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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연암 박지원 전가(燕巖 朴趾源 田家)

세두(歲頭)에 맞이하는 소한(小寒) 답게 혹한의 날씨다. 한 달만 지나면 봄소식이 전해지는 입춘이다. 새해의 기준은 역술학계(曆術學界)에서는 동지(冬至)를, 철학인협회(哲學人協會)는 입춘(立春)을 새해의 기준으로 삼다 보니 사주발자(四柱八字)가 새해 기준에 따라 크게 달라지게 되니 국내 약 600백만 명의 사주가 다르게 해석되어 혼란스러워 풀이에 일비일희(一悲一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소개하고자 하는 박지원(朴趾源 )의 시 전가(田家)는 가을걷이에 한창인 농촌의 평화롭고 풍요로운 모습을 담고 있어 소싯적 생각이 아련하게 다가와 정감 넘치는 정경이 그려진다.

여유를 가지고 한 자, 한 자 음미해 볼수록 기분이 좋아진다. 올 가을에도 이와 같이 좋은 결실을 거두어 모두에게 즐겁고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田家(전가 : 시골집)

老翁守雀坐南陂(노옹수작좌남피) 노인은 참새를 쫓느라고 남쪽 비탈에 앉아 있고

粟拖狗尾黃雀垂(속타구미황작수) 개 꼬리 같은 조 이삭에는 참새가 매달려 있네.

長男中男皆出田(장남중남개출전) 맏아들과 둘째 아들은 모두 들로 나가고

田家盡日晝掩扉(전가진일주엄비) 농가에는 종일 낮인데도 사립문이 닫혀 있네.

鳶蹴鷄兒攫不得(연축계아확부득) 솔개가 병아리를 덮치지만 채어 가지 못하고

群鷄亂啼匏花籬(군계난제포화리) 박꽃 핀 울타리에서 뭇 닭이 어지럽게 우네.

少婦戴棬疑渡溪(소부대권의도계) 젊은 아낙은 함지를 이고 머뭇머뭇 시내를 건너는데

赤子黃犬相追隨(적자황견상추수) 벌거숭이 아들과 누런 개가 뒤따르며 서로 좇네.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1805)은 조선 후기 실학자로서, 본은 반남(潘南), 자 중미(仲美), 호 연암(燕巖)이다. 돈령부지사(敦寧府知事)를 지낸 조부 슬하에서 자라다가 16세에 조부가 죽자 결혼, 처숙(妻叔) 이군문(李君文)에게 수학, 학문 전반을 연구하다가 30세부터 실학자 홍대용(洪大容)과 사귀고 서양의 신학문을 접했다.

1780년(정조 4) 친족 형인 박명원(朴明源)이 진하사(進賀使 )겸 사은사(謝恩使 )가 되어 청나라에 갈 때 동행하였다. 요동(遼東), 열하(熱河), 북경(北京) 등지를 지나는 동안 특히 이용후생(利用厚生)에 도움이 되는 청나라의 실제적인 생활과 기술을 눈여겨보고 귀국, 기행문 열하일기(熱河日記)를 통하여 청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고 당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 걸쳐 비판과 개혁을 논하였다.

당시 홍대용(洪大容), 박제가(朴齊家) 등과 함께 청나라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이른바 북학파(北學派)로서, 이용후생의 실학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여러 편의 한문소설(漢文小說)을 발표, 당시의 양반계층 타락상을 고발하고 근대사회를 예견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함으로써 많은 파문과 영향을 끼쳤다.

박지원은 허생전(許生傳), 호질(虎叱) 등의 우수한 산문을 남긴데 비해, 시는 매우 적게 남겼다. 또 박지원의 문학사상에는 사실성과 진실성이 기반이 되었고, 대체로 실용성을 강조하고 선진성의 수용과 생명성을 존중하고 인간성을 정립한다는 중심사상을 토대로 전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저서로는 연암집(燕巖集), 과농소초(課農小抄), 한민명전의(限民名田義)등이 있고, 작품에 허생전(許生傳), 호질(虎叱), 마장전(馬駔傳),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민옹전(閔翁傳), 양반전(兩班傳)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