하는데, 중국의 경우 송(宋)나라 시대 장우(張遇)라는 사람이 식물성 기름을 태워서 유연묵(油煙墨)을 만든 이후 송연묵은 점차 밀려났다고 한다.
고대에는 종이, 붓과 함께 문자 기록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동아시아에 바탕을 둔 문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발명품 중 하나이다. 따라서 그만큼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데, 중국 은나라 시대에 처음 생겨나 삼국시대에 한반도에 전파되었다. 서양에서는 먹 대신 잉크가 사용되었다.
신라에서 당나라 및 일본으로 수출하는 주요 품목 었으며, 일본 정창원(正倉院 : 일본 황실의 창고)에는 신라 먹이 지금도 남아있다.
이처럼 많은 먹을 만드는 데는 많은 공정과 정성이 들어가는 힘든 작업이라 점점 그 명맥이 끊어지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 몇 년 전만 해도 벼루에 먹을 갈아서 글을 쓰곤 했는데 먹을 가는 시간에 마음의 정화, 쓰고자 하는 글귀에 대한 이해, 먹에서 풍겨지는 은은한 향기가 수양에 많은 도움이 되곤 했는데 지금은 편리하게 먹물을 사용한다.
다산 정약용은 앞서 소개한바 있다. 그의 시 음주 2수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음주(飮酒) 其一.
麴米醺皆好(국미훈개호) 술은 취하게 하니 모두가 좋아
雲和抱更斜(운화포갱사) 거문고를 게다가 비스듬히 안는다.
獨思千載友(독사천재우) 혼자서 천 년 전 벗을 생각하고
不向五侯家(불향오후가) 권세 있는 집안엔 가지도 않는다.
物態寧無變(물태녕무변) 만물이 어찌 변함이 없으리오
吾生奈有涯(오생내유애) 어이하여 우리 인생 죽음이 있을까
閒看庭日轉(한간정일전) 뜰을 옮겨 가는 해 그림자 보게나
花影幾枝叉(화영기지차) 꽃 그림자 몇 가지로 갈라지는가를
음주(飮酒) 其二.
細馬爭門入(세마쟁문입) 좋은 말은 다투어 문으로 들어오고
豐貂滿院來(풍초만원래) 고관들이 들어와 집에 가득하도다.
直愁衣帶熱(직수의대열) 우선 의대가 달아오를까 걱정되어
故傍酒家廻(고방주가회) 일부러 술집 곁으로 다가가보노라.
牢落聊全性(뢰락료전성) 듬뿍 마셔도 오로지 끄떡없어야 하나
嶔崎任散才(금기임산재) 고결한 자가 방탕해지기도 하노라.
所欣惟自適(소흔유자적) 스스로 만족함이 제일 기쁜 일
莫笑坳堂杯(막소요당배) 우묵한 집 술잔이라도 비웃지 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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