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조석으로 제법 쌀쌀하지만 사방이 봄기운으로 가득 차 동내입구 양지바른 매화나무에는 하얀 봉오리가 맺혀 금방이라 도 터질 것 같아 자주 살펴보게 된다. 이번 주말 울산에 내려가면 만개한 홍매 향기를 맡으며 살펴보는 즐거움에 푹 빠질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해가 조금 씩 길어지는 것은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면서 자전축이 23.5도 틀어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으로 밤이 짧아지고 낮은 약 2분씩 길어지면 얼었던 대지는 태양빛을 받으며 땅속에 씨앗들은 기지개를 켜며 서서히 싹을 틔울 것이다.
이른 봄에 피는 대표적인 야생화인 복수초, 노루귀, 봄까치꽃을 접할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이번에 소개할 한시는 만당(晩唐)을 대표하는 대표적 시인인 이상은(李商隱)의 시 3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의 시풍은 성당의 맹교(孟郊 751~814), 가도(賈島 779~843) 등이 보여주었던 예술 기교의 추구와 초당 때의 섬약(纖弱)한 시풍이 융합된 형태였으나 나름 데로 청려(淸麗)하면서도 섬세한 풍격을 지녔으며, 아주 깊은 정서를 세련된 언어로 표현하였으며, 후대 시인들은 만당의 시를 은은한 향을 지닌 가을꽃으로 비유하기도 했는데, 성당 때처럼 진하고 강하지는 않았지만 독특한 시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남녀간 애정을 주제로 한 시 무제(無題) 2수와 춘우(春雨)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무제(無題)
八世偸照鏡 長眉已能畵(팔세투조경 장미이능화) 여덟 살 때 거울을 몰래 들여다보고 긴 눈썹도 잘 그렸어요
十世去踏靑 芙蓉作裙衩(십세거답청 부용작군차) 열 살 때 들로 산책을 나가면 부용으로 치마 옷섶을 만들지요
十二學彈箏 銀甲不曾卸(십이학탄쟁 은갑부증사) 열두 살 때 거문고를 배우면서 은갑을 손에서 놓지 않았지요
十四臟六親 懸知猶未嫁(십사장육친, 현지유미가) 열네 살 때 왠지 남자들이 부끄러워 아직 시집보내지 못하게 매달려요
十五泣春風 背面鞦韆下(십오읍춘풍, 배면추천하) 열다섯 살 때 봄바람에 눈물이 나니, 그네 아래에서 등을 돌려요
무제無題)
相見時難別亦難(상견시난별역난) 만나기도 힘들고 이별하기도 괴로운데
東風無力百花殘(동풍무력백화잔) 봄날도 힘을 잃고 온갖 꽃들 사라지네
春蠶到死絲方盡(춘잠도사사방진) 봄누에 죽을힘 다해 실을 다 토해내고
蠟炬成灰淚始乾(납거성회누시건) 밀랍촛불 다 타야 촛불 눈물이 마르지
曉鏡但愁雲鬢改(효경단수운빈개) 새벽 거울 속 헝클어진 머리가 슬픈데
夜吟應覺月光寒(야음응각월광한) 깊은 밤 달 보며 임도 응당 슬퍼하겠지
蓬萊此去無多路(봉래차거무다로) 임 계신 봉래산 갈림길 많지 않을 테니
青鳥殷勤為探看(청조은근위탐간) 파랑새야! 날 위해 살펴보고 오려무나
춘우(春雨 : 봄비)
悵臥新春白袷衣(창와신춘백겹의) 새 봄에 흰 *협의 입고 쓸쓸히 누웠는데
白門寥落意多違(백문요락의다위) *백문은 적막하고 일마다 어긋났었지
紅樓隔雨相望冷(홍루격우상망냉) 비 너머로 홍루를 바라보니 싸늘해
珠箔飄燈獨自歸(주박표등독자귀) 주렴에 흔들리는 등불 나 혼자 돌아온다
遠路應悲春晼晩(원로응비춘원만) 멀리 간 그대는 봄날 저물어가니 응당 슬퍼하리니
殘宵猶得夢依稀(잔소유득몽의희) 새벽녘엔 난 아직도 희미한 꿈을 꾸지
玉璫緘札何由達(옥당함찰하유달) 옥 귀고리와 편지를 어떻게 전할까?
萬里雲羅一雁飛(만리운라일안비) 만리의 구름 펼쳐진 곳 기러기 한 마리 날아가네
*협의(夾衣 : 당나라 사람들이 한가하게 거할 때 입던 편한 복장)
*백문(白門 : 본래는 지명으로 金陵(지금의 江蘇省 南京市)을 말함)
이상은(李商隱 812~858)은 중국 당(唐) 시대의 시인으로 자 의산(義山). 호 옥계생(玉谿生). 허난성(河南省) 친양(沁陽) 출생이다. 관료 정치가로 두목(杜牧)과 함께 만당(晩唐)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는 초기 우당(牛黨)의 영호초(令狐楚)에게서 변려문(騈儷文 : 문장이 4자와 6자를 기본으로 한 대구(對句)로 이루어져 수사적(修辭的)으로 미감(美感)을 주는 문체)을 배우고 그의 막료가 되었으나, 후에 반대당인 이당(李黨)의 왕무원(王茂元)의 서기가 되어 그의 딸을 아내로 맞았기 때문에 불우한 생애를 보냈다. 그의 유미주의적(唯美主義的) 경향은 이 소외감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그는 변려문의 명수이긴 하였으나 그의 시는 한(漢) ·위(魏) ·6조시(六朝詩)의 정수를 계승하였고, 당시에서는 두보(杜甫)를 배웠으며, 이하(李賀)의 상징적 기법을 사랑하였다. 또한 전고(典故 : 전례(典例)와 고사(故事)를 아울러 이르는 말)를 자주 인용, 풍려(豊麗)한 자구를 구사하여 당대 수사주의문학(修辭主義文學)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작품에는 사회적 현실을 반영시킨 서사시, 또는 위정자를 풍자하는 영사시(咏史詩 : 기이한 옛 일을 인용하여 현재를 풍유하거나 개인의 특정 사실을 회고하며 읊은 시) 등이 있으나, 애정을 주제로 한 무제(無題)에서 그의 창작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이의산시집(李義山詩集), 번남문집(樊南文集)이 있으며, 이의산잡찬(李義山雜纂)도 그의 저작으로 전한다.
주로 지방관리로 전전하면서 태학박사(太学博士), 동천절도서기(東川節度書記), 검교공부낭중(検校工部郎中), 염철추관(塩鉄推官) 지방관을 지내며 중앙에서도 실직(実職)은 얻지 못했고, 이나마도 가끔씩 사직하거나 면직되기도 했다.
그리고 858년, 염철추관을 다시 실직한 이상은은 향리로 돌아오던 도중에 병으로 형양(衡陽 : 중국 후난성(湖南省) 남부에 있는 도시)에서 숨을 거두었다. 향년 4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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