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 한장석(眉山 韓章錫, 1832-1894)은 개항기(開港期)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치수(穉綏),치유(穉由), 호는 미산(眉山), 경향(經香)이며, 한필교(韓弼敎)의 아들이다.
1872년(고종 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73년 홍정후(洪正厚)와 같이 홍문관(弘文館)의 부수찬(副修撰)이 되고 교리와 부응교(副應敎)를 거쳐 1881년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이 되었다.
1882년 이조참의(吏曹參議)를 거쳐 1883년 1월에는 통리내무아문(統理內務衙門)을 개편하여 만든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의 협판군국사무(協辦軍國事務)에 임명되어 호무(戶務)에 종사하였다. 같은 해 5월 통리군국사무아문에서 전선사(典膳司)를 관장하며 별시회시시관(別試會試試官)을 역임하였으며, 11월 예문관제학을 거쳐 이듬해 3월에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886년 2월 홍문관제학(弘文館大提學), 같은 해 3월 예조판서, 1888년 형조판서, 1889년 이조판서, 같은 해 12월에 다시 예조판서, 이듬 해 3월 함경도관찰사, 1891년에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유신환(兪莘煥)의 문하인 가운데 김윤식(金允植)·민태호(閔台鎬)와 함께 당대의 문장가로 유명하였으며, 고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미산집(眉山集)이 있다. 시호는 효문(孝文)이었으나, 1910년 문간(文簡)으로 개시(改諡)되었다.
두 달 후 펼쳐질 들녘에 푸른 보리, 유채꽃 만발한 반화방창(萬化方暢) 시골풍경을 한폭의 그림처럼 서정적으로 표한한 시를 자서해 보았다.
田家雜興(전가잡흥 : 농촌의 이런저런 흥취)
西舍麥蒭香(서사맥추향) 서쪽 집 보리이삭 향기로운데
靑尨隨午饁(청방수오엽) 푸른 삽살이 들밥 따라 가누나.
悠揚野菜花(유양야채화) 유채꽃 아스라이 피어오르고
無數飛黃蝶(무수비황접) 노랑나비 수도 없이 날아다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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