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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미촌 윤선거 춘사(美村 尹宣擧 春詞), 청탄 한익항 영정전이수(聽灘 韓翼恒 詠庭前梨樹)

어제오늘 반가운 봄비가 내리고 있다. 농부나 텃밭을 일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기는 비 소식은 봄 가뭄 해갈은 물론 연일 발생하는 산불소식을 잠재울 고마운 단비다. 이를 경제적으로 환산하면 수 천 억 원의 가치를 부여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연이어 배꽃(梨花) 관련 미촌(美村) 선생의 춘사(春詞) 시와 청탄 한익항 선생의 영정전이수(聽灘 韓翼恒 詠庭前梨樹)를 소개하고자 한다. 미촌 선생은 병자호란(丙子胡亂), 노소분파(老少分派)를 겪으며 시름에 가득 찬 어느 봄날 흩날리는 배꽃을 바라보며 시인의 심사는 바다처럼 막막하고 깊어가는데 문득 들보 위에 한 쌍의 제비가 둥지를 틀며 새 희망을 품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느낀 감회를 읊었으리라. 청탄(聽灘) 선생의 영정전이수(詠庭前梨樹)는 이화월백(梨花月白)의 운치를 격조 있게 표현하였기에 함께 살펴보았다. 청탄선생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 크지만 향후 한 씨(韓氏) 족보를 등을 찾아 확인되면 보완하고자 한다.
 
춘사(春詞 : 봄의 노래)   - 미촌 윤선거(美村 尹宣擧)

滿地梨花白雪香(만지이화백설향) 온 천지 만개한 배꽃 흰 눈같이 향기롭고
東方無賴捐幽芳(동방무뢰연유방) 봄바람은 얄궂어진 꽃잎마저 흩날리게 하네
春愁漠漠心如海(춘수막막심여해) 봄 심사는 아득한 바다만큼 깊어 가는데
棲燕雙飛綾畵樑(서연쌍비릉화량) 쌍쌍이 나는 제비 들보 위에 둥지를 짓는다
 
미촌 윤선거(美村 尹宣擧 1610 ~ 1669)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은 파평(坡平) 자 길보(吉甫), 호 미촌(美村), 노서(魯西), 산천재(山泉齋), 시호 문경(文敬)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윤문거(尹文擧)의 아우이며, 윤증(尹拯)의 아버지이다. 김집(金集)의 문인이다.
1633년(인조 11) 식년문과에 형 윤문거와 함께 급제하였다. 1636년 청나라의 사신이 입국하자 성균관의 유생들을 규합, 사신의 목을 베어 대의를 밝힐 것을 주청 하였다. 그 해 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피신하였다.
이듬해 강화도가 함락되자 처 이 씨가 자결하였으나 평민의 복장으로 탈출하였다. 1651년(효종 2) 이래 사헌부지평·장령 등이 제수되었으나, 강화도에서 대의를 지켜 죽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끝내 취임하지 않았다. 김집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성리학과 예학(禮學)에 잠심(潛心 : 어떤 일에 마음을 두어 깊이 생각함)하였다.
송시열(宋時烈)이 경전주해(經傳註解) 문제로 윤휴(尹鑴)와 사이가 나빠지자, 평소 윤휴와 친교가 깊었고 윤휴의 재질을 아끼는 마음에서 변호하는 태도를 취하다가, 교분이 두터웠던 송시열로부터 배척을 당하게 되었다. 이것이 뒤에 노소분파의 한 계기가 되었다.
유계(兪綮 1607∼1664)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와 함께 저술한 『가례원류(家禮源流)』·『후천도설(後天圖說)』 및 이에 관하여 유계와 논변한 편지를 비롯한 많은 저술을 남겼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영춘(永春)의 송파서원(松坡書院), 영광(靈光)의 용암사(龍巖祠), 노성(魯城)의 노강서원(魯岡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노서유고(魯西遺稿) 26권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영정전이수(詠庭前梨樹 : 뜰 앞의 배나무를 읊다)  - 청탄 한익항(聽灘 韓翼恒 : 조선시대 문인. 생졸연대 미상)

一室淸如水(일실청여수) 온 집안에 물 같이 맑은 기운 감돌고
簷端樹自交(첨단수자교) 처마 끝에는 나무 가지 얽혔네
夜闌人不寐(야란인불매) 늦도록 잠 못 이루는 밤
明月在花梢(명월재화초) 밝은 달은 배꽃 가지 끝에 걸려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