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높고 물 맑은 내 고향 산청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6월 중순 5형제와 함께 산청 단성면에 위치한 국립 산청호국원을 찾았다. 올 초 영면에 드신 아버지의 생신날을 기리기 위해서다. 참배 후 근처 남사예담촌을 찾았는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 답게 옛 스러운 돌담과 한옥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남사예담촌은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南沙里) 253 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전체가 살아 있는 한국 전통 역사 박물관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특이한 것은 이곳이 다른 마을처럼 특정 성씨의 집성촌(集姓村)이 아니라는 점이다.
남사마을에 가장 먼저 정착한 성씨는 약 700년 전 고려 말 진양하씨(晉陽河氏), 이후 성주이씨(星州李氏), 밀양박씨(密陽朴氏), 전주최씨(全州崔氏) 등 세대를 거치면서 여러 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성(多性)이 있어 씨족 마을이라는 개념은 거의 없어졌다.
많은 성씨가 수백 년간 마을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양반 가문의 반가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고려 말 원정공 하즙(元正公 河楫 1303~1380)과 하윤원(河允源 1322~1376) 부자, 그의 외손 통정공 강회백(通亭公 姜淮佰 1357~1402), 강회중(?~1441), 영의정을 지낸 경재 하연(敬齋 河演 1376 ~ 1453) 등이 이곳에서 태어난 것은 물론, 많은 가문의 선비가 과거에 급제해 명성을 유지한 것도 큰 요인이다.
구한말 애국지사인 면우 곽종석(俛宇 郭鍾錫 1846~1919), 국악 운동의 선구자인 기산 박헌봉(岐山 朴憲鳳 1906~1977) 등도 이곳 출신이다. 결속력이 남다른 씨족 마을이 근본인 조선 시대에 많은 성씨가 한 마을을 이루면서 함께 동고동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을 자체에 특이한 내력이 있기 때문이다.
다소 아쉬운 점들은 유명세에 비하여 돌담 지붕을 플라스틱 기와가 얹쳐 있고 뒤편 주택들은 현대식으로 지어져 있어 조화롭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광고성 플래카드와 음식을 파는 간판들로 얼룩져 있어 기대보다 실망감을 가져다 주기에 조속한 시일 내 재정비가 필요하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군에서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여 고색창연(古色蒼然)의 모습으로 탈바꿈 하여 주변 명소와 연결하면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남사예담촌
이 곳 남사에서 태어난 걸출한 인물에 대한 흔적과 함께 널리 알려진 산청 3매(山淸3梅)와 관련된 내용과 그들이 남긴 한시 몇 수를 자서해 보았다.
산청 3매란 남사 예담촌의 원정매(元正梅), 단속사지(斷俗寺址)의 정당매(政堂梅), 그리고 남명 조식선생의 산천재(山天齋)에 있는 남명매(南冥梅)이다.
정당매(政堂梅)
단속사(斷俗寺)는 신라 제35대 경덕왕 당시 창건한 사찰로 산청군 단성면(丹城面) 운리(雲里)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화재로 소실되고 현재는 3층석탑 2기와 절터만 남아있다. 정당매는 고려말 이 고장 출신의 통정 강회백(通亭 姜淮伯1357~1402)이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심었다고 전해진다. 수령은 약 630년이며 높이는 8m, 둘레는 1.5m이다. 강회백이 벼슬길에 나가 정당문학(政堂文學)이라는 벼슬에 올랐는데 이 벼슬이름을 따서 정당매(政堂梅)라고 부르게 되었다. 강회백이 고향에 들러 단속사에서 정당매를 보면서 지은 시다.
단속사견매(斷俗寺見梅 : 단속사에서 매화를 바라보며) - 강회백(姜淮伯)
一氣循還往復來(일기순환왕복래) 하나의 기운이 순환하여 갔다가 돌아오니
天心可見臘前梅(천심가견랍전매) 천심을 세밑에 핀 매화에서 볼 수 있다네
自將鼎鼐調羹實(자장정내조갱실) 큰 솥에다 국 맛을 조절하는 열매가
謾向山中落又開(만향산중락우개) 부질없이 산중에서 맺혔다 떨어졌다 하네
단속사 수종매(斷俗寺 手種梅 : 단속사에 손수 심은 매화) - 강회백(姜淮佰)
偶然還訪石山來(우연환방석산래) 우연히 옛 고향을 다시 찾아 돌아오니
滿院淸香一樹梅(만원청향일수매) 한 그루 매화향기 사원에 가득하네
物性也能至舊主(물성야능지구주) 무심한 나무지만 옛 주인을 알아보고
慇懃更向雪中開(은근갱향설중개) 은근히 나를 향해 눈 속에서 피었네
- 강회백(姜淮佰) 자신이 손수 심은 정당매(政堂梅)를 찾아와 읊은 시다.
