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가을 한시 2수, 박금 추야(朴坅 秋夜) , 김효일 추사(金孝一 秋思)

오늘은 처서답게 새벽부터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리고 있다. 요즘 한낮 기온이 1~2° 내렸음에도 몸에서 느끼는 차이는 확연하다. 한 밤 창문을 닫아도 또렷하게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는 가을의 전령사 답게 힘차게 울어 댄다. 예나 지금이나 가을의 흥취를 느끼기에는 변함이 없다. 이와 같이 가을심사를 읊은  위항시인 박금(朴坅 : 생졸연대 미상)과 더불어 국담(菊潭) 선생의 시 2수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추야(秋夜)    - 박금(朴坅)

西風吹動碧梧枝(서풍취동벽오지) 서풍이 벽오동나무 가지를 흔드니

落葉侵窓夢覺時(낙엽침창몽교시) 창으로 들어온 낙엽에 꿈을 깨네

明月滿庭人寂寂(명월만정인적적) 밝은 달 뜰에 차고 인적 없어 고요한데

一簾秋思候蟲知(일염추사후충지) 한발 주렴 밖 가을심사 귀뚜리가 알아주리

 

위 시는 위항시인(委巷詩人) 박금(朴坅)의 작품으로 풍요속선(風謠續選) 1권에 실려 있다.

풍요속선은 한문학문헌으로 조선후기 학자·시인 천수경(千壽慶) 등이 소대풍요(昭代風謠) 이후의 60년 만에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 1786년(정조 10) 천수경(千壽慶)이 중심이 된 문인들의 모임. 서울의 중인계층들이 인왕산 아래에 있는 옥류동(玉流洞)의 송석원에서 결성한 문학단체로 일명 ‘옥계시사(玉溪詩社)’라고도 한다)가 중심이 되어 위항시인(委巷詩人) 333명의 시 723수를 수록하여 1797년에 7권 3책으로 간행한 위항시집이다.

권두에는 당시 대제학이던 홍양호(洪良浩)와 정창순(鄭昌順)·이가환(李家煥)의 서문을 실었다. 말미에는 정이조(丁彝祚)·이시선(李是䥧)·홍의영(洪儀泳)·이덕함(李德涵)의 발문을 실었다. 소대풍요가 시체별(詩體別)로 분류하여 한 사람이 여러 번 나뉘어 나타나는 것에 대한 불편을 없애려고 인물중심으로 실었다. 범례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각 시인을 나이순으로 싣고, 성명·자·호·벼슬 등을 표기한 뒤에 그 인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도 곁들였다.

풍요속선 권1에는 소대풍요의 끝에 첨가되어 있던 습유(拾遺)·별집·별집보유(別集補遺) 등을 합하여 풍요속선의 체재에 맞게 정리하였다. 32명의 시 110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2에는 42명, 권3에는 54명, 권4에는 46명, 권5에는 58명, 권6에는 62명, 권7에는 71명의 시가 실려 있다. 권7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7명과 승려 7명, 여자 11명의 시를 함께 수록하여 위항문학의 개념을 넓히고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시를 전하고자 하였다.

풍요속선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금체시(今體詩 : 자수·구수·평측 등에 일정한 격률과 엄격한 규칙이 있는 한시체로 근체시

(近體詩)라고도 한다)이다.

위항인들이 당시의 조류를 따라 금체시에 주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각 권의 첫머리에는 ‘천수경 편(編)’, ‘장혼(張混) 교(校)’라고 명기하여 천수경이 편집을 맡고 장혼이 교열을 담당하였음을 말하여준다. 이들은 송석원시사의 주동인물로서 대규모 시회(詩會)를 여는 등 위항문학을 절정기에 이르게 하였다. 자신들의 문학에 자부심을 가지는 만큼 자신들의 시가 후세에 전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한두 편의 시만 남긴 시인이라도 반드시 수록하였다. 풍요속선에 실린 인물들은 중인층이라는 공통점은 있으나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모여 이루어져 있으므로, 이들 시의 성격도 다양하다. 대다수의 근체시에서는 사대부들의 시와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대부분 자연경관을 읊거나 다른 사람의 시에 차운(次韻)한 것이 많다. 이들 시에서의 두드러진 특징은 회고취향을 가지고 있는 점이다. 주로 사적(史蹟)에 얽힌 감회와 복고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시상을 처리하고 있다. 풍요속선(風謠續選)은 이름이 알려져 있는 시인인 정민교(鄭敏僑)·정내교(鄭來僑)·엄계흥(嚴啓興) 등의 시는 고체시(古體詩)가 많다. 주로 사회 현실의 모순과 농촌의 황폐화 과정을 그려 보여주고 있다. 자신들의 처지가 그러한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된다는 자조와 한탄을 아울러 노출시키면서 자신들이 배운 유교적 덕목과 현실의 괴리에 대한 갈등 등을 표출시키고 있다. 풍요속선의 의의는 앞시대의 해동유주(海東遺珠)와 소대풍요(昭代風謠)의 정신을 계승하여 위항문학 활동을 절정에 이르게 한 것에 있다. 풍요속선의 간행으로 60년마다 이같은 위항시선집을 간행하는 전통이 생기게 되었으므로, 당시의 위항인들을 고무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다음 시기의 풍요삼선(風謠三選)에는 더욱 방대한 양의 위항시가 선보이게 되었다. 풍요속선(風謠續選)은 규장각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도서에 있다.  이 시는 당초 송당(松堂)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그의 문집에도 찾지 못해  출전(出典)에 대한 궁금증을 송당 박영(松堂 朴英 1471 ~ 1540)을 연구하는 박장원 박사의 노력으로 풍요속선에 실려있는 박금의 작품으로 밝혀짐에 따라 출전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고전을 깊이 연구하는 학자에 의하여 오류가 수정되어지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추사(秋思)    – 국담 김효일(菊潭 金孝一)

滿庭梧葉散西風(만정오엽산서풍) 뜰 앞 오동잎 서풍에 흩날리고

孤夢初回燭淚紅(고몽초회촉루홍) 꿈에서 깨어나니 촛불 홀로 눈물 지네

窓外候蟲秋思苦(창외후충추사고) 창밖에 귀뚜라미 가을 심사 괴로워라

伴人啼到五更終(반인제도오경종) 사람을 벗하여 밤새도록 울어대네

 

김효일(金孝一)은 조선 후기의 위항인(委巷人)으로 생물 연대 미상이다. 자는 행원(行源)이고 호는 국담(菊潭)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금루관(禁漏官 : 조선시대 관상감(觀象監)에 소속된 벼슬로, 누각(漏閣)의 일을 맡아 시각을 알리는 일을 맡음)이었다. 1658년에 엮은 육가잡영(六家雜詠 : 위항시인 6명의 시를 모아 최초로 간행된 시집)에 최기남(崔奇男), 정남수(鄭柟樹), 남응침(南應琛), 정예남(鄭禮男), 최대립(崔大立)과 함께 그의 시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