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재사당 이원 절구(再思堂 李黿 絶句)

재사당 이원(再思堂 李黿. 미상 ~ 1504년)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는 낭옹(浪翁), 호는 재사당(再思堂).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현령(縣令) 공린(公麟)의 셋째 아들. 박팽년(朴彭年)의 외손자이다.

1480년 진사에 합격, 1489년(성종 20) 문과에 급제, 괴원(槐院)을 거쳐 예랑(禮郎)으로 있을 때 연산군의 광포가 날로 심하여 김종직(金宗直)을 비롯, 많은 사류(士類)들이 피살되거나 귀양 갔었다.

후에 태상(太常)에 있으면서 종직(宗直)에게 문충(文忠)의 시호를 주려고 주장하다 곽산(郭山)에 귀양가 4년 동안 있었고 다시 나주(羅州)에 이송되었다. 1504년 갑자사화에 죄가 더해져 사형에 처하게 되었을 때 그의 종이 함께 도망가기를 간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형을 받음에 있어 얼굴빛이 변치 않고 말이 더욱 똑똑하였다.

연산군은 더욱 노하여 가등(加等)의 율(律)을 써서 그의 아버지와 여러 아들도 함께 먼 곳으로 귀양 보냈다. 중종 초에 설원(雪冤 : 원통한 사정을 풀어 없앰)되어 도승지(都承旨)가 추증되었다. 평생에 성현의 글을 널리 독서했으며 문장이 우아하고 시도 또한 고상하였으며 공사간에 누구를 원망하거나 상심하는 일이 없었다. 유고로 유금강록(遊金剛錄) 1권이 있다.

 

소개하고자 하는 재사당 이원의 시는 봄이 끝나갈 무렵의 나주 영산포구의 정취와 함께 연산군의 폭정에 대한 자신의 처지를 칠언절구(七言絶句)로 담아낸 듯 하다.

 

絶句(절구)

 

十里長堤草似茵(십리장제초사인) 십리 긴 제방에 풀은 자리를 깔아 놓은 듯

雨昏南浦長靑蘋(우혼남포장청빈) 비 내려 어둑한 남포에 푸른 마름이 무성하다

落花啼鳥渾無賴(낙화제조혼무뢰) 지는 꽃, 우는 새는 모두가 무료하여

閑閉柴門過一春(한폐시문과일춘) 한가히 사립문 닫은 채로 한 봄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