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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구봉 송익필 산중, 망월, 산행(龜峰 宋翼弼 山中, 望月, 山行)

겨울의 정점을 지나 이제 봄을 향해 가고 있다. 정보통신 감리업무 수행을 위해 세종에 머물고 있는데 아침 출근 길 진눈깨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올라간 탓인지 지금은 비로 변해 치적치적 내리고 있다. 이후 조석으로 영하의 날씨는 지속 되겠지만 어김없이 봄은 우리 문턱에 다가올 것이다. 일주일 후면 설날이라 부모님이 계신 울산에 다녀오는데 그때 마다 근처  매화가 피어 반겨 주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피어있는 모습을 기대해 보며 겨울비 내리는 날 구봉선생의 시 세수를 올려 본다.

 

山中(산중 : 산속에서)

獨對千峯盡日眠(독대천봉진일면) 천봉우리 홀로 바라보니 졸음에 해 저무는데

夕嵐和雨下簾前(석람화우하렴전) 저녁 산기운 어렴풋이 비와 어우러져 주렴 앞에 내린다.

耳邊無語何曾洗(이변무어하증세) 세상 잡설 들리지 않으니 어찌 귀 씻으랴

靑鹿來遊飮碧泉(청록래유음벽천) 푸른 사슴 놀러 와서 맑은 샘물을 마신다네.

 

구봉 송익필(龜峰 宋翼弼, 1534 ~ 1599)은 운곡(雲谷) 송한필(宋翰弼)의 형이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자는 운장(雲長)이고, 호는 구(귀)봉(龜峰) ·현승(玄繩)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서출(庶出)로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못했으나, 조선중기 서인세력의 막후 조정자로 군림했으며 기축옥사(己丑獄事)를 일으킨 인물로 지목되었다. 송익필은 어려서 문장에도 출중(出衆)하였고 재능이 뛰어나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서출(庶出)이라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부친 송사련(宋祀連)의 후광으로 당대 최고의 문장가들과 어울렸으며 이산해(李山海). 최경창(崔慶昌). 백광홍(白光弘). 최립(崔立). 이순인(李純仁). 윤탁연(尹卓然). 하응림(河應臨) 등과 함께 당대의 ‘8대 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정치적으로는 서인에 속했으며, 심의겸(沈義謙). 이이(李珥). 성혼(成渾). 정철(鄭澈) 등과 교우하였고 파주의 5인방으로 불리며 정치적 의리를 함께하는 동지가 되었다. 이들의 이런 면면을 두고 이준경(李浚慶)은 장차 붕당이 만들어질 것을 우려하여 선조에게 상소문을 올렸으나 오히려 신진세력 이이(李珥) 등에게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송익필은 예학(禮學)에 밝았으며, 당대 사림의 대가로 손꼽혔다. 또한 정치적인 감각이 탁월하여 서인세력의 막후 실력자로 군림하였다. 그는 자신의 학문과 재능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으며, 벼슬길에 나서지 않은 사림의 처사로 고매하게 행세하였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에게 비난을 사기도 하였다. 그의 이런 명망으로 김계휘(金繼輝)의 아들 김장생(金長生)을 첫 제자로 받아들였고 김장생 또한 예학의 대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경기도 파주 감악산(紺岳山) 자락에 은거하면서 그를 추종하는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다. 그가 양성한 제자로는 정엽(鄭曄). 서성. 정홍명(鄭弘溟). 감반(金槃) 등이 있으며, 조정의 두터운 서인세력으로 포진하였다. 이후 그의 학맥은 김장생의 아들 김집(金集)을 거쳐 숙종(肅宗)대 노론의 영수 송시열(宋時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송익필은 글씨에도 능했다. 오세창(吳世昌)은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서 동국문헌필원편(東國文獻筆苑편)을 인용하여, "글씨를 잘 썼다(善書)."라고 하였고, 택당집(澤堂集)을 인용하여, "묘갈에 이르기를, 선생은 도망 중에도 새벽에 일어나서 밤 늦게야 잠자리에 들었다. 의관을 바로 하고, 꿇어 앉아서 글씨도 쓰고 책도 보며 종일토록 게을리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말하기를, 마음 쓸 곳이 없어서 이것으로 마음을 거둬 들이려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오세창은 그가 우계 성혼에게 써서 보낸 시 기성우계시(寄成牛溪詩)의 글씨에 대해 "초서가 시원하고 준일하다(草書瀟灑雋逸)."라고 하였다. 저서로는 구봉집(龜峰集)이 있다.

 

望月(망월 : 달을 바라보며)

未圓常恨就圓遲(미원상한취원지 ) 달 둥글지 않았을 때에 둥글어짐이 더디다고 한탄하더니

圓後如何易就虧(원후여하이취휴 ) 둥근 후에는 어찌도 쉽게 이지러져 가는가

三十夜中圓一夜(삼십야중원일야 ) 서른 밤 중에 둥근 것은 하룻밤이니

百年心事總如斯(백년심사총여사 ) 백년의 인간 심사도 모두 이와 같구나

 

山行(산행)

山行忘坐坐忘行(산행망좌좌망행) 산행 길  앉아 쉬는 걸 잊고 쉬다가는 가는 일을 잊으면서

歇馬松陰聽水聲(헐마송음청수성) 소나무 그늘에서 말을 쉬게 하고 개울물 소리를 듣네

我後幾人先我去(아후기인선아거) 내 뒤에 올 분이 몇이며 앞서 간 사람은 또 얼마이던가

各歸其止又何爭(각귀기지우하쟁) 제 각기 가거나 머물러 쉬거나 하는데 길 다투어 무엇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