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시, 대전광역시에 걸쳐 있는 계룡산(鷄龍山)은 높이(天凰峰) 845m로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세가 마치 닭 벼슬을 쓴 용의 모습을 닮아 계룡산으로 불려졌다.
정상인 천황봉(天凰峰)에는 군사시설이 있을 뿐만 아니라 3군 본부가 모인 계룡대가 훤히 보이기 때문에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그래서 민간인 등산객들에겐 관음봉(觀音峯)이 계룡산의 실질적인 정상 봉우리이고, 따라서 동학사(東鶴寺) 쪽으로 관광객이 많다. 등산객들은 주로 동학사-은선폭포-관음봉 코스나 동학사-남매탑-삼불봉 코스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반대편인 갑사(甲寺)에도 관광객이 많은데 동학사-은선폭포-관음봉-삼불봉-갑사로 산을 아예 넘어버리는 코스도 존재한다. 이 코스에는 돌아오는 버스가 있다.
대전 인근에 위치하여 가볍게 생각하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산이 생각보다 많이 험한 편이다.
한원(翰苑 : 660년(唐 顯慶 5년)에 장초김(張楚金)이 찬술 하고, 옹공예(雍公睿)가 훈주(訓注)한 류서(類書)에 "백제 동쪽에 계람산(鷄籃山)이 있다." 하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의 오악(五嶽) 중 서악(西嶽)으로 받들었고 제사를 지내는 명산(名山)으로 정했다고 한다.
조선 태조 때 개경에서 계룡산 남쪽 신도안(新都안)으로 도읍지를 옮기려 하였으나, 하륜(河崙)이 반대하여 신도안 대신 한양으로 도읍지를 변경하였다. 훗날 신도안 지역에는 3군 본부(계룡대)가 들어서 계룡시가 설치되었다.
조선 초 도읍지 후보였음과 정감록의 영향으로 정 씨 왕조가 여기를 도읍으로 삼는다는 전설로 인해 계룡산 일대가 '길지(吉地)'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한때 많은 소규모 종교단체들이 특히 신도안에 난립한 적이 있다. 특정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정감록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언젠가 미래의 수도가 된다는 신도안으로 이주하여, 없던 마을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원불교에서도 신도안 지역이 나중에 불교의 중심지가 된다 믿고 매우 중시하여, 1967년 신도안에 삼동원(三同園)이라는 종교시설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다만 삼군본부가 들어서서 신도안 밖으로 이주할 때, 원불교 교단은 "군사시설이 미래에 다른 곳으로 이전할 경우, 삼동원 터를 최우선적으로 원불교에 반환한다."라는 조건으로 매각하여, 언젠가 복귀할 근거를 마련하였다.
위와 같은 역사 때문에 수도이전 떡밥이 제시되었을 때 주목받았다. 현재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특별자치시와 매우 가깝다.
풍수사상의 관점으로 볼 때 우리 국토 가운데 도읍이 될 명당으로 개성의 송악산, 한양의 북한산, 공주의 계룡산을 포함한 3대 길지로 등장하는데 계룡산은 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에서 정감록(鄭鑑錄) 비기(秘記) 중에서 문장이 가장 길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가장 다양하기 때문에 혹자들이 이것이야말로 정감록의 진본이라 하기도 하며, 도선국사(道詵國師)의 기록이라고 주장되기도 한다. 이는 감결(鑑訣 : 흔히 정감록의 원본이라고 말하는데 이 감결에서 많은 이서(異書)들이 파생되었다고 한다)이 주로 조선이 망한 뒤 정 씨의 시대에 대하여 예견하는데 반해 삼한산림비기는 고려의 창업을 예언하고 있으며, 시기적으로도 도선국사와 비슷한 데서 연유된 듯하다. 삼한산림비기에 보이는 계룡산 관련 문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계룡산 아래 도읍할 땅이 있으니 정씨가 나라를 세우리라. 그러나 이 씨에게는 미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밝은 임금과 의로운 임금이 연달아 나고, 세상이 운회(運回) 하는 때를 당해 불교를 크게 일으키고, 어진 재상·슬기로운 장수·불사·문인 등이 왕국에 많이 나서 일대의 예악(禮樂 : 예와 악으로 사람들을 도덕적으로 교화하여 인을 실현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유가의 사상)을 찬란하게 장식하리니 드물게 보는 일일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풍수도참가(風水圖讖家)들의 비기(秘記)를 종합하면, 통일신라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개성의 송악산(松嶽山) 시대를 예고하였고, 그 후 한양의 북한산 시대가 이어지고, 그 시기를 지나면 계룡산 중심의 새로운 시대가 개창할 것을 인지하였다. 또한 통일신라 경주 200년, 고려 개성 400년, 조선 한양 600년이 지나면, 백성이 주인인 공주(현재의 대전) 계룡산 800년 도읍과 그 후 경남 가야산(伽倻山) 1000년 도읍을 주창하였다. 서울은 이미 성도 600년 지기(地氣)를 다했으니 앞으로 800년을 지탱할 길지(吉地)가 계룡사의 정기를 받은 대전, 세종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어쩌면 대전, 세종이 도시기반이 되고 신도안(新都內)에 청와대가 들어서야 할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세종시에 들어가 보면 교통인프라가 겨우 인구 10만정도를 수용할 규모의 도시공간이다. 인구 유입에 따른 교통불편으로 도시발전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고 도시 설계자, 승인자들은 두고두고 공분을 살 것이며, 최소 십년대계를 내다보지 못한 대표적인 탁상공론의 결과로 큰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어찌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제104주년 3.1절을 맞아 계룡산을 올랐다. 비록 미세먼지로 시계(視界)는 좋지 않았지만 약 4시간에 걸친 산행을 하며 남긴 사진들을 올려보고자 한다.
계룡산 등정(鷄龍山 登頂)
대웅전 주련(大雄殿 柱聯) 글귀를 행서체로 자서(自書)해 보았다.
佛身普遍十方中(불신보편시방중) 부처님은 우주에 가득하시니
三世如來一切同(삼세여래일체동) 삼세의 모든 부처님 다르지 않네
廣大願雲恒不盡(광대원운항부진) 광대무변한 원력 다함이 없어
汪洋覺海渺難窮(왕양각해묘난궁) 넓고 넓은 깨달음의 세계 헤아릴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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