통정 강회백(通亭 姜淮伯 1357~1402) 고려 말~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백보(伯父), 호는 통정(通亭)이며,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부친은 고려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강시(姜蓍)이다. 어려서부터 경서나 사서를 한번 보면 외울 정도로 총명하였으며 문장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여말 선초 학자인 권근(權近)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1376년 문과에 급제 한 이후 성균좨주 · 밀직제학 · 밀직부사 · 첨서사사 등의 관직을 거쳐 추충협보공신(推忠協輔功臣)의 호를 하사 받았다. 공양왕 재위 시에는 밀직사사 겸 이조판서(密直司事兼吏曹判書), 정당문학 겸 대사헌(政堂文學兼大司憲) 등을 역임했다. 1385년과 1388년 밀직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는데, 1392년 정몽주가 조준 · 정도전 등을 탄핵할 때 이에 동조하였으며, 정몽주가 살해된 뒤 역전된 상황에서 곤란한 처지를 당했으나 막내 아우 강회계(姜淮季)가 공양왕의 사위였으므로 탄핵을 면하였다. 그러나 결국 진양(晋陽)에 유배되었다.
조선이 개국하고 태조가 즉위하여 고려의 인물을 기용하려 하였을 때, 계림부윤이 되었고 다시 동북면 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로 자리를 옮긴 얼마 뒤인 46세에 사망하였다. 첫 번째 부인인 대부(大夫) 정양생(鄭良生)의 딸에게서 강종덕 · 강우덕 · 강진덕 세 아들을 두었고, 둘째 부인 평양부윤 이존성(李存性)의 딸 사이에 강석덕과 강순덕 두 아들을 두었다.
한국 서화사에서 시 · 서 · 화 삼절로서 매우 중요한 인물인 강희안이 곧 강석덕의 아들이다. 강석덕 · 강희안 · 강희맹 세 사람은 문장으로도 유명하였다. 강회백으로부터 강석덕 · 강희안 · 강희맹을 거쳐 강구손 · 강학손(姜鶴孫)에 이르기까지 조부 · 아들 · 손자 · 형제 4세(世)가 공경(公卿) 장상(將相)에 올랐다.
『해동호보(海東號譜)』에는 강회백이 문장에 능했고 글씨를 잘 썼다고 전하지만 현존하는 글씨는 드물다. 《근묵》에 초서 간찰이 한 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간찰은 왕희지의 글씨를 본받아 필획이 단아하고 둥글면서도 훨씬 활달하다. 송대 서예가 미불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단속사 정당매(斷俗寺 政堂梅 : 단속사의 정당매) - 조식(曺植)
寺破僧羸山不古(사파승리산불고) 절은 낡고 중은 고달파도 산은 늙지 않았건만
前王自是未堪家(전왕자시미감가) 전조의 왕은 절로 국사를 감당하지 못하였구나
化工定誤寒梅事(화공정오한매사) 조물주가 정말 겨울 매화를 잘못 처리하여
昨日開花今日花(작일개화금일화) 어제도 꽃을 피우더니 오늘도 꽃을 피웠구나
남명 조식(南冥 曺植)은 강회백이 고려 공양왕(恭讓王) 세자의 스승이 되었고 이어서 대사헌(大司憲)이 된 후, 조선 건국 후 태조 때 동북면도순문사(東北面都巡問使)를 지낸 그가 절조를 지키지 못하고 조선에 출사(出仕) 한 것을 은근히 비판한 내용을 담고 있는 시다. 조 남명(曺 南冥) 선생에 대하여는 앞서 소개한 바 있어 생략토록 하겠다.
차남명선생정당매운(次南冥先生政堂梅韻 : 남명선생의 정당매 시에 차운하다) - 하홍도(河弘度)
麗時山水羅時寺(려시산수라시사) 산과 물은 고려의 것이요 절은 신라의 것
天付春風仙李家(천부춘풍선이가) 하늘은 봄바람을 이씨에게 내려 주었다네
物性自如人或失(물성자여인혹실) 물성은 그대로라 사람은 그릇되었지만
寒梅依舊雪中花(한매의구설중화) 겨울 매화는 여전히 눈 속에 피었네
- 남명의 제자 하홍도(河弘度 1593~1666)는 신라 때 지어진 절이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지만, 예로부터 사람은 절조를 잃기도 하지만 매화는 눈 속에도 꽃을 피운다고 하여 스승인 조식의 시를 차운하여 지은 시다.
