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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유우석 죽지사(劉禹錫 竹枝詞)

들녘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상큼하고 따뜻하다.
이런 날 김기웅 작사, 박인희 노래 “봄이 오는 길”이 저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산 넘어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온다네
들 넘어 고향 논밭에도 온다네. . . .

앞서 정월대보름을 맞아 조수삼(趙秀三)의 상원죽지사(上元竹枝詞) 세시풍속(歲時風俗) 5수를 소개한 바 있는데 죽지사(竹枝詞)는 넓은 의미로 악부시(樂府詩)에 포함된다. 악부(樂府)는 민가(民歌)로부터 발전한 중국의 시가 형식을 가리키며, 한국의 민요와 시가를 한시화한 소악부를 모방해서 지은 시와 역사·풍속·민간의 풍정을 묘사한 시 등을 총칭하여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죽지사가 도입된 이래 약 1000여수에 이르는 시가(詩歌)가 전해질 정도로 문인들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죽지(竹枝)라는 민가(民歌)를 죽지사(竹枝詞) 작품양식으로 재정비하여 문단에 부각한 사람은 당나라 유우석(劉禹錫)이다. 즉 죽지사의 원조인 샘이다.
류유석의 죽지사는 11곡으로 2곡과 9곡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 곡의 시는 첫사랑에 빠져있는 소녀의 세심한 심정을 읊었으며, 두 번째 곡은 첫 번째 곡처럼 고조파로 함축적인 일을 쓰지 않고, 거처에서 파인(巴人)의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으로 전체 시 스타일은 밝고 활기찬 삶의 분위기와 독특한 민속 특성을 잘 표현했다. 후죽지사 2수와 죽지사 9수, 죽지사 서문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당(中唐) 시인 유우석(劉禹錫 772 ~ 842)은 앞서 누실명(陋室銘) 등 에서 소개한바 있어 생략하도록 하겠다.

후죽지사 2수(後竹枝詞 2首)
其一.

楊柳靑靑江水平(양류청청강수평) 버들은 푸르고 강물은 잔잔한데
聞郞江上唱歌聲(문랑강상창가성) 강가에서 그대의 노랫소리 듣네
東邊日頭西邊雨(동별일두서변우) 동쪽에 해 뜬 채로 서쪽에 비 내리지만
道是無晴卻有晴(도시무청각유청) 안 갠 듯 보이는 길 곧 갤 것이네

其二.
楚水巴山江雨多(초수파산강우다) 초 땅과 파 땅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巴人能唱本鄕歌(파인능창본향가) 파인(시골사람)들은 능숙하게 고향 노래 부르네
今朝北客思歸去(금조북객사귀거) 북에서 온 길손 아침부터 돌아갈 생각이라
回入紇那披綠羅(회입흘나피녹라) 돌궐로 돌아가면 푸른 망토 걸치겠지

죽지사 9수(竹枝詞 9首)
其一.
白帝城頭春草生(백제성두춘초생) 백제성 성벽 위에 봄 풀 생기고
白鹽山下蜀江淸(백염산하촉강청) 백염산 아래 촉강은 맑기도 해라
南人上來歌一曲(남인상래가일곡) 남쪽사람은 올라와 노래 부르는데
北人莫上動鄕情(북인막상동향정) 북쪽사람은 산 밑에서 고향 그리네

其二.

山桃紅花滿上頭(산도홍화만상두) 산복숭아 붉은 꽃 산마루에 가득하고
蜀江春水拍山流(촉강춘수박산류) 촉강의 맑은 봄물 산을 치며 흘러가는데
花紅易衰似郞意(화홍이쇠사랑의) 쉬 시드는 붉은 꽃 님의 마음 같고
水流無限似儂愁(수류무한사농수) 쉬지 않고 흐르는 물 내 시름을 닮았네

其三.

江上朱樓新雨晴(강상주루신우청) 강 위에 붉은 누각 오던 비 개고
瀼西春水縠文生(양서춘수곡문생) 양수 서쪽 봄 물결무늬 고아라
橋東橋西好楊柳(교동교서호양류) 다리 동서 양쪽에 버들 한창인데
人來人去昌歌行(인래인거창가행) 오가는 사람들 노래하며 길 떠나네

其四.
日出三竿春霧消(일출삼간춘무소) 해 뜨고 한참 지나 봄 안개 걷히고
江頭蜀客駐蘭橈(강두촉객주란요) 강에는 촉으로 가는 사람 실은 배가 서있네
凭寄狂夫書一紙(빙기광부서일지) 이름 없는 지아비에게 짧은 편지 써 보내며
家住成都萬里橋(가주성도만리교) 청두의 *만리교 옆 우리 집 알려줬네
*만리교 : 청두成都의 성 남쪽에 있는 다리

