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小寒)이 지난 지 3일이 되었다. 24 절기는 중국 황화 유역의 기후를 중심으로 하였기에 우리나라 기후와 차이가 있다. 절기의 이름으로 보면 소한 다음 절기인 대한(大寒) 때가 가장 추워야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소한 무렵이 가장 춥다. 우리나라에서 일 년 중 가장 추운 시기가 양력 1월 15일 무렵으로 이때는 전국이 최저 기온을 나타낸다. 그래서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소한추위는 매섭다.
내일은 서울기온이 영하 12도로 내려가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다고 한다. 과거 영하 15도 이하의 날씨는 허다했는데 지구 온난화로 인한 혹한의 날씨 소식이 반갑게 다가온다.
새벽마다 오르는 영종의 백운산 정상에서 맞이하는 바람에 콧등이 시리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인천국제공항의 불빛과 함께 아침을 열며 인천대교를 지나는 차량 불빛을 바라보며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해 본다.
함께 살펴볼 한시는 성재((醒齋) 선생께서 소한 하루 전 눈보라 거세게 치고 거센 바람 부는 날씨를 바라보며 한적한 곳에서 병들고 쓸쓸한 노옹의 심정을 읊었기에 이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소한전일설후대풍(小寒前日雪後大風 : 소한 하루 전 눈이 내린 뒤 바람이 크게 불어.)
雪風終日打窓扉(설풍종일타창비) 눈보라 종일 불어 사립과 창을 때리니
窮巷無人鳥不飛(궁항무인조불비) 산골 집 골목에 인적 없고 새조차 날지 않네.
白髮老翁塊獨坐(백발로옹괴독좌) 백발 늙은이는 흙덩이처럼 홀로 앉았으니
寂廖唯與病相依(적료유여병상의) 오로지 병든 몸에 쓸쓸함만 더하네.
성재 신익상(醒齋 申翼相, 1634 ~ 169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숙필(叔弼), 호는 성재(醒齋)이다. 숙종 때 우의정을 지냈으며, 영의정 신숙주의 후손이다.
1660년(현종 1)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고, 1662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설서(說書), 검열(檢閱), 겸설서(兼說書), 주서(注書), 봉교(奉敎)를 거쳐 설서, 부교리를 지내고 숙종 때 지평(持平), 이조좌랑(吏曹佐郞), 헌납을 하다 갑인예송(甲寅禮訟 : 1674년(현종 15) 인선왕후 장씨가 사망하자 자의대비의 복제문제를 두고 일어난 논쟁.)으로 파직되었다가 경신환국(庚申換局 : 1680년(숙종 6년) 남인이 정치적으로 실각하고 서인이 권력을 잡은 사건.) 이후 복직해 대사간(大司諫)이 되고 곧 대사헌(大司憲)이 되었다.
이후 소론이 되어 부제학(副提學), 이조참판(吏曹參判)을 거쳐 전라도관찰사를 거쳐 부제학을 지내다 대사성(大司成)이 되고 부제학, 대사헌을 거쳐 평안도관찰사와 부제학, 대사헌, 도승지를 거쳐 이조참판, 대사간, 대사성 등을 거쳐 경기도관찰사와 대사간, 도승지, 부제학을 두루 지내고 강화유수(江華留守 : 조선시대 1627년(인조 5)에 부윤(府尹)을 고쳐서 승격한 강화부(江華府)의 종이품(從二品) 으뜸 벼슬로 정원은 2원이다. 그 중 1원은 경기감사(京畿監司)가 예겸 하였다.)와 예조참판을 하지만 1689년, 기사환국으로 유배를 당했지만 이후 1694년, 갑술환국(甲戌換局 : 1694년(숙종 20) 폐비민씨(廢妃閔氏) 복위운동을 반대하던 남인(南人)이 화를 입어 실권(失權)하고 소론과 노론이 재집권하게 된 사건)으로 공조판서로 복직, 우참찬, 좌참찬으로 지경연사를 겸하고 예조판서로 승진, 판의금부사를 거쳐 이조판서가 되고 이후 우의정에 임명되었다.
이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가 되었다가 1697년 병으로 사망했다. 숙종의 총애를 받았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영종도 새벽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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