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하다는 말은 참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러나 세상살이는 총명 그 자체가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 주진 못한다.
명나라 장호(張灝)가 고금의 경구(警句)를 새긴 학산당인보(學山堂印譜) 월불총명월쾌활(越不聰明越快活)란 구절이 나온다. 즉 총명하지 않을수록 더 쾌활해진다. 똑똑한 사람들은 걱정이 많다.
얻고 잃음에 무심해야 쾌활이 찾아 든다. 똑똑한 사람이 그 똑똑함을 버리고서 쾌활을 얻기란 실로 어렵다. 때로는 나대는 마음을 꾹 눌러 툭 내려놓을 때 비로소 마음의 평온이 찾아온다.
이러한 삶의 섭리를 가장 잘 표현한 내용이 청나라 때 서화가 *정섭(鄭燮·1693~1766)의 유명한 글씨 난득호도(難得糊塗)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난득호도(難得糊塗) *정판교(鄭板橋)
聰明難 糊塗難(총명난 호도난)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렵다.
由聰明轉入糊塗更難(유총명전입호도갱난)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보이기는 더더욱 어렵다.
放一着 退一步 當下心安(방일착 퇴일보 당하심안) 모든 집착을 버리고 한 걸음 물러나 마음을 놓아버리면 일체가 편안해진다.
非圖後來福報也(비도후래복보야) 그렇다고 나중에 복을 받고자 도모함이 아니라네...
난득호도(難得糊塗)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호도(糊塗)는 풀칠이니, 한 꺼풀 뒤집어써서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난득(難得)은 얻기 어렵다는 뜻이다. 난득호도는 바보처럼 굴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다들 저 잘난 맛에 사니, 지거나 물러서기 싫다. 손해 보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 더 갖고 다 가지려 다가 한꺼번에 모두 잃는다. 결국은 난득호도의 어리석음이 총명함을 이긴다.
학산당인보'에는 '통달한 사람은 묘하기가 물과 같다(達人妙如水)란 구절도 있다. 물의 선변(善變)을 배워 지녀야 달인이다. 능소능대(能小能大), 어디서든 아무 걸림이 없다. 선비는 죽은 뒤의 녹을 탐한다(士貪以死祿)고도 했다. 살아 내 배 불리는 그런 녹보다 죽은 뒤에도 죽지 않고 따라오는 녹, 후세가 주는 녹, 떳떳하고 의로운 삶 앞에 주어지는 녹을 욕심 낼뿐이다.
입이 재빠른 자는 허탄함이 많고 믿음성은 부족하다(口銳者多誕而寡信)란 말이 있다. 지혜를 감추고, 예기(銳氣)를 죽여라. 입으로 일어나 입으로 망한다. 똑똑함이 판치는 세상에 한번쯤 되새겨야 할 명구임에 틀림없다.
*정섭(鄭燮, 1693-1765년)은 중국 청나라 중기의 문인·화가이다. 자는 극유(克柔), 호는 판교(板橋)이다. 흔히 정판교(鄭板橋)라 불린다.
장쑤성 흥화(興化) 사람. 건륭시대(乾隆時代)의 진사로서 현지사가 되었으나, 사직 후 양주(揚州)에서 서화를 팔아 생활했다. 서(書)는 예(隸)·해(楷)·행(行) 3체를 다했고, 그림은 난죽(蘭竹)을 그려 유명하다. 시는 전통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개성을 발휘했다. 그의 작품으로 판교집(板橋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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