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구입한 새 붓을 잡고 도연명의 음주 제15수를 썼다. 모양새는 그를 듯한데 붓끝은 힘이 없고 파필(破筆)되어 한 글자를 쓰면 다시 먹을 적셔 간추려야 했다. 역시나 하여 살펴보니 중국에서 값싸게 만든 붓이었다. “졸필이 어찌 붓을 탓하랴”를 되 뇌이며 만약 서수필로 썼다면 하는 생각에 쥐수염으로 만든 붓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고자 한다.
앞서 소개한 음주 13수에서 붓에 대해 언급 한 바 있는데 그중 왕희지(王羲之)의 유명한 난정서(蘭亭序)를 서수필(鼠鬚筆 : 쥐의 수염으로 만든 붓)로 썼다는 전하는 기록을 보면 당시 상당히 귀하고 좋은 붓으로 대접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쥐수염과 토끼털, 족제비 털을 섞어 만든 세필(細筆)은 고급 붓으로 세밀화를 그릴 때나 사경(寫經)을 쓸 때 주로 사용된다.
순수한 쥐 수염으로 만든 서수필은 적당한 크기로 한 자루 만드는데 약 2~300마리의 쥐가 필요하다. 붓 재료로 쥐를 사육하거나 실험용 쥐의 수염을 구하기 힘들어 점점 그 명맥을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
서수필 관련 소과(蘇過 1072~1124 : 북송(北宋)의 문학가로 자는 숙당(叔堂)이고 미주(眉州) 미산(眉山) 사람으로 대문호 소식(蘇軾)의 셋째 아들이다. 문장에 능했고, 그림도 잘 그렸다)의 시 중
“分髥雜霜兎(분염잡상토) 쥐 수염을 뽑아 토끼털 섞어 붓을 만드는데
揷架刀槊健(삽가도삭건) 서가에 꽂아두면 칼과 창처럼 강건하고
落紙龍蛇騖(낙지용사무) 종이 위에서는 용과 뱀이 달리는 것 같구나”라는 구절이 있으며,
왕희지(王羲之)는 필경(筆經)에서 ‘世傳張芝(세전장지), 鍾繇用鼠鬚筆(종요용서수필), 筆鋒勁强有鋒芒(필봉경강유봉망) : 세상에 전하기를 장지(張芝. ? ~ 192 : 후한 말(後漢末)의 서예가. 자 백영(伯英). 비백체(飛白體 : 날아갈 듯 붓을 놀려 붓 자국이 하얗게 드러나는 글씨체)와 특히 초서를 잘 써서 초성(草聖)이라 일컬었음.)와 종요(鍾繇 : 151 ~ 230 : 는 중국 후한 말 ~ 삼국시대 위나라의 정치가이자 서예가로 자는 원상(元常)이며 예주 영천군 장사현(長社縣) 사람이다.)가 서수필을 사용했는데 붓끝이 힘이 있고 날카로웠다’라고 했다.
또한 중국 당나라 시대 미술사가(美術史家)인 장언원(張彦遠 : 815 ~ 879)의 법서요록(法書要錄 : 서예 관련 옛 문헌을 모아 엮은 책으로 중국 서예사(書藝史) 연구에 가장 중요한 문헌)의 내용에蘭亭者(난정자), 晉右將軍(진우장군), 用蠶繭紙(용잠견지), 鼠鬚筆(서수필) : 난정서를 쓴 왕희지는 잠견지(蠶繭紙 : 누에고치로 만든 최고급 비단지)와 서수필을 사용했다.라는 기록을 보면 당시 서수필이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붓을 탓하며 자서 한 도연명의 음주 제15수를 실어보았다.
도연명 음주 20-15수(陶淵明 飮酒 20-15首)
貧居乏人工(빈거핍인공) 가난한 생활이라 사람 손이 모자라서
灌木荒余宅(관목황여택) 뜨락의 나무들이 거칠게 자랐네
班班有翔鳥(반반유상조) 오직 새들만이 날아올 뿐
寂寂無行跡(적적무행적) 찾아오는 사람 없어 적막하여라.
宇宙一何悠(우주일하유) 우주는 참으로 크고 영원하거늘
人生少至百(인생소지백) 인생 백 년 이르기 어렵다네
歲月相催逼(세월상최핍) 세월은 서로 재촉하여 밀어내고
鬢邊早已白(빈변조이백) 어느덧 귀밑머리가 희어졌거늘
若不委窮達(약불위궁달) 만약 운명대로 순리를 따르지 않는다면
素抱深可惜(소포심가석) 평생 지닌 그 회포 가히 애석하고 깊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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