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들어 한번쯤 외우고 읊조린 이조년(李兆年)의 시조 다정가(多情歌)는 악학십령(樂學拾零 : 조선후기의 문신(文臣)이자 학자였던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1653~1733)이 숙종 39년(1713)에 저술한 악류(樂類)의 시조집(時調集)으로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이라고도 한다. 수록된 작품은 고려(高麗)와 조선초기의 174명에 이르는 시인들의 작품 약 1,100여 수가 수록되어 있다. 이는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시조집이다.)에 실려 있어 배꽃이 만발한 요즘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2020년 중앙일보 세두에 게재된 시인 유자효 님의 자료를 참고하여 편집했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 못 이뤄하노라
은하수가 흐르는 자정 무렵, 달빛에 비친 배꽃이 희다. 목에서 피가 나도록 슬피 우는 두견새가 나의 이 한 가닥 연심(戀心)을 알겠느냐마는 이렇게 잠 못 들어하니 다정도 병인가 한다.
고려 충혜왕 때의 문신 이조년(李兆年)이 쓴 연시(戀詩)다. 시조의 초창기 때 사대부가 이런 사랑의 시를 썼다는 것이 놀랍다. 그야말로 연애 시의 백미(白眉)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안향(安珦)의 제자로 벼슬이 예문관대제학에 이르렀던 그는 충혜왕(忠惠王 : 고려의 제28대 왕)의 황음(荒淫 : 음탕(淫蕩)한 짓을 몹시 함)을 여러 차례 충간하다 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사직한 강직한 선비였다. 이 시조는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 성주(星州)에서 만년을 보낼 때 임금의 일을 걱정하는 심정을 읊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람들이 오래 살지 못했던 시절, 고려 중기의 호족이었던 이장경(李長庚)은 아들들의 장수를 빌며 이름을 백 년(百年), 천년(千年), 만년(萬年), 억년(億年), 조년(兆年)이라고 지었는데 다섯 아들이 모두 높은 벼슬에 올랐다. 형제가 길을 가다 황금 두 덩이를 주웠으나 의가 상할까 봐 강에 던졌다는 ‘의좋은 형제’는 억년과 조년의 이야기로 전한다.
다정가(多情歌)
梨花月白三更天(이화월백삼경천)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인제
啼血聲聲怨杜鵑(제혈성성원두견)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儘覺多情原是病(진각다정원시병) 다정도 병인양 하여
不關人事不成眠(불관인사불성면) 잠 못 들어하노라.
매운당 이조년(梅雲堂 李兆年 1269 ~ 1343)은 시문에 뛰어난 고려시대의 문신으로 본관 성주(星州). 자 원로(元老). 호 매운당(梅雲堂) ·백화헌(百花軒). 시호 문열(文烈)이다.
1294년(충렬왕 20) 진사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안남서기(安南書記)와 예빈내급사(禮賓內給事)를 거쳐 지합주사(知陜州事) ·비서랑(祕書郞)을 역임하였다. 1306년 (충렬왕32) 비서승(祕書丞) 재임 중, 왕유소(王惟紹) 등이 충렬왕 부자를 이간시키고 서흥후(瑞興侯) 왕전(王琠)을 충렬왕의 후계로 삼으려 했다. 이조년은 이에 가담하지 않고 최진(崔晉)과 충렬왕을 보필하였으나 결국 누명을 쓰고 사건에 연루되어 귀양을 갔다. 유배 후 13년간 고향에서 숨어 지냈다. 심양왕(瀋陽王) 왕고(王暠)가 충숙왕의 왕위를 찬탈하려 하자 이 음모를 원나라에 상소하기도 하였다.
1330년 충숙왕 귀국 후 감찰장령(監察掌令)이 되고 전리총랑(典理摠郞)을 거쳐 군부판서(軍簿判書)에 승진, 수차례 원나라에 다녀왔다. 1340년 충혜왕이 복위하자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오르고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이 되어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졌다. 왕의 음탕함을 간하는 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듬해 사직했다. 후에 성근익찬경절공신(誠勤翊贊勁節功臣)이 되었다. 공민왕 때 성산후(星山侯)에 추증, 충혜왕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를 남겼다.
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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