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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문충 오관산곡(文忠 五冠山曲 : 부디 더디 늙으시길)

생로병사(生老病死)는 한번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겪어야 하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 큰 고통이다. 태어났으면 반드시 죽는 것은 자연의 법칙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순리인 것이다.
효(孝)라는 것은 부모님 생전에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자식 된 도리 란 입신양명 부귀영화(立身揚名 富貴榮華)도 중요하지만 부모 생전에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살아가며 부모형제간 두터운 정을 나누고 즐거움과 기쁨, 슬픔을 함께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往而不可追者年也 去而不見者親也(왕이불가추자년야 거이불견자친야)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奉養)하고자 하나 부모(父母)는 기다려 주시지 않네.
한번 흘러가면 쫓아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요
가시면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부모님이라”

는 말은 전한(前漢)의 한영(韓嬰)이 시경(詩經)의 해설서(解說書)로 지은 한시외전(韓詩外傳) 9권에 나오는 주(周) 나라 사람 고어(皐魚)에 관한 이야기다.
효도(孝道)를 다하지 못한 채 부모(父母)를 잃은 자식(子息)의 슬픔을 가리키는 말로 부모(父母)가 살아 계실 때 효도(孝道)를 다하라는 뜻의 교훈(敎訓)으로 생전에 잘 모시는 것이 효도이지 돌아가신 후 묘를 잘 가꾸고 제사를 잘 모신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11일 전 91세를 일기로 영면(永眠)에 드신 아버지를 기리며 자식 된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불효의 심정과 앞으로 주어진 시간이 결코 많지 않은 연로하신 어머님에 대한 따뜻한 정을 나누고자 문충의 오관산곡을 해설과 함께 실어보았다.

문충 오관산곡(文忠 五冠山曲)

木頭雕作小唐鷄(목두조작소당계) 나무토막 조각해 작은 당닭 만들어
筯子拈來壁上棲(저자염래벽상서) 젓가락으로 집어서 벽 위에 올려두네
此鳥膠膠報時節(차조교교보시절) 이 닭이 꼬끼오 시간 맞춰 울면
慈顏始似日平西(자안시사일평서) 그제야 어머니 지는 해처럼 늙으시기를

(해설)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익재난고(益齋亂藁) 권 4 소악부(小樂府)에 실려 있는 이 시는 본래 고려시대 문충(文忠 : 생몰연대 미상의 고려시대 사람으로 말직(末職)의 벼슬을 했던 인물로 추정)이란 효자가 지은 것이다. 고려사(高麗史) 권 71 악지(樂志)에 따르면, 문충은 오관산(五冠山) 아래에 살았는데 30리 길이나 되는 개성을 매일 오가며 벼슬살이하여 받은 녹봉으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문안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늙어가는 것을 한탄하여 이러한 노래를 지은 것이다.
이 노래는 향악(鄕樂)의 형식으로 전래되다가 이제현이 한문으로 한역(漢譯)하여 악부(樂府)의 형식으로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
고려사에는 오관산곡(五冠山曲)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후세에는 목계가(木鷄歌), 당계곡(唐鷄曲)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문충의 기사(記事)는 고려사 121권효우열전(孝友列傳)에도 실려 있다.
이후 이익(李瀷)의 해동악부(海東樂府)와 기언(記言 : 조선 학자 허목의 문집), 급암시집(及菴詩集 : 고려후기 학자인 민사평의 시집), 임하필기(林下筆記 : 조선후기 이유원의 문집) 등 많은 전적에 오관산곡의 일화가 인용되었고, 수많은 시인이 효성을 주제로 읊을 때 그의 시를 인용하기도 하였다.

시의 내용은 매우 단순하다. 악부는 본래 민간의 노래를 수집한 것에서 비롯된 형식이므로 내용도 일반 백성들의 정서를 그대로 담아 진솔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효자가 나무토막을 가지고 작은 당닭을 조각하였는데 그 크기는 젓가락으로 집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작다. 이를 벽 위 횃대에 올려놓고 이 나무 닭이 울어 때를 알리면 그때야 비로소 어머니가 석양에 지는 해처럼 늙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나무 닭이 울 리가 없으니 불가능한 것을 전제로 하는 시인의 마음에서 어머니가 늙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더욱 간절히 느낄 수 있다. 불로불사를 바랄 수는 없으나 되도록 더디 늙으시기를 기원하는 것이리라.

언젠가부터 나이가 들면서 주변 지인들을 장례식장에서 만나는 일들이 잦아진다. 외람되지만 고인의 나이를 부모님의 나이와 견주어 보며 아직은 괜찮다 자위하기도 한다. 부모의 늙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식의 성장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버겁다. 한때는 단단한 벽 같았고, 한때는 온 세상 같았던 부모가 조금씩 작아지고 약해지고 위축되어 가는 모습은 아직 낯설기만 하다. 효심의 발로라기보다는, 아직은 좀 더 내 손을 잡아주었으면,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으면, 찾아가면 앙상한 손목으로 여전히 내 등을 쓸어주기를 바라는 욕심으로 부디 더디 늙으시길 바란다. 나의 이 쪼그라든 세상이 아직 무너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성애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