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한낮 최고기온이 36도까지 올랐다. 혹서의 절정으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야속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른 새벽 6시에 출발하여 영종에 있는 백운산(255m) 정상을 향하는데 쉬지않고 오르면 약 25분이 소요된다.
정상에서 맞이하는 시원한 바람이 나를 반기며 정면에는 인천공항 활주로와 좌측의 인천대교, 우측에는 강화도가 오늘따라 선명하게 다가온다.
어제는 백운사(白雲寺)는 안내표시가 있어 찾아가 보니 아담하고 소박한 작은 사찰이 편안한 장소에 터를 정하여 남향을 향해 있다. 사찰을 관리하는 노인에게 여쭤보니 약 75년전에 세워진 사찰로 스님 한 분이 주석하고 있다고 하며 마당 앞에는 큰 화분에 연꽃 이 피어있어 아름다운 사찰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다.
대웅전 편액은 일붕 서경보(一鵬 徐京保)의 글씨이며 주련(柱聯) 내용은 당나라(800년경) 선자덕성(船子德誠)이 읊은 발도가(撥棹歌) 사구게(四句偈)의 어부송(漁父頌)으로 알려진 선시를 사찰 풍경과 김호귀 교수의 설명을 함께 올려보고자 한다.
선자덕성 발도가 어부송( 船子德誠 撥棹歌 漁父頌)
千尺絲綸直下垂(천척사륜직하수) 천자의 긴 낚싯줄 곧게 드리우니
一波纔動萬波隨(잂파재동만파수) 한 물결이 일자 만 물결이 따라 인다.
夜靜水寒魚不食(야정수한어불식) 고요한 밤 물은 차서 고기 물지 않으니
滿船空載月明歸(만선공재월명귀) 배 가득 허공 싣고 달빛에 돌아오네.
협산(夾山)이 선자(船子)를 방문하자, 선자가 물었다. “천 자나 되는 낚싯줄을 드리운 것은 깊은 물속에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세 치의 갈고리를 벗어난 경지를 그대가 말해보지 않겠는가.”
협산이 뭐라 말하려 하자, 선자가 밀쳐서 물속에 빠뜨려버렸다. 협산이 헤엄쳐 나오자 다시 밀치고 말했다. “자, 말해 보라. 어서 말해 보라.”
협산이 뭐라고 말하려고 하자 선자가 또 밀쳐버리는 찰나 협산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였다. 이에 고개를 세 번이나 끄덕여 보였다. 선자가 말했다. “낚싯줄을 드리우는 것은 그대 마음이지만 맑은 물 흐리지 않아야 뜻대로 성취된다.”
마침내 협산이 정식으로 물었다. “떡밥을 꿰어 낚싯줄을 드리우는 스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선자가 말했다. “낚싯줄에 부표를 붙여 푸른 물에 드리우는 것은 물고기가 있나 없나 살피려는 것이다. 자, 말해 보라. 어서 말해 보라.”
협산이 말했다. “말의 뜻은 깊지만 방도가 없고 혓바닥은 놀리지만 아무런 말도 없습니다.”
선자가 응수했다. “모든 강물에 낚싯줄을 던져봐야 비로소 금빛 잉어를 낚는다네.”
협산이 자신의 귀를 틀어막자, 선자가 말했다. “모름지기 그래야지.”
선자덕성(船子德誠)은 생몰 연대와 고향 및 속성이 모두 미상이다. 후에 화정(華亭)에서 뱃사공 노릇을 하면서 왕래하는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였기에 선자화상(船子和尙)이라 불렸다. 협산선회(夾山善會, 805~881)는 도오원지(道吾圓智, 769~835)의 권유에 따라 선자덕성(船子德誠)에게 참문하고 그 법을 이었다. 법맥은 약산유엄(藥山惟儼) - 선자덕성(船子德誠) – 협산선회(夾山善會)이다.
위의 문답은 협산이 화정의 선자덕성을 처음 찾아뵈었을 때의 상황이다. 스스로 뱃사공 노릇으로 삶을 살았던 선자덕성이 드리운 낚싯줄은 자신의 법을 이을 제자를 찾는 수단이었다. 선자는 사람을 공짜로 건네주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법을 설하여 그 깜냥을 살펴보았다. 마침 도오원지에게서 소식을 듣고 협산을 기다렸다가 갈고리를 벗어난 경지에 대하여 물었다. 갈고리는 그대로 온갖 수단과 방법과 절차를 상징한다. 그 모든 방식을 벗어나 단도직입으로 협산의 속내를 말해보라는 것이다. 질문을 받은 그 찰나에 협산은 이미 선자덕성의 낚싯바늘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무어라 한마디 답변을 건네보기도 전에 벌써 물에 꼬꾸라져버렸다. 갑자기 물에 빠진 순간 협산은 자신의 모든 분별심과 어설픈 지식을 몽땅 내려놓고 오로지 죽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바로 그 순간의 경험으로 활연대오할 수 있었다.
‘낚싯줄을 드리우는 것은 그대 마음이지만 맑은 물 흐리지 않아야 뜻대로 성취된다’는 말은 수행은 물론이고 깨침과 부처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어떠한 집착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협산은 모든 강물에 낚싯줄을 드리우듯이 모든 종류의 사람을 겪으면서 온갖 수행을 터득한 스승의 가르침조차도 번거로워 스스로 귀를 틀어막는 시늉을 하였다. 이로써 선자덕성은 그토록 기다리던 제자를 만나 법을 전할 수 있었다.
‘말뜻은 깊지만 방도가 없고 혓바닥은 놀리지만 아무런 말도 없습니다’는 말처럼 이후로 협산은 20년 넘도록 불조(佛祖)의 가르침마저도 번거로운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런 점에서 협산에게 상근기(上根機)의 사람은 말을 듣는 순간 깨침을 터득하지만, 중하근기의 사람은 바람에 이는 물결을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부평초와 같은 존재로 간주되었다. 협산은 심지가 굳은 납자를 스스로 미오(迷悟)와 생사(生死)의 분별을 직절(直截)하는 지혜의 보검으로 드러냈는데, 지혜의 보검이 스승에게는 황금잉어였다. 여기에서 선자덕성이 낚았던 금빛 잉어란 다름 아닌 협산선회(夾山善會)였다. 황금잉어는 어떤 개념과 수단에도 집착의 그물을 벗어난 활달불기(豁達不羈)한 선기를 상징한다. 그런데 황금잉어는 무얼 먹고사는 걸까? 김호귀 교수의 공곡집(空谷集)과 선문답(법보신문 2020. 2. 17)
(영종도 백운사 전경)
'삶의 향기 > 차한잔의 여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지로 주고받은 한시(퇴계와 율곡) (0) | 2024.08.22 |
---|---|
덕숭산 수덕사(德崇山 修德寺) (0) | 2024.08.20 |
위응물 기전초산중도사, 기찬율사(韋應物 寄全椒山中道士, 寄璨律師) (0) | 2024.07.30 |
위응물 동교(韋應物 東郊) (1) | 2024.07.25 |
위응물 임락양승청고(韋應物 任洛陽丞請告) (1) | 2024.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