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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달마 혈맥론(達磨 血脈論)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달마도(達磨圖)에 공통적 문구가 있는데 이는 심시불(心是佛), 심즉시불(心卽是佛)로 마음이 곧 부처라는 뜻이다.
자주 사용하는 단어인 이심전심 불립문자(以心傳心 不立文字) 또한 달마의 혈맥론에서 기인되었다. 불교를 마음공부 잘하는 것 즉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심외무법(心外無法)인 것이다.
높은스님의 글씨를 선서(禪書) 또는 선필(禪筆)라고 하는데 풍운선서(風雲禪書)의 경지를 이룬 근대 고승으로 나 또한 심취했던 일붕 서경보(一鵬 徐京保), 경봉대선사(鏡峰大禪師), 탄허대종사(呑虛大宗師)의 선필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초탈경지(超脫境地)를 이루고 있다.
내 글씨 또한 이 분들의 필의(筆意)를 닮고 있다.
특히 탄허대종사는 혈맥론 중 끝 부분에 나오는 심심심(心心心) 글귀를 웅건하고 활달한 초서체(草書體)로 많이 남겼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에 문외한(門外漢)이기 때문에 여운(如雲) 스님의 자료를 참고하여 혈맥론 서두(頭) 일부와 핵심 내용을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달마혈맥론(達磨血脈論)은 인도의 승려로 중국에 건너와 대승불교를 일으킨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인 달마대사(達磨大師 : ? ~ 528)의 법문을 기록한 선어록(禪語錄)이다.
혈맥(血脈)이란, 스승과 제자 상호 간의 법이 전승되어 가는 것을 부자간에 상속되는 혈맥에 비유해 혈맥상승(血脈相承), 혈맥부단(血脈不斷)이라고 한 것이다. 말하자면 신앙으로 석존이래 전법상승(傳法相承)의 계보(系譜)에 가치를 두는 것으로 중국에서는 불교의 종파를 불문하고 법계(系)와 혈맥이 중시되었다.
혈맥론은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중심사상인 “마음”에 관해서 문답의 형식을 빌려 선종 혈맥이 자기의 마음을 깨치는 견성(見性)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자기의 성품을 보지 않고서는 염불, 보시, 지계, 정진(念佛, 布施, 持戒, 精進)과 복덕이 의미 없음을 알려준다.
다시 말해 교리나 문자에 의하지 않고 바로 사람의 마음을 직관(直觀)하여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음을 설파하신 것이다.
불자(佛子)라면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반드시 읽어야 할 귀중한 보서(寶書)이다.

達磨大師 血脉論(달마대사 혈맥론)

三界混起(삼계혼기) 삼계(欲界 色界 無色界)가 어지럽게 일어나지만
同歸一心(동귀일심) 모두가 한마음으로 돌아간다.
前佛後佛(전불후불) 앞과 뒤의 모든 부처님들은
以心傳心(이심전심)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며
不立文字(불립문자) 문자를 세우지 않았다.

問曰 若不立文字 以何為心(문왈 약불립문자 이하위심) 문 :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마음을 나타냅니까?
答曰 汝問吾 即是汝心 吾答汝 即是吾心(답왈 여문오 즉심여심 오답여 즉시오심) 답: 그대가 나에게 묻는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요,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는 것이 곧 나의 마음이다.
. . . .(생략)

心心心(심심심) 마음 마음 하는 이 마음은
難可尋(난가심) 가히 찾기 어렵도다.
寬時徧法界(관시편법계) 너른 때는 법계에 두루 하지만
窄也不容針(착야불용침) 좁으면 바늘도 용납하지 않는다.

我本求心不求佛(아본구심불구불) 내 본래 마음을 구하고 부처를 구하지 않은 것은
了知三界空無物(요지삼계공무물) 삼계(三界)가 공하여 한 물건도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네
若欲求佛但求心(약욕구불단구심) 부처를 구하고자 한다면 다만 마음을 구해야 하느니
只這心心心是佛(지저심심심시불) 단지 마음 마음 하는 이 마음이 곧 부처로다.

我本求心心自持(아본구심심자지) 내 본래 마음을 구했지만 마음은 내 스스로 지니고 있으니
求心不得待心知(구심부득대심지) 마음을 구해도 마음을 기다려서는 알지 못하리
佛性不從心外得(불성부종심외득) 부처의 성품은 마음 밖에서 얻어지지 않으니
心生便是罪生時(심생편시죄생시) 마음이 생기면 바로 죄가 나는 때로다.

偈曰(계왈) 계송을 읊어 말하기를

吾本來此土(오본래차토)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傳法救迷情(전법구미정) 법을 전하여 어리석은 중생을 건지려 함이네
一華開五葉(일화개오엽) 한 송이 꽃에 다섯 개의 잎이 열렸으니
結果自然成(결과자연성) 그 열매는 자연히 이루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