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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창랑옹 소순흠 하의(滄浪翁 蘇舜欽 夏意)

실로 오랜만에 붓을 잡아보았다. 거의 7개월 동안 일상사가 바쁘다는 핑계로 붓을 잡지 못했는데 헛되이 보낸 지난 시간을 自責해보며 서투른 붓질로 창랑옹의 한시를 자서해 보았다.

오늘부터 코로나 4단계가 시행되었다. 이전 메르스 바이러스는 10여개월만에 종식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되었지만 코로나의 변이는 전염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더욱 강하게 인간을 괴롭히고 있어 앞으로도 치열한 공방이 이어질 동안 일상의 복귀는 점차 어려워질 전망이다. 짧은 장마로 이른 더위가 찾아왔다. 3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에 하루하루의 삶이 힘들지만 마음으로 나마 이 시를 접하면서 잠깐의 시름을 달래 보고자 한다.

 

창랑옹 소순흠(滄浪翁 蘇舜欽. 1008 ~ 1048)북송(北宋) 때 시인이며, 면주(綿州) 염천(鹽泉) 사람이다. 자는 자미(子美), 호는 창랑옹(滄浪翁)이다. 젊어서부터 큰 뜻을 품어 천성(天聖) 중에 학자들이 글을 쓰면서 대우(對偶)에 얽매이는 병폐를 보였는데, 홀로 목수(穆修)와 함께 고문시가(古文詩歌)를 즐겨 지으면서 당시 호걸들과 많이 교유했다. 범중엄(范仲淹)의 천거로 집현교리(集賢校理)가 되었어나 악부(岳父) 두연(杜衍)과 범중엄이 신정(新政)을 주도하자 자주 모함을 받았는데, 옛 지전(紙錢)을 팔아 기악(妓樂)을 불러 빈객(賓客)과 연회를 열다가 제명되었다. 이후 소주(蘇州)에 은거하면서 창랑정(滄浪亭)을 짓고 시와 술로 시름을 달랬다. 서곤체(西昆體)의 화려한 문풍(文風)에 반대하고 고문운동(古文運動)을 제창했다. 풍격은 호방하고 박실(朴實)했다. 나중에 호주장사(湖州長史)로 있다가 죽었다. 저서에 소학사집(蘇學士集)이 있고, 매요신(梅堯臣)과 함께 ‘소매(蘇梅)’로 불렸다고 한다.

 

이 시를 언제 지었는지 알 길이 없으나 이 창랑정(滄浪亭)에서 생활할 때 지은 시로 보인다. 중국의 정원에는 회랑을 많이 만들고 석가산을 조성하여 그 사이로 길을 꼬불꼬불 내며 사이사이로 물을 흐르게 하고 여러 종류의 화목(花木)을 심는데, 나무 그늘이 드리운 당의 탑상(榻床) 위에 대자리를 깔고 앉아 있으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시 제목에 ‘의(意)’를 쓴 것은 여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나 기분을 표현한 말이다.

시원한 후원에서 대자리 위에서 독서를 하다가 깜박 한 숨 자고 개운한 머리로 일어나니 꾀꼬리 울음이 이따금 들려오는 여름철 특유의 한가하고 낭만적인 정취를 표현하였다. 진나라 처사 도연명이 북창 아래에 누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고 있으면 자신이 복희 시대 사람인가 생각이 들 정도라고 시에서 말한 일이 있다. 이 시 역시 여름철 낫 잠의 개운하면서도 한가한 맛을 주변 경물과 함께 정취 있게 그려내었다.

우리나라의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1532~1587)은 한거록(閑居錄)에서 이 시를 인용하고는 만물이 무성한 여름철에 나무 그늘에서 낫잠을 자면서 감상할 만한 시로 이 시를 꼽았고, 시인 상촌 신흠(申欽, 1566~1628)은 청창연담(晴窓軟談)에 이 시를 소개하며 위응물(韋應物 : 당나라 관리,시인)의 혼백이 돌아온 것 같다고 하면서 이런 재주를 지닌 시인이 41세에 죽은 것을 탄식하였다.

 

夏意(하의 : 여름날에)

別院深深夏簟淸(별원심심하점청) 깊은 후원에 여름 돗자리도 시원하고

​石榴開遍透簾明​(석류개편투렴명​) 석류꽃 활짝 피어 주렴 밖이 훤하네

松陰滿地日當午(송음만지일당오) 소나무 그늘은 한 낮 마당을 드리우고

夢覺有鶯時一聲​(몽각유앵시일성)​ 잠에서 깨니 이따금 들려오는 꾀꼬리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