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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공주 계룡산 갑사(公州 鷄龍山 甲寺) 가을 풍경

입동(立冬)이 지나 겨울날씨답게 아침 기온이 영하를 밑돌고 있다.

십 여년 전 계룡산을 동학사(東鶴寺)를 출발하여 삼불봉(三佛峰)과 관음봉(觀音峯)을 거쳐 갑사(甲寺)로 이어지는 코스로 산행을 하였는데 내려오는 길이 험하고 피곤하여 갑사를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기억이 있어 주말을 맞이하여 다시 갑사를 찾게 되었다.

 

갑사(甲寺)는 마곡사(麻谷寺)의 말사(末寺)로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계룡산 서쪽 기슭에 있는 절로 계룡갑사(鷄龍甲寺), 갑사(岬寺), 갑사사(甲士寺), 계룡사(鷄龍寺)라고도 불린다. 백제 27대 위덕왕(威德王) 3년(556년)에 혜명대사(慧明大師)가 중건(重建)하였다. 그 뒤에 의상(義湘)이 도량을 설치하고 법당을 증수하여 그 규모가 커졌다. 경내에는 대적전(大寂殿), 부도(浮屠), 철당간지주(鐵幢竿支柱) 등 보물과 군자대(君子臺), 용문폭(龍門瀑) 등 비경이 있다. 동구 울창한 숲길은 여름에도 서늘한 감을 주며 계곡 사이 펼쳐지는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사보(寺寶)로는 천근 범종(千斤 梵鐘)과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목각판(木刻版) 등이 있다.

백제 이래 풍(豊)한 불교문화의 본산이 되어왔던 계룡산의 여러 사찰 중에서도 가장 풍부한 문화유적을 간직한 천년 고찰로서 백제 구이신왕(久爾辛王) 원년(420)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고, 갑사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거찰(巨刹)로 발전한 것은 백제 멸망 후의 통일신라기의 일이었다. 위덕왕(威德王) 3년(556) 혜명대사가 천불전(千佛殿) 및 진광명전(眞光明殿), 대광명전(大光明殿)을 중건하였고 후에 신라의 의상대사는 당우(堂宇) 천여 칸을 중수하고 화엄대학지소(華嚴大學之所)를 창건하여 화엄종의 도량이 됨으로써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번창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영규대사(靈圭大師)를 중심으로 왜군에 항거하는 승병궐기(僧兵蹶起)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갑사는 조선 선조 30년(1579) 정유재란(丁酉再亂) 시 침입한 왜구들에 의하여 한꺼번에 소실되어 선조 37년(1604) 대웅전과 진해당(振海堂) 중건을 시작으로 재건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갑사 하면 떠오르는 것이 고전문학 연구자이면서 수필가인 이상보의 대표적인 현대 수필인 ‘갑사로 가는 길’ 이다. 남녀와 금수(禽獸)가 경계를 초월해 만들어낸 신묘한 전설을 바탕으로 갑사의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단풍이 곱게 물든 산사의 아름다움은 공주시를 대표하는 명소이자 가람 배치도 주변지세와 어울려 조화롭고 소박하면서도 고풍을 잘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기도 했다.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갑사의 풍경사진과 함께 대웅전, 대적전 주련(柱聯)을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계룡산 갑사 풍경)

갑사 대웅전
갑사로 가는 길
사천왕문(四天王門)
범종루(梵鍾樓)
대웅전

 

대웅전 주련(大雄殿 柱聯)

淨極光通達(정극광통달) 청정함이 극에 이르면 광명이 걸림 없으니

寂照含虛空(적조함허공) 온 허공을 머금고 고요히 비출 뿐이라.

却來觀世間(각래관세간) 물러나와 세상 일을 돌아보니

猶如夢中事(유여몽중사) 모두가 마치 꿈속의 일과 같도다.

雖見諸根動(수견제근동) 비록 육근(귀,눈,코,혀,몸,뜻)이 유혹을 만날지라도

要以一機抽(요이일기추) 한 마음을 지킴으로써 단번에 뽑아버릴지어다.

 

진해당(振海堂 : 조선 시대 대웅전과 함께 중건되었고, 약사불을 모신 불단이 있다.)
적묵당(寂默堂 : 처음 불도를 닦는 스님이 수행하는 곳. 현 종무소)
삼성각(三聖閣)
관음전(觀音殿)
관음전 담장위에 계절을 잊고 늦게 핀 해당화(海棠花)

 

월인석보 판목(月印釋譜 版木. 보물 제 582호) 보관소
대적선원(大寂禪院)
내원암(內院庵)가는 길
내원암(內院庵)은 갑사(甲寺)에 소속된 암자로 석가모니와 관세음보살을 모신 불전과 누각 및 생활이 가능한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
팔상전(八相殿)은 석가모니불 과 팔상탱화(八相幀畵), 그리고 신중탱화(神衆幀畵)를 모시고 있으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며 격식을 갖춘전각이다.
표충원(表忠院) 입구
표충원(表忠院)은 승병장(僧兵將) 휴정(休靜) 서산대사(西山大師), 유정(惟政) 사명대사(四溟大師), 기허당(騎虛堂) 영규대사(靈圭大師)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으며, 영조 14년(1738년)에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격퇴한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전각이다.
의승장기(義僧將騎 : 영규대사(靈圭大師)의 행장이 기록한 비)
공우탑(功牛塔 : 탑 건립 연대는 알려져 있지만 원래 갑사 소속의 한 암자에 있던 것을 현재 위치로 옮겼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으나, 그 암자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탑신에 우탑(牛塔), 공(功)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사찰 중건에 공이 컸던 소를 기념하기 위해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갑사 계곡의 작은 폭포
대적전(大寂殿)은 조선시대의 건축물로 1984년 1월 11일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되었다. 갑사 대적전의 연혁은 정면 어간에 걸린 현판에 도광6년4월목암서(道光6年4月牧岩書)라는 기록이 있는데 도광 6년(순조 26년, 1826년)이 대적전의 건립연대로 추정된다.

 

대적전 주련(大寂殿 柱聯)

太一眞如大覺空(태일진여대각공) 천지본원 진여세계 공의 도리를 대각하니

法身卽寂化身雄(법신즉적화신웅) 법신은 공적(空寂)하고 화신은 웅장해라

金軀艮佛眉間白(금구간불미간백) 금빛 몸 부처님 미간 광명의 빛으로

長照一元三甲中(장조일원삼갑중) 길이길이 온 우주를 비추시네

대적전 부속암자로 돌담이 정겹다.
갑사 부도(浮屠)는 고려 시대의 부도로 전체가 팔각을 이루며, 기단은 아래층이 넓고 위층으로 갈수록 점차 줄어든다. 몸체에 조각된 여러 무늬와 기법은 고려 시대의 승탑들 가운데에서도 뛰어나다. 정식 명칭은 공주 갑사 승탑(僧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