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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퇴계 시 도산월야영매 6수(退溪 詩 陶山月夜詠梅 6 首)

3월 중순을 넘어선 요즘 도심 주변에 매화가 활짝 폈다. 오늘은 꽃샘추위답게 아침 기온이 영하로 내려 매화가 견디기엔 힘든 날씨임에 틀림없다. 매경한고발청향(梅經寒苦發淸香 : 매화는 모진 추위를 견디며 맑은 향기를 품는다)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매화는 세속의 티끌 한 점 없는 맑고 깨끗한 마음과 더러운 풍속에 굴하지 않는 절개와 봄날 같은 희망을 상징하는 꽃으로 많은 문인들이 달과 함께 맑고 깨끗한 시로 표현하기에 적절한 소재로 인식되어 왔으며, 혹독한 겨울을 이기고 제일 먼저 꽃망울을 틔워 봄이 왔음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로서 사랑하기도 하였다.

 

매화 하면 떠오른 분이 퇴계 선생이시다. 퇴계선생께서는 매화를 유달리 아끼고 소중하게 여긴 연유는 그가 단양군수로 부임하면서 관기(官妓)인 두향(杜香)과 만나게 되는데 젊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시, 서, 거문고 솜씨가 특출하였으며,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이들의 만남으로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들의 관계도 9개월 만에 퇴계선생께서 풍기군수로 떠남에 따라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떠날 때 두향이로부터 받은 수석 2점과 화분에 담긴 매화를 평생 옆에 두고 애지중지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안동 도산서원에는 두 사람과의 깊은 우정과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매화가 뜰앞에서 맑은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퇴계선생께서 매화시(梅花詩) 91수를 모아 매화시첩(梅花詩帖)이라는 시집을 유묵으로 남기셨으며, 모두 75제 107수(시첩 62제 91수)로 단일 소재로는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퇴계는 특히 절우(節友), 곧, 매화(梅), 난(蘭), 소나무(松), 대나무(竹), 국화(菊) 중에도 유독 매화를 가장 사랑하였다. 매화로써 적막함을 달랬고, 매화를 찾는 것을 신선과 봄과 같이 여겼으며, 돈독하게 좋아하는 정은 가까운 벗과 같이 친하였고, 사모하는 마음이 일일이 여삼추 같았으며, 어느 때고 관심이 식은 적이 없고, 조급할 때나 위태로울 때에도 매화를 잊지 않았으며, 매화를 읊음며 심사를 의탁하였다. 또한 선생께서 임종 직전에 본인의 불결한 모습을 매화분재에게 보이기 싫어 다른 방으로 옮기라 하시고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매형(梅兄 : 매화를 의인화하여 높게 칭하여 부르는 말)에게 불결하면 내 마음이 미안해서 그렇다 / 어매형불결 심자미안이(於梅兄不潔 心自未安耳)”였다고 한다.

본인의 추한 모습으로 인하여 매화도 추해질 것을 걱정하였고, 운명 직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매화분에 물을 주라고 하였으니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까지 매화를 잊지 못한 것이다.

 

퇴계선생께서 도산서원 달밤에 매화를 읊은 시(陶山月夜詠梅) 6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퇴계 이황 선생에 대한 소개는 앞서 언급하였기에 생략토록 하겠다.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 : 도산에서 달밤에 매화를 읊다)

 

其一.

獨倚山窓夜色寒(독의산창야색한) 홀로 창가에 기대니 밤빛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매초월상정단단) 매화나무 가지 끝에 둥근 달이 떠오르고

不須更喚微風至(불수갱환미풍지) 미풍인들 구태여 다시 불러 무엇 하리

自有淸香滿院間(자유청향만원간) 맑은 향기 저절로 집안에 가득하거늘

 

其二.

山夜寥寥萬境空(산야요요만경공) 산속 밤은 적막하여 온 세상이 텅 빈 듯

白梅凉月伴仙翁(백매량월반선옹) 흰 매화 차가운 달이 신선과 짝 이뤘네

箇中唯有前灘響(개중유유전탄향) 오직 들리는 건 앞 여울 물 흐르는 소리

揚似爲商抑似宮(양사위상억사궁) 높을 때는 商음이고 낮을 때는 宮음일세.

(궁상각치우 : 宮商角徵羽 / 동양 음악에서 쓰이는 다섯 음률에 해당하는 개별 이름)

 

其三.

步躡中庭月趁人(보섭중정월진인) 뜰을 거니니 달이 사람 따라오고

梅邊行趫幾回巡(매변행교기회순)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배회했네

夜深坐久渾忘起(야심좌구혼망기)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남을 잊었더니

香滿衣巾影滿身(향만의건영만신) 매화향 옷에 가득 달그림자는 몸에 가득

 

其四.

晩發梅兄更識眞(만발매형갱식진) 늦게 핀 매화의 참뜻을 새삼 알겠네.

故應知我怯寒辰(고응지아겁한진) 내가 추위를 겁내는 줄 알아서이지

可憐此夜宜蘇病(가련차야의소병) 가련하다, 이 밤 병이 낫는다면

能作終宵對月人(능작종소애월인) 밤새도록 능히 달을 대하련만

 

其五.

往歲行歸喜裛香(왕세행귀희읍향) 몇 해 전엔 돌아와 즐거이 향기에 푹 빠졌고

去年病起又尋芳(거년병기우심방) 지난해엔 병에서 일어나 또 꽃을 찾았지.

如今忽把西湖勝(여금홀파서호승) 지금 와서 문득 서호의 절경을 가지고

博取東華軟土忙(박취동화연토망) 우리네 부드러운 땅의 바쁜 일과 바꿀 손가.

 

其六.

老艮歸來感晦翁(노간귀래감회옹) *노간(老艮)이 쓴 매화시에 주자가 감동하여

託梅三復歎羞同(탁모삼부탄수동) 수동(羞同)이란 글귀로 세 번이나 감탄했는데

一杯勸汝今何得(일배권여금하득) 너에게 한 잔 술을 주고 싶지만 할 수 없어

千載相思淚點胸(천재상사루점흉) 천 년 그리움에 눈물만 가슴을 적시네

 

*노간(老艮)은 간재(艮齋) 위원리(魏元履)라는 사람인데, 주자가 여려 사람과 함께 소동파의 동파라는 글자를 운으로 해서 한시를 짓는 얘기를 하다가 간재 위원리가 보낸 서신에 실린 시를 보고 감탄하면서 한 말이 있다고 한다."羞同桃李媚春色"(복숭아 오얏과 함께 봄빛을 자랑함을 부끄러워하다)라고 했다는데, 이는 어찌 복숭아 오얏이 감히 매화와 겨룰 수 없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