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 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나가면 새하얀 꽃이 군락을 이루고 피어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주로 배꽃이다. 꽃말은 위로, 위안, 온화한 애정이다. '이화(梨花)'라는 낱말이 들어가는 이름은 배꽃을 한자어로 옮긴 것이다.
과거 대만 친구가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한국배로 식사를 대신할 만큼 최고의 과일로 손꼽는데 그 맛이 어느 과일보다 으뜸이고 단단하면서 단맛이 나는 과일로, 아삭아삭한 식감, 시원한 단 맛, 풍부한 과즙 때문에 차게 먹으면 달고 시원하니 너무 좋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사과와 더불어 가을에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과일이기도 하지만 유달리 한국에서 재배된 배는 자타공인하는 최고의 맛이다.
한국사의 옛 문헌을 살펴보면 삼한 시대(三韓 時代)부터 기록이 나오는 전통적인 토속 과일이다. 이런 연유로 4월이면 새하얀 꽃, 이화를 바라보며 문인들은 시 한 수를 어찌 마다했으리오, 백옥헌 선생의 시와 함께 배꽃 관련 한시 중 최고의 걸작으로 7년 전에 소개한 바 있는 지포 김구의 낙이화 시를 다시 불러들여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이화(梨花 : 배꽃)
院落深深春晝淸(원락심심춘주청) 깊고 깊은 시골집 봄 낮은 청명하고
梨花開遍正冥冥(리화개편정명명) 배꽃은 두루 피어 아늑하고 그윽한데
鶯兒儘是無情思(앵아진시무정사) 날아든 꾀꼬리는 진정 무정한 심사러니
掠過繁枝雪一庭(략과번지설일정) 무성한 가지 스쳐가니 온 뜰에 배꽃이 눈처럼 흩날리네
백옥헌 이개(白玉軒 李塏 1417 ~ 1456)는 조선전기 집의(執義 : 조선시대 정사를 비판하고 관리들을 규찰하며, 풍속을 바로잡던 사헌부 소속 종 3품 직제), 집현전부제학(集賢殿副提學)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자 청보(淸甫), 백고(伯高), 호 백옥헌(白玉軒), 시호 충간(忠簡)이다.
이개는 제6대 왕 단종을 위해 사절(死節)한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자, 이색(李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중추원사 이종선(李種善)이다. 아버지는 이계주(李季疇)이며, 어머니는 진명례(陳明禮)의 딸이다.
태어나면서 글을 잘 지어 할아버지의 유풍(遺風)이 있었다. 1436년(세종 18) 친시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고, 1441년에 집현전저작랑으로서 당나라 명황(明皇)의 사적을 적은 『명황계감(明皇誡鑑)』의 편찬과 훈민정음의 제정에도 참여하였다.
1444년 집현전부수찬으로서 의사청(議事廳)에 나가 언문(諺文: 國文)으로 『운회(韻會)』를 번역하는 일에 참여해 세종으로부터 후한 상을 받았다. 1447년 중시 문과에 을과 1등으로 급제하고, 이 해에 『동국정운』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448년 지대구군사(知大丘郡事) 이보흠(李甫欽)이 조정에 사창(社倉)의 설치를 주장했을 때 백성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였다. 1450년(문종 즉위년) 문종이 어린 왕세자를 위해 서연(書筵)을 열어 사(師)·빈(賓)의 상견례를 행할 때에 좌문학(左文學)의 직책으로서 『소학』을 진강(進講)했는데, 문종으로부터 세자를 잘 지도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1453년(단종 1) 10월에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을 보좌하던 대신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을 살해하고 정권을 쥔 이른바 계유정난을 일으켜 이 거사에 참여한 공신을 책정할 때, 환관 엄자치(嚴自治)와 전균(田畇)이 공로가 있다는 이유로 공신에 기록하고 봉군(封君)까지 하려고 하였다.
집의로서 좌사간인 성삼문(成三問)과 함께 환관의 폐해가 망국패가에 이르게 한 옛날의 예를 들어서 이들에게는 재백(財帛)으로 상만 내리고 공신과 봉군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힘써 아뢰었다. 이 해 12월에는 글을 올려 근일에 시정(時政)의 몇 가지 일로써 여러 번 임금에게 아뢰었으나, 한 가지도 윤허를 받지 못하므로 사직하기를 청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1456년(세조 2) 2월 집현전부제학에 임명되었다. 이 해 6월에 성균관사예 김질(金礩)의 고변으로 성삼문 등 육신(六臣)이 주동이 된 상왕의 복위 계획이 발각되었는데, 박팽년(朴彭年)·하위지(河緯地)·유응부(兪應孚)·유성원(柳誠源)과 함께 국문을 당하였다. 이때 이개는 작형(灼刑 : 불에 태우거나 지져서 고문하는 형벌)을 당하면서도 태연했다고 한다.
성삼문 등과 함께 같은 날 거열형(車裂刑 : 5마리의 소를 이용해 당겨 죽이는 형벌)을 당했는데, 수레에 실려 형장으로 갈 때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우정(禹鼎: 夏나라 우왕이 9주의 쇠를 거두어 9주를 상징해 만든 아홉 개의 솥)처럼 중하게 여길 때에는 사는 것도 또한 소중하지만·홍모(鴻毛: 기러기의 털, 즉 아주 가벼운 물건의 비유)처럼 가벼이 여겨지는 곳에는 죽는 것도 오히려 영광이네·새벽녘까지 잠자지 못하다가 중문 밖을 나서니·현릉(顯陵: 문종의 능)의 송백이 꿈속에 푸르고나!” 이때 이개의 매부인 전 집현전부수찬인 허조(許慥)도 단종 복위의 모의에 참여해 자결하였다.
사후에 남효온(南孝溫)이 당시 공론(公論)에 의거해, 단종 복위 사건의 주도 인물인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 6인을 선정, 「육신전(六臣傳)」을 지었다. 이 「육신전」이 세상에 공포된 뒤 육신의 절의를 국가에서도 공인, 1691년(숙종 17)에 사육신의 관작을 추복(追復)시켰다.
이개의 작품으로는 몇 편의 시가 전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방안에 켜져 있는 촛불 누구와 이별을 하였기에 겉으로 눈물 흘리고 속 타는 줄 모르던가 저 촛불 나와 같아 속 타는 줄 모르는구나.”라는 단가(短歌)가 있다.
1758년(영조 24)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되고 노량진의 민절서원(愍節書院), 홍주의 노운서원(魯雲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낙이화(落梨花 지는 배꽃) - 지포 김구 (止浦 金坵)
飛舞翩翩去却回(비무편편거각회) 펄펄 날아 춤추며 가다 서다 다시 돌아와
倒吹還欲上枝開(도취환욕상지개) 거꾸로 불면 가지에 도로 올라 다시 피고자
無端一片黏絲網(무단일편점사망) 속절없이 한 조각 꽃잎 거미줄에 걸리니
時見蜘蛛捕蝶來(시견지주포접래) 때마침 거미는 나비인 줄 알고 잡으러 오네.
(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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