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院)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일반 여객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는 일종의 여관으로 일반여행자나 상인을 위한 주막촌(酒幕村)으로 발달한 가촌(街村)이다. 과거 군(郡)의 소재지에는 원이 있었으나 현재 그 이름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조치원(鳥致院)이다. 조치원은 조선시대 청주목(淸州牧) 관할로 4일장이 열렸으며, 시장과 교통의 요지였다.
한편, 조치원의 유래에 대하여 최치원(崔致遠)이 이곳에 와서 상업을 장려하고 저자를 개설하였다 하여 그의 이름과 비슷한 이름으로 불렸다는 설이 있다.
내가 3년 가까이 머무는 곳이 세종시 연서면인데 조치원과는 지척이다. 과거부터 복숭아 생산지로 유명한 곳으로 퇴근길에 나즈막한 언덕 복숭아농원에는 복사꽃 만발하여 차를 멈추고 자연스레 발길이 향하게 된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연신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과거 소개한바 있는 許渾(허혼)의 증왕산인(贈王山人) 시구 중 옥동도화만수춘(玉洞桃花萬樹春 :옥동의 복사꽃 온 천지가 봄이라네)의 풍경이 펼쳐진 곳이 조치원 주변의 봄 풍경이다.
당 시인 최호(崔護)의 제도성남장(題都城南庄)시를 스토리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제도성남장(題都城南庄 : 도성 남쪽 장원(庄園)에서 짓다)
去年今日此門中(거년금일차문중) 지난해 오늘 이 문 안에
人面桃花相映紅(인면도화상영홍) 아름다운 그녀 얼굴 도화꽃과 서로 잘 어울렸었지.
人面不知何處去(인면부지하처거) 그녀는 어디로 갔는지 알 길 없는데
桃花依舊笑春風(도화의구소춘풍) 도화만 여전히 봄바람에 웃음 짓고 있네.
최호(崔護. 생졸연대미상)는 당나라 박릉(博陵, 지금의 河北 定縣) 사람으로 자는 은공(殷功)이다. 정원(貞元) 12년(796) 진사가 되었다. 영남절도사(嶺南節度使)를 지냈다.
전하는 말로 청명(淸明) 때 혼자 도성 남쪽을 거닐다가 어느 마을에서 마실 물을 구했는데, 한 여자가 문을 열고 나와 그릇에 물을 담아 주면서 마실 때까지 작은 복숭아나무에 기대어 기다리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정겨웠다. 다음 해 청명 때 다시 찾았더니 문 앞은 예전과 같았지만 문은 닫혀 있었다. 이에 시 한 수를 지어 문에 적어 두었다. “지난해 오늘 이 문 앞에서는, 여인과 복숭아꽃이 서로 붉었었지. 여인은 어디 갔는지 알 수 없는데, 복숭아꽃만 여전히 봄바람에 웃는구나” 전당시(全唐詩)에 시 6수가 실려 있다.
(복사꽃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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