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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백거이 동초주숙(白居易 冬初酒熟) 2수(2首)

사회생활을 하며 오래토록 좋은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행운을 잡은 것과 같다. 논어(論語)의 계씨(季氏) 편(篇)에는 주로 삶에 있어서의 ‘처신’의 문제와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교류’의 원칙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14장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제4장(子曰; 益者三友 損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 益矣, 友便僻 友善柔 友便佞, 損矣. : 벗에는 유익한 세 벗이 있고, 해가 되는 세 벗이 있다. 정직한 사람, 신의가 있는 사람, 견문이 많은 사람은 유익하다. 겉치레만 하는 허식적인 사람, 아첨 잘하는 사람, 말을 잘 둘러대는 사람은 해가 된다.)의 내용처럼 유익한 벗이 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소중한 동반자이다. 술과 친구는 오래되어야 좋듯이 좋은 친구와 가끔 술 한잔 같이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시간이다.

이태백(李太白)의 월하독작(月下獨酌) 시들은 시인의 특이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여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술을 주제로 하고 있다. 달 아래서 꽃을 벗하며 홀로 술을 마시는 것은 낭만적일 수 있지만 그 속에 시인의 근심이 숨겨져 있다.

소개하고자 하는 백거이(白居易)의 동초주숙(冬初酒熟) 2수는 초겨울에 익은 술을 홀로 마시며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읊은 시로 2수가 전해지는데 제1수는 가을이 가고 초겨울이 되는 풍경을 묘사하고 겨울을 보낼 걱정을 하며 술을 빚어 놓았지만 함께 할 사람이 없으니 술독을 바라보는 모습을 읊었으며, 제2수에서는 술이 익어도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홀로 술을 마시며 신선의 경지에 올라 남은 인생을 취하여 지내고 싶은 심정을 읊었다. 이 시절에 한번쯤 음미해 보고픈 시  2수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동초주숙(冬初酒熟 : 초겨울 익은 술)  一.

霜繁脆庭柳(상번취정류) 잦은 서리에 뜰의 버드나무 시들고

風利剪池荷(풍리전지하) 바람 세차니 연못에 연잎이 꺾였네.

月色曉彌苦(월색효미고) 달빛은 새벽을 더욱 괴롭게 하고

鳥聲寒更多(조성한경다) 새소리가 추위를 더 느끼게 하네.

秋懷久寥落(추회구요락) 가을을 추상(追想)하니 오래도록 적막하고

冬計又如何(동계우여하) 겨울을 또한 어찌 지내리

一甕新醅酒(일옹신배주) 새로 빚은 한 항아리의 술은

萍浮春水波(평부춘수파) 봄 물결에 떠 있는 부평초라네.

 

其二.

酒熟無來客(주숙무래객) 술이 익어도 찾아오는 손님 없으니

因成獨酌謠(인성독작요) 혼자 마시고 노래 부르네.

人間老黃綺(인간노황기) 속세에서 늙어가는 *하황공과 기리계 같고

地上散松喬(지상산송교) 지상에서 헤어진 *적송자와 왕자교 같구나.

忽忽醒還醉(홀홀성환취) 문득 깨었다가 다시 취하니

悠悠暮復朝(유유모부조) 유유히 밤이 또 아침이 되네.

殘年多少在(잔년다소재) 남은 인생 얼마 남지 않으니

盡付此中銷(진부차중소) 모두 주어 이곳에서 사라지게 하리라.

 

*황기(黃綺) : 상산사호(商山四皓) 중 하황공(夏黃公)과 기리계(綺里季)를 말한다. 상산사호(商山四皓)는 진(秦) 나라 말기 진 시황제(秦 始皇帝)의 학정(虐政)을 피해 상산(商山)에 은둔했던 네 노인으로 동원공(東園公), 하황공(夏黃公), 기리계(綺里季), 녹리선생(甪里先生)을 이르는데, 나이가 80을 넘어 머리가 희었으므로 사호(四皓)라 칭하였다.

 

*송교(松喬):전설 속의 선인(仙人)인 적송자(赤松子)와 왕자교(王子喬)를 말한다. 적송자(赤松子) 신농씨(神農氏) 때에 우사(雨師)였으며 음식으로 물을 먹고 옥으로 옷을 해 입으며, 신농에게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견디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금화산(金華山)에 살다가 스스로 몸을 태워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왕자교(王子喬)는 주(周) 나라 여왕(厲王)의 태자이며, 생황을 잘 불어 봉황의 울음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수(伊水)와 낙수(洛水) 사이를 노닐었는데 도사인 부구공(浮丘公)이 왕자교(王子喬)를 데리고 숭산(嵩山)에 올라 30여 년을 지낸 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