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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봉암 채지홍 경칩(鳳巖 蔡之洪 驚蟄)

경칩(驚蟄)은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節氣)로 계칩(啓蟄)이라고도 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345도에 이르는 때로 동지 이후 74일째 되는 날이다. 양력으로는 3월 5일 무렵이 된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인 요즈음이 되면 겨울철의 대륙성 고기압이 약화되고 이동성 고기압과 기압골이 주기적으로 통과하게 되어 한난(寒暖)이 반복된다. 그리하여 기온은 날마다 상승하며 마침내 봄으로 향하게 된다. 한서(漢書)에는 열 계(啓)자와 겨울잠을 자는 벌레 칩(蟄)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고 기록되었는데, 후에 한(漢) 경제(景帝)의 이름인 계(啓)를 피휘(避諱)하여 놀랠 경(驚)자를 써서 경칩(驚蟄)이라 했다.

앞으로 10여일 지나면 경칩이다. 혹한의 날씨지만 땅속에서는 개구리가 오랜 칩거를 끝내고 잠에서 깨어날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옛사람들은 이 무렵에 첫 번째 천둥이 치고, 그 소리를 들은 벌레들이 땅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봉암선생도 이와 같은 의미에서 우레 소리와 함께 상서러운 기운을 집에 들이고자  경칩시를 읊었으리라. 

봄이 오는 길목에서 서기(瑞氣)를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에 들이고자 경칩시를 예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경칩(驚蟄)

陽長已過半(양장이과반) 밝은 기운 늘어나 절반 넘으니

乾坤淑氣回(건곤숙기회) 하늘 땅 맑은 기운 돌아왔구나.

雷聲驚百蟄(뇌성경백칩) 우뢰에 온갖 벌레 깜짝 놀라고

萬戶一時開(만호일시개) 수많은 집 한꺼번에 문 열어 놓네.

 

봉암 채지홍(鳳巖 蔡之洪 1683 ~ 1741) 조선의 학자로 자는 군범(君範), 호는 삼환재(三患齋)ㆍ봉암(鳳巖). 본관은 인천(仁川). 첨지중추부사 영용(領用)의 아들이다. 권상하(權尙夏)에게 배우고 경전(經傳)의 의리학(義理學)을 연구하였으며 과업을 폐하기로 결심하고 학을 전공, 지덕(知德)이 날로 진취(進就)하였다.

1716년(숙종 42) 학행으로 추천되어 왕자사부(王子師傅)에, 다시 세자(世子 : 영조(英祖)) 시강원자의(侍講院諮議)에 보직되었으나 다 사절하였다. 효종 때에 김일경(金一鏡) 등의 흉계로 동궁(東宮)의 지위가 위태롭게 되자 그는 분연히 소를 올려 흉당(凶黨)을 극구 탄핵하였으며, 적신들이 권상하(權尙夏)를 무고하여 삭직(削職)을 청하니 이에 더욱 분개하여 세상과 인연을 끊고 집을 구운산(九雲山) 중에 옮겨 학문을 연마하는 한편 후진을 가르치는 데 힘썼다.

영조가 즉위하여 상하의 관작(官爵)을 회복시키고 특별히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소를 올려 상하와 송시열 등의 무욕(誣辱) 사건을 통론하고 치운(致雲)의 죄를 다스릴 것을 청하였다. 후에 다시 부여 현감으로 부름을 받고 궐내에 나가 "우암(宋時烈)과 수암(權尙夏)을 참소한 간신들이 아직 조종에 있으니 그들과 같이 동렬(同列)에 머무를 수가 없다"고 사절했으나 왕의 간절한 권유에 감격하여 임지에 나가 선정을 베풀고 공홍도(公洪道 : 충청도(忠淸道)) 도사(都事)에 이르러 사망했다.

그는 성리학 뿐 아니라 관혼상제의 의례, 천하고금 치란(治亂)의 변화에 따른 성상(星像)·지리(地理)·산수(算數) 등의 분야에도 널리 조예가 깊었다.

문집으로 1783년에 간행된 17권 8책의 봉암집(鳳巖集)이 있다. 또 다른 문집으로 1책으로 된 삼환재유고(三患齋遺稿)가 있는데, 서(序)·기(記)·발(跋)·서(敍)·설(說)·잡저(雜著) 등 주로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별적인 주제에 대한 저술로는 성리관규(性理管窺), 세심요결(洗心要訣), 독서전보(讀書塡補), 천문집(天文集)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