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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당 시인 이상은 시 3수 조기, 천애, 억매(唐 詩人 李商隱 早起, 天涯, 憶梅)

보잘것없는 내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이 글에 관심이 있어 운필의 묘에 대하여 궁금한 점이 있어 답글을 남긴 바 있다. 졸필이지만 어려서부터 그때마다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법첩(法帖)을 구해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하였는데 이순(耳順)을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그 열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때로는 왕희지(王羲之),구양순(歐陽詢), 안진경(顔眞卿), 저수량(褚遂良), 황정견(黃庭堅), 유공권(柳公權), 소식(蘇軾), 미불(米芾), 회소(懷素), 손과정(孫過庭), 등완백(鄧頑伯) 뿐만 아니라 국내 안평대군(安平大君), 추사(秋史), 한석봉(韓石峯)에서 근대 유명 서예가가 남긴 유묵을 토대로 한동안 심취하곤 했는데 당시만 해도 화선지가 귀하다 보니 주로 신문지에 연습을 하곤 했다. 지금은 주로 송지(松紙)를 사용하여 평소 마음에 담아왔던 시구 등을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써서 공유를 하고 있다. 하루 많게는 700여명이 다녀가고 평균 500여명이 찾아오고 있다. 특이하게 여기에 표현되는 글은 협서가 없다. 과거에는 협서를 쓰고 낙관을 찍어 구색을 맞추었는데 시대에 흐름에 따라 협서는 글 소개에서 협서를 대신하여 상세히 기술(記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 본문을 쓰고 주로 왼편에 시기(時期)를 표시하는 것을 협서(夾書)라고 하는데 왼편에 쓰는 글은 편서(便書), 오른편에 쓰는 글을 방서(傍書)라 한다.

 

지난 주말 자주 내려가는 울산 양지바른 한적한 터에 홍매 한 그루가 만개했다. 매년 이맘때면 빠지지 않고 살펴보았기에 어김없이 맑은 향기를 품어내며 나를 반겨주었다. 한 동안 매화가 부르는 유혹에 이끌려 고운 자태를 영상에 담아 보았다.

 

앞서 소개한 당(唐) 시인 이상은(李商隱)을 두고 후세인들은 능운시재(凌雲詩材)라 부른다.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시인이라는 뜻으로 불과 46세에 요절하였으나, 사실 당나라 시절의 수천 명 시인 중 재능이 가장 뛰어난 시인 중 한 명이다. 이상은의 시적 구성은 자유분방하며 진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특히 인간의 애정 표현에 대해서 제목을 정하지 않고, 무제(無題)라는 명목으로 사랑과 아름다움을 미화하고 간절한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해서, 민중들로 하여금 널리 애송하게 하였다. 그가 남긴 600여 수 중 5언절구 3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조기(早起 : 일찍 일어나)

風露澹淸晨(풍로담청신) 찬 이슬 바람 부는 맑은 새벽에

簾間獨起人(발간독기인) 발(주렴) 사이 혼자 일어나 보니

鶯花啼又笑(앵화제우소) 앵무새 지저귀고 또 꽃은 웃는데

畢竟是誰春(필경시수춘) 이 또한 누구를 위한 봄이련가

 

천애(天涯 : 만리타향)

春日在天涯(춘일재천애) 봄날 만리타향에 변방에 와 있는데

天涯日又斜(천애일우사) 저 멀리 하루 해가 또 저무네

鶯啼如有淚(앵제여유루) 지저귀는 저 꾀꼬리 눈물 있다면

爲濕最高花(위습최고화) 날 위해 저 높은데 핀 꽃 적셔주렴

 

억매(憶梅 : 매화를 추억하며)

定定住天涯(정정주천애) 멀리 타향에서 정착하며 살면서

依依向物華(의의향물화) 서로 의지하며 만물의 화사함을 같이한다네

寒梅最堪恨(한매최감한) 혹한을 견딘 매화가 가장 한스럽지만

常作去年花(상작거년화) 작년의 꽃처럼 항상 다시 피어난다네

 

만개한 홍매 (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