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이규보 운봉주로규선사 득조아차시지 여목위유차 사청시위부지(李奎報 運捧住老珪禪師 得早芽茶示之 予目爲孺茶 師請詩爲賦之)

요즘 어딜 가나 도심지나 동내에도 커피숍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전통 찻집은 찾기 힘들고 다도(茶道)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있어 변해가는 차문화(茶文化)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차 한잔 마시고 가시게~”의 끽다거(喫茶去)'라는 유명한 화두를 남긴 조주(趙州) 종심(從諗, 778~897) 선사는 중국 당나라 시대의 선승(禪僧)으로, 차를 선(禪)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14세에 출가하여 불문에 귀의한 조주는 일찍이 선의 본질을 꿰뚫어 고승(高僧)의 물음에 답할 때 막힘이 없었고 선문답(禪門答)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스스로도 참선의 화두를 많이 만들어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끽다거'다.

 

조주(趙州)가 그의 만년(晩年)에 줄곧 머물렀던 관음원(觀音院)에 있었을 무렵, 수행자 두 사람이 그를 찾아와 절을 올리고는 이렇게 물었다.

 

"불법(佛法)의 큰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에 조주 선사는 대답 없이 되물었다.

"이곳에 온 일이 있는가?"

수행자가 대답했다.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자 다시 조주 선사가 말했다.

"그러면 차나 한 잔 들고 가시게(喫茶去)."

곁에 있던 또 다른 수행자가 물었다.

"달마 대사가 서쪽에서 오신 큰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는 그에게도 똑같이 물었다.

"이곳에 온 일이 있는가?"

그러자 또 다른 수행자가 답했다.

"예, 한 번 있습니다."

이에 조주는 다시금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차나 한 잔 들고 가시게(喫茶去)."

옆에서 듣고 있던 원주(院主) 스님이 물었다.

"스님! 어째서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사람이나, 한 번이라도 온 적이 있는 사람이나 모두 '차나 한 잔 들고 가시게'라고 말씀하십니까?"

조주 선사는 원주를 조용히 바라보며 말했다.

"원주, 자네도 차나 한 잔 들고 가시게. 이것이 끽다거(喫茶去) 화두(話頭)의 유래다.

 

앞서 9년 전 노동(盧仝)의 칠완다가(七碗茶歌)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차를 마심에 있어 차의 3요소를 살펴보면 차를 다릴 때 잔잔히 코 끝으로 전해오는 차의 향기(茶香), 우려낸 찻잔에 드리운 은은한 차의 색(茶色), 차를 머금을 때 혀 끝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맛(茶味)인데 이는 색(色), 향(香), 미(味)의 조화로움 속에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과정에서 심적 정화와 예절, 긍정적 사고, 자신의 성찰을 통해 수양적 요소를 가미하며 자연스레 도(道)의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주(趙州)의” 끽다거”에서 차가 가지고 있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기에 다선일체(茶禪一體), 다선일미(茶禪一味) 하였으리라.

 

고려의 문인들 또한 육우(陸羽733~804)의 다경(茶經)을 읽으며 차의 원리를 터득하려 하였고, 차를 즐긴 당대의 문장가 한유(韓愈, 768~824)나 유종원(柳宗元, 773~819), 이백(李白, 701~762), 두보(杜甫, 712~770), 노동(盧仝, 790~835) 같은 이들의 시문을 통해 문인이 지향했던 오묘한 차의 세계를 이해하려 하였다.

 

그리고 송대의 구양수(歐陽脩, 1007~1072), 삼소(三蘇)로 칭송된 소순(蘇洵, 1009~1066), 소식(蘇軾, 1036~1101), 소철(蘇轍, 1039~1112)), 왕안석(王安石, 1021~1086) 같은 사대부들의 시문에 드러난 이상적인 차의 효능을 경험하고 공감하려 하였는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고려의 관료 문인들이 남긴 수십 편의 다시(茶詩)는 이를 확인할 문헌 자료이다.

 

특히 다문화가 융성했던 고려 문인들 중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시는 차의 고아한 세계를 잘 드러냈는데, 이는 그의 차에 대한 안목뿐 아니라 당대 문인들의 차에 대한 인식, 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찻그릇, 승원에서 벌어진 명전(茗戰) 놀이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는 점이다.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 또한 차에 대한 시를 통해서 당시 다도의 경지가 지고(至高)함을 알 수 있으며, 특히 고려 말의 선승 태고(太古) 보우(普遇, 1301~1382) 스님을 중심으로 조주의 다풍(茶風)은 한반도에 널리 퍼졌다. 이로써 승려의 생활에서 차는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자리 잡게 된다

 

소개하고자 하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1169 ~ 1241) 시 한 수와 목은(牧隱) 이색(李穡)선생의 시 를 통해 점점 사라져 가는 심오한 차문화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운봉주로규선사 득조아차시지 여목위유차 사청시위부지(運捧住老珪禪師 得早芽茶示之 予目爲孺茶 師請詩爲賦之 : 운봉(雲峯)에 있는 노규 선사(老珪禪師)가 조아다(早芽茶)를 얻어 나에게 보이고 유다(孺茶)라 이름을 붙이고서 시를 청하기에 지어 주다)    - 이규보(李奎報)