우음(偶吟 : 우연히 읊다) - 유정(惟政)
朱點小梅下(주점소매하) 붉은 떨기 핀 작은 매화나무 아래
高聲讀帝堯(고성독제요) 소리 높여 요전(堯典)을 읽는다네
窓明星斗近(창명성두근) 창은 밝아 북두성 가까운 듯
江濶水雲遙(강활수운요) 강물은 넓은데 아련히 구름이 떠가네
증산인유정(贈山人惟政 : 유정에게 주다) - 조식(曺植)
花落槽淵石(화락조연석) 꽃은 조연의 돌에 떨어지고
春深古寺臺(춘심고사대) 봄은 옛 절의 축대 위에 깊구나
別時勤記取(별시근기취) 이별하는 이때를 잘 기억해 두게
靑子政堂梅(청자정당매) 정당매가 푸르게 열매를 맺었나니
스승 휴정(休靜 : 西山大師)이 쌍계사에서 공부한 인연으로 유정(惟政 : 四溟大師)은 스승을 모시고 단속사에 머물 때, 남명은 단속사를 찾아서 붉게 핀 매화꽃 아래서 책도 보고 시도 읊으며 정담을 나누었는데 유정과 헤어지는 때 정당매가 열매를 맺은 것을 보며 서로 지은 시다.
원정매(元正梅)
남사 예담촌의 하씨 고택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원정매(元正梅)는 고려말 원정공 하즙(元正公 河楫 1303 ~1380) 선생이 심은 것으로 그의 시호가 원정(元正)이었던 데서 비롯됐다. 원정은 의를 행해 백성을 기쁘게 함이‘원(元)’이요, 정의로써 남을 복종케 함이‘정(正)’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홍매화로 산청 3매 중 가장 오래된 수령 680여 년을 자랑하는 원정매는 2007년에 원목이 고사하고 지금은 후계목이 뿌리에서 자라 매년 꽃을 피우고 있다. 당시 하즙이 매화를 보며 읊은 시를 살펴보면..
영매(詠梅 매화를 읊다) - 하즙(河楫)
舍北曾栽獨樹梅(사북증재독수매) 집 양지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臘天芳艶爲吾開(랍천방염위오개) 찬 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明窓讀易焚香坐(명창독력분향좌)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으니
未有塵埃一點來(미유진애일점래) 한 점 티끌도 오는 것이 없어라
세종조의 명신인 하연(河演) 선생의 칠언절구 시 자영(自詠)은 자신의 지나 온 삶을 돌아볼 때에, 부족하고 아쉬움이 많음을 한탄하는 내용으로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자영(自詠 : 혼자 읊다) - 하연(河演)
少也潛心學聖賢(소야잠심학성현) 젊어서는 마음 다해 성현의 가르침 배웠으나
老來猶未慕神仙(노래유미모신선) 나이 들어 가르침 따라 신선처럼 살지 못하네
不敏自知難進就(불민자지난진취) 공업(功業) 이루기 어려움 이제 비로소 깨달아,
徒然慷慨讀遺編(도연강개독유편) 부질없이 슬프게 한탄하며 옛 글을 읽는다
경재 하연(敬齋 河演 1376~1453) 려말 조초에 활동한 문신이자 서예가로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신희(新稀). 부윤(府尹 : 조선시대 지방 관아의 府 우두머리)을 지낸 하자종(河自宗)의 아들이다.
1376년(고려 우왕 2)에 태어나 일찍이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1396년(조선 태조 5) 문과에 급제한 후 예문춘추관 수찬관이 되었다. 이어 집의, 동부대언, 예조판서를 지냈다. 1423년(세종 5) 대사헌으로 있을 때에는 조계종 등 불교 5 종파를 선(禪)·교(敎) 양종, 36 본산으로 통합하고, 혁파된 사원의 토지와 노비를 국가로 환수시켰다. 1425년(세종 7)에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이후 예조참판과 평안도관찰사가 되었으나 한때 천안에 유배당하기도 하였다. 이후 유배에서 풀려나 1431년에 대제학이 되고 형조판서·좌참찬 등 고위관직을 지내고 의정부에 들어가 이조의 일을 맡아보았다. 1445년 좌찬성이 되었고 이어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449년 영의정에 올랐다. 의정부에 들어간 지 20여 년간 법을 잘 지켜 승평수문(昇平守文)의 재상으로 일컬어졌다. 또 1451년(문종 1)에는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왕이 대자암(大慈庵)을 중수하려 하자 이에 반대 상소를 올리고 벼슬에서 물러났다. 1453년(단종 1) 별세하였다. 조선의 숭유배불정책(崇儒排佛政策)에 충실하여 사찰과 승려에 관한 제도 확립에 앞장섰다.
1454년에 문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고, 숙종 때 진주의 종천서원(宗川書院), 합천의 신천서원(新川書院)에 제향 되었다. 편서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진양연고(晉陽聯藁)가 있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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