其五.
兩岸山花似雪開(양안산화사설개) 양쪽 기슭 산꽃은 눈이 열린 듯하고
家家春酒滿銀杯(가가춘주만은배) 집집마다 봄 술은 은잔에 가득하네
昭君坊中多女伴(소군방중다녀반) 왕소군 난 마을은 짝할 여인 많은데
永安宮外踏靑來(영안궁외답청래) 영안궁 밖으로 산보하러 나온다네

其六.
城西門前灩澦堆(성서문전염여퇴) 봉절성 성문 앞에 *염여퇴가 있는데
年年波浪不能摧(연년파랑불능최) 해마다 물결 맞고도 무너지지 않네
懊惱人心不如石(오뇌인심불여석) 번뇌 많은 사람 마음 돌 같지 않아서
少時東去復西來(소시동거부서래) 어려서는 동쪽서쪽 오락가락했다네

*염여(灩澦 : 장강(長江) 구당협(瞿塘峽) 입구의 위험한 여울)

其七.
瞿塘嘈嘈十二灘(구당조조십이탄) 구당협곡에 시끄러운 열두 여울 있어서
人言道路古來難(인언도로고래난) 사람들 예부터 어려운 길이라 하던 곳
長恨人心不如水(장한인심불여수) 한이 오랜 사람 맘은 물과 같지 않아서
等閑平地起波瀾(등한평지기파란) 공연히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네

其八.
巫峽蒼蒼烟雨時(무협창창연우시) 망망한 무협(長江 峽谷)에 안개비 내릴 때
淸猿啼在最高枝(청원제재최고지) 가장 높은 가지에서 원숭이 우네
個裏愁人腸自斷(개리수인장자단) 이 중에 시름겨워 애가 닳는 이
由來不是此聲悲(유래불시차성비) 그게 어디 원숭이 울음 때문이리

其九.

山上層層桃李花(산상층층도리화) 산에는 층층이 복사꽃과 오얏꽃 피고
雲間烟火是人家(운간연화시인가) 구름 사이로 연기 올라 사람 사는 곳
銀釧金釵來負水(은천금차래부수) 여인은 우물에서 물 길어지고 오고
長刀短笠去燒畬(장도단립거소사) 남정네는 산으로 가 불 질러 밭 일구네

죽지사병인(竹枝詞并引 : 죽지사 서문과 함께)
四方之歌, 異音而同樂, 歲正月, 余來建平, 里中兒聯歌竹枝, 吹短笛, 擊鼓以赴節.
(사방지가, 이음이동악, 세정월, 여래건평, 이중아연가죽지, 취단적, 격고이부절)
도처의 노래들이 소리는 달라도 모두가 같은 음악인데
이 해 정월에 내가 건평에 왔을 때
마을 아이들이 대나무 피리를 불고 북을 두드리듯 부절로 박자를 맞추며 「죽지」란 노래를 연창하고 있었다.

歌者揚袂睢舞, 以曲多爲賢. 聆其音, 中黃鐘之羽, 其卒章激訐如吳聲, 雖傖儜不可分, 而含思宛轉, 有淇濮之艶.
(가자양몌수무, 이곡다위현. 영기음, 중황종지우, 기졸장격알여오성, 수창녕불가분, 이함사완전, 유기복지염)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은 펄럭이는 소매를 바라보며 춤을 추는데
노래를 많이 부르는 사람이 노래를 잘하는 사람인 듯했다.
소리를 들어보니 아악 중의 우성처럼 격앙되는 데가 있었는데
노랫말이 낭랑한 것이 오나라 소리를 닮기는 했지만 오와 초의 소리를 분간할 수 없었고
구성진 소리를 내는 데서는 기복 지방의 연가와 같은 소리도 있었다.

昔屈原居湘沅間, 其民迎神, 詞多鄙陋, 乃爲作九歌, 到於今荊楚鼓舞之.
(석굴원거상원간, 기민영신, 사다비루, 내위작구가, 도어금형초고무지)
옛날에 굴원이 상수와 원수 사이에서 지낼 때
그곳 사람들이 영신굿을 하면서 부르는 천박한 소리를 듣고 구가(九歌)를 지었는데
형초의 사람들이 지금도 그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故余亦作竹枝詞九篇, 俾善歌者颺之, 附於末, 後之聆巴歈, 知變風之自焉.
(고여역작죽지사구편, 비선가자양지, 부어말, 후지령파유, 지변풍지자언)
그래서 내가 새로 죽지사 아홉 편을 지어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을 시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게 하고
9가(九歌)의 뒤에 덧붙여 나중에 파군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때 변풍(變風 : 세상이 어지러울 때 바르고 차분한 노래들이 사라지고 그와는 다른 노래들이 불리는 것을 말함)의 유래를 알 수 있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