 

人間百味貴早嘗(인간백미귀조상) 인간이 온갖 맛 일찍 맛봄이 귀중하니

天肯爲人反候氣(천긍위인반후기) 하늘이 사람 위해 절후(節候)를 바꾸네

春榮秋熟固其常(춘영추숙고기상) 봄에 자라고 가을에 성숙함이 당연한 이치이니

苟戾於此卽爲異(구려어차즉위이) 이에 어긋나면 괴상한 일이건만

邇來俗習例好奇(이래속습례호기) 근래의 습속은 기괴함을 좋아하니

天亦隨人情所嗜(천역수인정소기) 하늘도 인정의 즐겨함을 따르는구나

故敎溪茗先春萌(고교계명선춘맹) 시냇가 차 잎사귀 이른 봄에 싹트게 하여

抽出金芽殘雪裏(추출금아잔설리) 황금 같은 노란 움 눈 속에 자라났네

南人曾不怕髬髵(남인증부파비이) 남방 사람 맹수도 두려워하지 않아

冒險衝深捫葛虆(모험충심문갈류) 험난함을 무릅쓰고 칡덩굴 휘어잡아

辛勤採摘焙成團(신근채적배성단) 간신히 채취하여 불에 말려서

要趁頭番獻天子(요진두번헌천자) 남보다 앞서 임금님께 드리려 하네

師從何處得此品(사종하처득차품) 선사는 어디에서 이런 귀중품을 얻었는가

入手先驚香撲鼻(입수선경향박비) 손에 닿자 향기가 코를 찌르는구려

塼爐活火試自煎(전로활화시자전) 이글이글한 풍로(風爐) 불에 직접 달여

手點花瓷誇色味(수점화자과색미) 꽃무늬 자기에 따라 색깔을 자랑하누나

黏黏入口脆且柔(점점입구취차유) 입에 닿자 달콤하고 부드러워

有如乳臭兒與稚(유여유취아여치) 어린아이의 젖 냄새 비슷하구나

朱門璇戶尙未見(주문선호상미견) 부귀의 가문에도 찾아볼 수 없는데

可怪吾師能得致(사괴오사능득치) 우리 선사(禪師) 이를 얻음이 괴상하구려

蠻童曾未識禪居(만동증미식선거) 남방의 아이들 선사의 처소 알지 못하니

雖欲見餉何由至(수욕견향하유지) 찾아가 맛보고 싶은들 어이 이를쏜가

是應蘂闥九重深(시응예달구중심) 이는 아마도 깊은 구중궁궐에서

體貌禪英情禮備(체모선영정례비) 높은 선사 대우하여 예물로 보냄이겠지

愛惜包藏不忍啜(애석포장부인철) 차마 마시지 못하고 아끼고 간직하다가

題封勅遣中使寄(제봉칙견중사기) 임금의 봉물(封物) 중사를 시켜 보내왔다네

不分人間無賴客(불분인간무뢰객) 세상살이를 모르는 쓸모없는 나그네가

得嘗況又惠山水(득상황우혜산수) 더구나 좋은 산수까지 감상하였네

平生長負遲暮嗟(평생장부지모차) 평생을 불우(不遇)하여 만년을 탄식했는데

第一來嘗唯此耳(제일래상유차이) 일품을 감상함은 오직 이것뿐일세

餉名孺茶可無謝(향명유차가무사) 귀중한 유다 마시고 어이 사례 없을 쏜 가

勸公早釀春酒旨(권공조양춘주지) 공에게 맛있는 봄술 빚기를 권하노니

喫茶飮酒遣一生(끽다음주견일생) 차 들고 술 마시며 평생을 보내면서

來往風流從此始(래왕풍류종차시) 오락가락하며 풍류놀이 시작해 보세

 

이규보(李奎報, 1169 ~ 1241)는 고려의 문신으로 본관은 황려(黃驪). 초명은 이인저(李仁氐),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백운산인(白雲山人)이며, 시호는 문순(文順)이다.

 

 

다후소영(茶後小詠 : 차를 마시고 나서 작게 읊다)  -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

 

小甁汲泉水(소병급천수) 조그마한 병에 샘물을 길어다가

破鐺烹露芽(파쟁팽로아) 묵은 솥에 노아차를 끓이노라니

耳根頓淸淨(이근돈청정) 귓속은 갑자기 말끔해지고

鼻觀通紫霞(비관통자하) 코끝엔 붉은 노을이 통하여라

俄然眼翳消(아연안번소) 잠깐 새에 흐린 눈이 맑아져서

外境無纖瑕(외경무섭하) 외경에 조그만 티도 보이질 않네

舌辨喉下之(설변후하지) 혀로 먼저 맛보고 목으로 삼키니

肌骨正不頗(기골정부파) 기골은 바로 평온해지고

靈臺方寸地(영태방촌지) 방촌의 마음 밝고 깨끗하여

皎皎思無邪(교교사무사) 생각에 조금의 사도 없어라

何暇及天下(하가급천하) 어느 겨를에 천하를 언급하랴

君子當正家(군자당정가) 군자는 의당 집부터 바루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