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용재 이행 시 3수 화경, 두견화, 제화(容齋 李荇 詩 3首 花徑, 杜鵑花, 題畵)

유월로 접어든 요즘 도로변에 노랗게 핀 금계국이 바람에 넘실거리며 바라보는 눈을 즐겁게 한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은 따뜻한 봄을 맞이해 만물이 소생하여 싹이 트고 사방이 싱그러운 생명력으로 가득 찬 희망의 토대 를 뜻하는데 그 위에 화란춘성(花爛春盛), 즉 꽃들이 만발한 왕성한 봄이 찾아와 우리를 반긴다.
지금이 그렇다.
내가 머무는 세종에도 잠깐 시간을 내여 주변을 살펴보면 온갖 꽃들이 피기를 자초(自招)하며 고운 자태로 지나가는 발길을 멈추게 한다.
소개하고자 하는 용재(容齋) 이행(李荇) 선생의 꽃길과 두견화 시는 그가 거제도로 이배(移配)된 1506년 봄날 지은 시다.
약 7개월간 유배생활 중 17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500여년 전 이맘때 거제도에서 활짝 핀 꽃길을 걸으며 용재선생의 시를 불러와 그때의 감흥을 함께 느껴 보고자 화란(花爛)의 사진과 함께 올려본다.
 
화경(花徑 : 꽃길)

無數幽花隨分開(무수유화수분개) 그윽한 꽃 수없이 나름대로 피어있고
登山小徑故盤廻(등산소경고반회) 산 오르는 오솔길을 까닭 없이 돌아가네
殘香莫向東風掃(잔향막향동풍소) 그나마 남은 향기 동풍 따라 쓸려가지 마오
倘有閑人載酒來(당유한인재주래) 혹시 한가한 이 있다면 술을 싣고 오리니
 
두견화(杜鵑花 : 진달래꽃)

三月旣云盡(삼월기운진) 삼월도 이미 다 가는 터라
餘花猶粲然(여화유찬연) 곱게도 피어 있는 많은 꽃들
色深西子頰(색심서자협) 그 빛이 미인의 뺨보다도 곱고
香壓逐臣顚(향압축신전) 향기는 쫓겨난 신하 머리 누른다
造物元非薄(조물원비박) 조물주는 원래 각박하지 않건만
人情強作憐(인정강작린) 인정은 애써 불쌍한 맘 일으키네
東風莫相迫(동풍막상박) 동풍아 이 꽃을 괴롭히지 말거라
更爲醉溪邊(갱위취계변) 다시금 시냇가에서 술에 취하노라
 
제화(題畵 : 그림에 시를 짓다)

淅瀝湘江雨(석력상강우) 쓸쓸히 상강에 비는 내리고
依俙斑竹林(의희반죽림) 얼룩무늬의 대나무 숲이 어렴풋해
此間難寫得(차간난사득) 이 가운데 그리기 어려운 것은
當日二妃心(당일이비심) 옛적 *아황과 여영 두 왕비의 마음이라네
*아황 여영(娥皇 女英 : 중국 고대의 임금 요(堯)의 두 딸. 자매가 모두 순(舜)에게 시집갔는데, 순이 천자(天子)가 되자 아황은 후(后)가 되고 여영은 비(妃)가 됨. 그 후 순이 죽자 강에 빠져 죽어 상군(湘君)이 됨)
 
 
용재 이행(容齋 李荇 1478~1534)은 조선 중기의 문신, 성리학자이며 시인으로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 별호는 청학도인(靑鶴道人), 어택어수(漁澤漁搜), 창택어수(滄澤漁水) 등이다. 박은(朴誾)과 함께 해동의 강서파로도 불렸다. 시호는 문정(文定), 문헌(文獻)이다.
1495년(연산군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벼슬은 좌의정에 이르렀다. 연현 이의무의 아들이고, 영의정 풍성부원군 이기의 동생이다. 생육신(生六臣) 성담수(成聃壽), 성담년(成聃年)의 외종질이며, 사육신 성삼문(成三問)은 7촌 재종숙이었다. 신사임당은 그의 당질부이고, 대학자 율곡 이이(李珥)의 재종조부이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제자인 최부(崔溥)의 문인이다.
 
1513년 김정(金淨), 박상(朴祥) 등이 단경왕후(端敬王后)의 복위를 상소했을 때는 선봉으로 강하게 비판 논박하고 처벌을 건의하였으나, 1519년의 기묘사화(己卯士禍)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1495년(연산군 1) 증광문과에 급제하고, 권지승문원부정자를 거쳐 예문관검열, 성균관전적 등을 역임했고, 성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했다. 연산군 때 응교(應敎 : 조선 시대에, 예문관에 속하여 왕명 제찬과 역사 편찬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정사품 벼슬)로 재직 중 왕의 폐비 윤씨의 추숭(追崇)을 반대하다가 1504년 갑자사화 때 충주로 유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 후 석방되고 교리로 등용, 1507년(중종 2)에는 명나라에 파견되는 중종의 책봉승습주청사의 서장관으로 연경에 다녀온 뒤 관직을 역임하였다. 대사간, 성균관사성, 대사성 등을 거쳐 대사헌에 이르러 조광조 일파와 갈등하다가 사직했다. 기묘사화 후 부제학으로 기용된 뒤 공조참판, 대제학, 공조판서, 의정부우참찬 겸대제학과 겸경연관, 좌참찬, 우찬성, 이조판서 등을 지내고 의정부 우의정에 올라 대제학을 겸했다. 그는 남곤(南滾) 등과 함께 기존 동국여지승람을 수정, 보완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편찬, 정리하였다. 문장에 뛰어나고 시문과 글씨에 재능이 있었으며, 그림도 잘 그렸다. 왕실의 외척이 된 김안로를 공격하다가 그의 미움을 받아 1531년 중추부판사로 좌천되었다가 함경도 함종으로 유배, 유배지에서 병으로 사망한다.
 
시를 잘 짓고 문장에 뛰어났으며, 글씨도 능하고 그림도 잘 그렸다. 그는 시를 짓는데 있어서 기교를 부리거나, 억지로 꾸미지 않으면서도 시상을 자연스럽게 전개하였다. 특히 오언고시(五言古詩)를 잘 지어 후대의 교산 허균(蛟山 許筠) 등에게 극찬을 받았다. 관료이면서 학자이기도 했던 그의 문하에서는 소세양(蘇世讓), 정사룡(鄭士龍), 이희보(李希輔) 등이 배출되었다.
 

주변에 핀 꽃들의 향연

샤스타데이지
찔레꽃
화란춘성 언덕
족제비사리
끈끈이대나물
바위취
자란
인동초
석잠풀
금영화(캘리포니아 양귀비)
작약
옹달샘
패랭이꽃
벌개미취
넝쿨콩
고삼
벼룩나물
누운 주름꽃
낙상홍 꽃
단풍나무 씨앗
옛 추억이 담긴 띠풀, 삘기, 삐피, 삐삐
산딸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