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32도를 오르내리는 혹서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기가 맑다는 청송 주왕산을 다녀왔다. 천년고찰인 대전사, 주왕암, 주봉을 산행하면서 바라본 풍광, 호우로 수량이 풍부하여 이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폭포를 영상으로 담아보았다. 더위와 코로나로 힘든 하루를 보내는 이들로 하여금 조금의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주왕산은 청송을 대표하는 명산이다. 우뚝 솟은 바위의 위용과 협곡, 폭포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이 절로 나온다. 등산은 협곡을 중심으로 원주(圓走)를 계획한다면 대전사를 지나 오른쪽 주봉(721m) –> 후리메기삼거리 –> 용연폭포까지 약 6Km, 용연폭포에서 ->금은광이삼거리 –> 장군봉(687m) –> 백련암 –> 대전사 까지 약 6Km, 총 12Km 코스인데 약 5~6시간 소요되며, 가파르게 오르고 내리는 산행길은 한적함과 함께 협곡에서 병풍처럼 펼쳐지는 기암의 풍광은 바라보기만 해도 힘이 솟는다. 또한 대전사에서 용연폭포까지 협곡으로 향하는 길은 누구라도 쉽게 산책하듯 갈수 있는 구간으로 대전사 ->기암교 -> 자하교 -> 급수대 -> 학소대 -> 용추폭포 -> 절구폭포 -> 용연폭포까지 약 2.5Km 구간으로 천천히 풍광을 줄기면서도 왕복 2~3시간이면 충분하다.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에 있는 주왕산은 해발 721m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백악기(白堊紀)의 주왕산(周王山) 일대는 거대한 호수였다고 한다. 이후 호수 바닥에 퇴적물이 쌓이면서 육화(陸化)되었는데 약 7천만년전 이 퇴적암층(堆積岩層)을 뚫고 엄청난 규모의 화산 분화가 있으면서 뜨거운 화산재가 대량으로 쌓이고 이 화산재 주변에 용암이 응집하면서 거대한 암벽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화산폭발은 최소 9차례 이상 있었다고 하며 이후 침식과 풍화를 거쳐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주왕산에 폭포가 많은 이유는 주왕산의 하천 기반을 이루는 암석이 풍화와 침식에 대한 저항이 매우 강한 안산암(安山巖)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대로 침식이 되지 않아 주행이 복잡해지고 협곡은 깊어지면서 결국 폭포를 많이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질학적 특성은 주왕산의 바위, 폭포, 계곡, 산세를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로 바꾸어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8곳의 국가지질공원 중 하나로 등록된 것은 물론, 2017년 초 이 산을 비롯한 청송군 일대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되었다. 2010년 제주도가 등록된 이후로 2번째이다.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상평리에 위치한 주왕산(周王山) 대전사(大典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末寺)이다. 672년(신라 문무왕 12) 의상(義湘)이 세웠다는 설과 919년(고려 태조 2) 눌옹(訥翁)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절이 있는 산과 절의 이름은 주왕의 설화에서 유래한다.
주왕내기(周王內記)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의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었다. 이에 당나라가 신라에 주왕을 없애달라고 부탁하자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죽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절 이름은 나옹화상 혜근(惠勤)이 붙였다고 한다. 또한 신라의 주원왕(周元王)이 수도했던 산이라서 주왕산이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주왕산 대표사찰 대전사는 창건 이후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周房寺)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승군을 훈련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에 불에 탄 것을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부속 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과 주왕암(周王庵)이 있다.
이 중 백련암은 주왕의 딸 이름에서 유래하며, 옛날에는 이 암자에 큰 종이 걸려 있어 아침 저녁으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하나 지금은 걸려 있지 않다. 주왕암(周王庵)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나오는 주방사로 추정되며, 나한전과 가학루(駕鶴樓)·산령각 등이 남아 있다.
주요 건물로는 보광전(普光殿)과 명부전·산령각·요사채 등이, 유물로는 보광전 앞 삼층석탑과 사적비·부도 등이 남아 있다. 이 중 보광전은 정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李如松)이 유정에게 보냈다는 친필 서신을 목판으로 음각한 것이 보관되어 있다. 보광전 앞의 석탑은 근처에 흩어져 있던 석탑재를 짜맞춘 것이다.
절 오른쪽 밭에는 우물을 메운 자리가 남아 있는데, 이 우물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본래 이 절에서는 부처에게 올리는 물을 매일 냇가까지 가서 길어오곤 하였다. 이를 귀찮게 여긴 승려들이 조선 중기에 앞뜰에 우물을 파고 그 물을 길어서 청수(淸水)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곧 불이 나서 전각이 불에 타고 말았다.
뒷날 한 도사가 와서 불이 난 이유를 설명하기를, 이 절의 지세는 배가 바다에 떠서 다니는 부선형(浮船形)인데 우물을 판 것은 마치 배 바닥에 구멍을 낸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다시 우물을 메웠다 한다. 이밖에 노루가 우물에 빠져 죽은 뒤 메웠다는 설도 있고, 이 물을 마신 승려들의 힘이 넘쳐 난폭해지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의 원성이 많아지자 메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많은 전설과 함께 주왕산이 품고있는 기암과 계곡, 폭포를 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용추폭포
절구폭포
용연폭포
하산길 대전사 탐진당(探眞堂) 주련시구(柱聯詩句)가 마음에 와 닿아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대전사 탐진당 주련(大典寺 探眞堂 柱聯)
當代道人過機遊(당대도인과기유) 당대의 도인 몇이나 노닐고 갔는가
回頭欲問古今事(회두욕문고금사) 머리를 돌려 고금의 일을 물어보네
會僧月夜却塵愁(회승월야각진수) 달밤에 모인 스님 에는 번뇌를 물리치고
念佛晨朝聽寂滅(념불신조청적멸) 이른 새벽 염불하며 적멸에 드네
曲流澗水合江洲(곡류간수합강주) 굽이치는 계곡 물은 큰 강으로 모이고
屹立前山悤露積(흘립전산총로적) 우뚝 솟은 앞산으로 첩첩이 산이네
周王一路正奇幽(주왕일로정기유) 주왕산 외길이 기이하고 깊더니
中有大寺探眞堂(중유대사탐진당) 그 속 큰 절에 탐진당이 있구나
'삶의 향기 > 차한잔의 여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번 숙건자산선사(任翻 宿巾子山禪寺) (0) | 2021.09.07 |
---|---|
정섭 난득호도(鄭燮 難得糊塗) (0) | 2021.09.07 |
창랑옹 소순흠 하의(滄浪翁 蘇舜欽 夏意) (0) | 2021.07.12 |
청화대종사 게송 몇 수(淸華大宗師 偈頌 몇 首) (0) | 2020.12.17 |
취미수초 대사 선시 2수(翠微守初 大師 禪詩 訪山寺, 山居) (0) | 2020.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