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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여류시인 김호연재 시 형제공차서모명자절(女流詩人 金浩然齋 詩 兄弟共次庶母明字絶)

김호연재(金浩然齋. 1681~1722)는 고성군수를 지낸 김성달(金盛達, 1642~1696)의 딸이며, 소대헌(小大軒) 송요화(宋堯和, 1682~1764)의 부인이다. 호연재의 친가는 우의정을 지낸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의 후손이며 시가 역시 좌참찬을 역임한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후손으로 친가와 시가 모두 당대 손꼽히는 명문이었다.

김호연재 역시 여성의 학문과 문학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가정에서 문학수업을 제대로 받으며 자란 여성 작가이다. 또 김성달 집안에는 김성달이 정실인 아내 연안 이 씨와 주고받은 시를 모은 시집 안동김씨세고(安東金氏世稿)와 김성달이 부실인 울산 이 씨와 주고받은 시와 서녀의 시를 모은 우진(宇珎)등이 전하는데, 이로 볼 때 호연재는 온 가족이 모두 시를 지으며 서로 주고받았던 문학적 환경에서 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울산 이 씨의 태고정(太古亭)과 호연재의 형제공차서모명자절(兄弟共次庶母明字絶), 김성달 서녀 중 한 명의 작품으로 보이는 차모씨태고정운(次母氏太古亭韻)은 호연재 가족이 태고정에 올라가 놀면서 이 씨의 작품에 차운한 것으로 호연재 집안의 문학적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시를 통해 삶을 살펴보면 호방한 남편을 만나 결혼 생활이 그리 순탄치 않았으며, 친정을 그리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의 고독과 고뇌를 해소하기 위해 호연재는 술과 담배를 접하였으며, 나아가 선계를 동경한 것으로 아래 두 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醉作(취작 : 취하여 시를 짓다)
醉後乾坤濶(취후건곤활) 취한 뒤에는 천지가 넓고

開心萬事平(개심만사평) 마음을 여니 만사가 평화롭다

悄然臥席上(초연와석상) 초연히 자리 위에 누웠으니

唯樂暫忘情(유락잠망정) 오직 즐거워 잠깐 정을 잊었네

 

술에 취한 뒤 바라본 세상은 크고 넓으며 닫혔던 마음이 열려 만사가 평화롭고 근심 걱정이 없다. 그래서 이때는 모든 것을 잊고 오직 즐거움만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즉 그는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취향(醉鄕)에 몰입하였으며, 때로는 담배를 피움으로써 현실의 온갖 번뇌와 염려를 잊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담배를 “근심스러운 창자를 풀어주는 약(願將此藥解憂腸) 즉 남초(南草)”이라고까지 하였다.

 

山深(산심 : 산은 깊어)

自愛山深俗不干(자애산심속불간) 스스로 산이 깊고 속세 간섭하지 않음을 사랑하여

掩門寥落水雲間(엄문요락수운간) 쓸쓸히 떨어지는 물과 구름 사이에 문을 닫고 있네

黃庭讀罷還無事(황정독파환무사) 황정경 읽기를 마치니 한가하고 일이 없어

手弄琴絃舞鶴閑(수롱금현무학한) 손으로 거문고를 희롱하니 춤추는 학도 한가한 듯하네

 

번잡한 세사를 잊고자 그는 산중에 들어앉아 문을 닫고 있다. 속세와 절연된 깊은 산속에서 그는 황정경을 읽으며 거문고를 희롱하는 선인의 삶을 표방하고 있다. 이렇게 호연재는 술과 담배로 현실의 갈등을 해소하는 한편 선계(仙界)를 동경하여 선인(仙人)의 삶을 꿈꾸었다. 그래서 유선사(遊仙詞) 6수에서는 선계의 다양한 모습을 마치 눈으로 보듯 실감 나게 묘사함으로써 상상 속에 선계를 주유(周遊)하기도 하였다.시에 두루 능하고 총명했지만 순탄치 않는 삶을 살아간 여류시인의 시 한수를 자서해 보았다.

 

兄弟共次庶母明字絶(형제공차서모명자절 : 형제가 함께 庶母의 明자 운을 빌려 시를 짓다) 

寂寂門掩夜潮聲(적적문엄야조성) 적막한 밤 문을 닫으니 물결소리 들려오고

滿庭花落月空明(만정화락월공명) 떨어진 꽃 정원에 가득하고 달은 허공에 빛나네

思君此夜眠難着(사군차야면난착) 그대를 생각하는 이 밤 잠 이루기 이려워

漏盡高樓獨坐淸(누진고루독좌청) 밤새도록 누락에 홀로 앉았으니 정신이 맑아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