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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진각국사 시 정단(眞覺國師 詩 正旦)

진각국사 혜심(眞覺國師 慧諶, 1178∼1234)은 고려 후기의 승려로 자 영을(永乙), 호 무의자(無衣子) 법명은 혜심(慧諶)이다. 전남 나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는 완(琬)이며, 어머니는 배씨(裵氏)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출가하기를 원하였지만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았다. 1201년(신종 4)사마시에 합격하여 태학(太學)에 들어갔으나, 다음 해 어머니가 죽자, 당시 조계산(曹溪山)에서 수선사를 만들어 교화 활동을 하고 있던 지눌(知訥)에게 가서 어머니의 재(齋)를 올린 다음, 지눌의 제자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힘써 정진하였으며, 지눌은 혜심의 재능을 아꼈다.

1210년 지눌이 입적(入寂)하자 혜심이 수선사로 돌아가 개당(開堂)하였다. 1212년 강종(康宗)이 수선사를 증축시키고 불법을 구하므로 그가 심요(心要)를 지어 올렸고, 당시 문하시중 최우(崔瑀)는 그에게 두 아들을 출가시켰다. 고종(高宗)은 왕위에 올라 혜심에게 선사(禪師)에 이어, 대선사를 제수하였으며, 1220년(고종 7)단속사(斷俗寺) 주지로 명하였다.

1234년 6월 26일에 문인들을 불러 여러 가지 일을 부탁한 뒤 입적하였다. 나이 56세, 법랍 32세였다.

고종은 진각국사(眞覺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부도(浮屠)의 이름을 원소지탑(圓炤之塔)이라 사액(賜額)하였다. 부도는 광원암(廣遠庵) 북쪽에, 이규보(李奎報)가 찬한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는 전라남도 강진군월남산 월남사(月南寺)에 각각 세워졌다. 현재 비문은 잔비(殘碑)만이 전해 오고 있으며, 『동국이상국집』, 『동문선』, 『조선금석총람』 등에 그 글이 수록되어 있다.

저서로는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30권, 심요(心要)1편,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1권, 구자무불성화간병론(狗子無佛性話揀病論)1편, 무의자시집(無衣子詩集)2권, 금강경찬(金剛經贊1권, 선문강요(禪門綱要)1권이 있다.

 

진각국사의 시 정단은 설날을 맞이하여 설법삼아 내린 시로 지난날의 괴로움과 재앙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희망의 해가 솟아 사바세계를 두로 비추어 고통 없는 한해를 기원하는 국사로서의 바램이 담겨있어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正旦(정단 : 설날)

新年佛法爲君宣(신년불법위군선) 새해의 불법을 그대에게 내리노라

大地風流氣浩然(대지풍류기호연) 대지와 풍류 그 기상이 높고 크다

宿障舊殃湯沃雪(숙장구앙탕옥설) 묵은 장애와 오랜 재앙 눈처럼 녹이고

神光遍照日昇天(신광편조일승천) 신령한 빛 두루 비치며 해야 솟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