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마지막 날 출근길 세종의 아침기온이 영하 7도를 가리키고 있다. 초겨울의 매서운 한파답게 몸에 스미는 한기에 두꺼운 장갑을 끼고 목도리도 하였다. 젊은 시절은 더위보다 추위가 견딜 만했는데 이제는 겨울보다 여름을 조금 더 선호하게 되었는데… 이는 나이 든 탓인가 보다.
어제는 홀로 지세는 긴 밤을 위하여 반주 삼아 간단하게 안주를 준비하여 독작(獨酌)을 하였다. 혼자 마시는 술은 소주 한 병이면 족하기에 취기가 가시기 전 붓을 잡고 백거이(白居易) 시 동야대주기황보십(冬夜對酒寄皇甫十)시 한 수를 자서해 보았다.
보통의 애주가로서 친구 3명이 모여 함께 마시는 술이 가장 좋고 그다음은 2명이 대작하며 마시는 술이며,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마시는 독작은 그 맛이 반감된다. 4명 이상이 만나 마시는 술은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다르기에 모임이나 회식자리가 아니면 가급적 피하고자 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백거이 또한 어제 같은 날 주우(酒友) 황보서(皇甫曙)를 불러 독작을 면하고자 했을 것이다. 술 고픈 날 주우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니겠는가?
동야대주기황보십(冬夜對酒寄皇甫十 : 겨울밤 술을 마주 하고 황보십을 부르다)
霜殺中庭草(상살중정초) 서리는 안마당의 풀을 다 시들게 하고
冰生後院池(빙생후원지) 얼음은 후원 연못에서 생기네.
有風空動樹(유풍공동수) 나무를 흔드는 바람은 있어도
無葉可辭枝(무엽가사지) 가지에서 떨어질 낙엽은 없네.
十月苦長夜(시월고장야) 시월의 괴롭고도 긴 긴 밤
百年強半時(백년강반시) 백 년 인생 과반을 지난 나이.
新開一瓶酒(신개일병주) 이제 금방 술 한 병을 개봉하자니
那得不相思(나득불상사) 어찌 그대가 생각나지 않겠나.
하기 내용은 중국학의 인프라 구축 및 중국학 연구 성과의 대중화를 주요 지향으로 하여 설립된 중국학 포털 사이트 중국학@센터(sinology.org)의 홈페이지 내용을 참고하였다.
이 시는 백거이(白居易, 772~846)가 66세 때인 837년 낙양에서 태자소부 분사(太子少傅分司)라는 한직에 있을 때 지은 시이다. 이 시의 수신자인 황보십(皇甫十)은 황보서(皇甫曙)를 말한다. 황보서는 행정 관료이면서 시인으로는 백거이, 유우석(劉禹錫)과 교제가 깊었다. 당시 그는 하남 소윤(河南少尹)으로 있었다. 참고로 백거이는 831년에 하남 윤(河南尹)을 한 적이 있다. 소윤(少尹 : 조선시대에 상서사(尙瑞司) ·종부시(宗簿寺) ·한성부(漢城府) ·개성부(開城府) 등에 둔 정 4품 벼슬)은 조선 시대로 치면 서윤(庶尹)과 같은 관직으로 평양부윤, 한성부윤 이런 관직의 부(副)가 되는 관직인 셈이다.
황보서(皇甫曙)는 황보 낭중(皇甫郎中)이나 황보십의 형태로 백거이 시에 나오며 백거이가 쓴 자전인 <취음선생전(醉吟先生傳)>에는 숭산(嵩山)의 승려 여만(如滿)은 공문우(空門友 불교의 벗), 평천의 객 위초(韋楚)는 산수우(山水友 산수의 벗), 팽성(彭城)의 유몽득(劉夢得 유우석)은 시우(詩友)라고 한 뒤에 안정(安定)의 황보 랑(皇甫郞)는 주우(酒友)라고 되어 있다. 황보 랑이 바로 황보서이며 이 시에는 황보 십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주우(酒友)는 조선시대에도 쓴 말인데 지금도 ‘술친구’라고 많이 쓰는 말이다. 백거이는 이런 사람들을 매일 만나 같이 노느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잊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이 <취음선생전>을 67세에 쓴 것이니 바로 이 시의 상황과 같은 것이다.
백거이 문집에 실린 관련 시를 찾아보면, 백거이가 먼저 황보서에게 보낸 시도 있고 황보서가 보낸 시에 백거이가 화답하는 시도 있는 것으로 보아 자주 시와 서찰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거이가 보낸 시를 보면 꽃이 피었으니 같이 감상하자거나 술이 익었으니 같이 먹자는 그런 함의(含意)를 담아 보낸 시가 많다.
이 시 역시 술 마시기 좋은 날씨와 기분 속에서 술친구를 떠올리며 한 잔 하자고 부르는 시이다. 그러니 자연 초대한다는 마지막 말 앞에 서술된 내용은 모두 술 생각이 나게 하는 조건인 셈이다. 그 내용도 통속적이며 표현도 쉬운 말로 되어 있다. 이 쉬운 말과 통속적인 내용은 백거이 시의 최대 장점이면서 동시에 또 최대 약점이기도 하다.
나무에서 낙엽이 다 떨어진 상태라 바람이 불어도 공연히 나무만 흔들어댈 뿐 떨어질 나뭇잎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아주 재미있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음력 10월 무렵은 밤이 실제보다 길게 느껴지는 달인데 예전 사람들도 그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강반(强半)은 과반을 지난 것을 말한다. 당시 백거이는 이미 66세라 과반을 지난 지 한 참되었는데도 이런 표현을 쓰고 있으니 스스로는 아직 살날이 많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나무에 나뭇잎은 하나도 없고 겨울바람이 휘익, 휘익 불어온다. 그리고 후원에는 얼음이 언 쌀쌀한 날씨, 그리고 밤도 길다. 또한 인생의 과반을 살았고 이제 시간을 허비해 가면서 시비의 총중에 빠지고 싶지도 않다. 포부도 줄이고 욕심도 줄이고 자연과 벗 삼고 좋은 이들과 얘기하면서 한 잔 술로 인생을 말한다. 백거이는 지금 이런 기분으로 살고 있다. 백거이는 눈 오는 아침이나 달뜨는 저녁, 좋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시를 짓는다. 술이 얼근해지면 금(琴)을 연주하고 그러다 흥이 나면 가동(家僮)을 불러 악기를 연주하게 하고 더욱 기분이 나면 집안의 기생에게 노래를 시키고는 신나게 노래하고 술에 취해 고주망태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기 집에서만 이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나 멀리까지 찾아가서 시도 짓고 술도 마시며 인생을 즐겼다.
술 먹기 딱 좋을 정도의 쓸쓸함과 우울함, 새로 좋은 술 한 병을 개봉하니 술친구가 어찌 생각나지 않겠는가. 이 시를 받은 황보 십은 바로 한 잔 하러 가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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