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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임번 숙건자산선사(任翻 宿巾子山禪寺)

숙건자산선사(宿巾子山禅寺 : 건자산 선사에 묵으며)

絶頂新秋生夜涼(절정신추생야량) 가을빛 절정인 밤 서늘함이 돋아
鶴翻松露滴衣裳(학번송로적의상) 학이 날자 솔잎 이슬 옷에 떨어지네
前峰月映半江水(전봉월영반강수) 앞 봉우리 달빛은 옅은 강을 채우고
僧在翠微開竹房(승재취미개죽방) 산 중턱 노승은 죽방의 문을 여네

당 시인 임번(任翻 : 814~846)의 명시“건자산 선사에 머물다”(숙건자산선사 : 宿巾子山禅寺)이다.
소위 완당(完唐)의 시인으로 강남(江南)의 가난한 집에 태어나 열심히 공부했지만, 낙방해 금(琴)을 들고 시를 지으며 천하를 유랑했다. 비록 32년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이 시는 후대 발견돼 어찌나 사랑을 받았는지, "임번이 지은 뒤 사람이 없어도 200년 빈 산을 홀로 떠돌았다"는 칭찬을 들었다.

또 이 시와 관련한 많은 고사들이 만들어져 전하고 있다. 사실 이 시를 소개하게 된 이유도 이 고사 때문이다.
절정의 가을 산이 어느새 어두워졌다. 석양의 마지막 빛이 머물 곳을 잃은 것이다. 가을이 절정 달하니, 밤기온은 더욱 차가워진다. 나그네 서러운 게 바로 이 순간이다. 달 빛에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 둘 투영된다.
그리움이 저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친다. 의식은 그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간다.
이 순간, '푸드덕' 갑자기 새의 날갯짓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이슬이 떨어진다. 놀라 쳐다보니, 두루미다. 두루미 한 마리가 밤 하늘 저 멀리 달 빛 속으로 날아간다. 이슬은 소나무 가지에 맺혔던 것이다. 두루미 날며 가지를 흔들어 떨어진 것이다.
나그네의 시선은 다시 저 앞 산봉우리로 간다. 그 아래 강물은 어느새 반으로 줄었다. 썰물에 강물도 줄어든 것이다. 강 위는 달빛으로 가득하다. 마치 줄어든 강물만큼 달빛이 채운 듯하다.

이때 대나무를 엮어 만든 소박한 선사의 노승이 선사 문을 연다. 숙소를 잡아야 하는데, 너무 반갑고 고마운 소리다.
가을 산에 맞은 밤을 이렇게 시로 남길 이가 몇이나 될까? 사실 이 시는 훗날 발견됐지만, 임번이라는 무명 인물이 썼다고 도저히 믿지 않았는지, 한동안 성당(盛唐)의 변색파시인 고적(高适 : 707~765)의 작품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고적이 저장 관찰사였을 때 이 건자산을 지나다 이 시를 남겼다. 본래 이 시의 반강수(半江水)는 일강수(一江水)였다. 즉 그 시구는 전봉월영일강수(前峰月映一江水 : 앞 산봉우리 달이 저 강을 비추네)였다고 한다.
그런데 고적이 다음날 아침 배를 타고 관사로 돌아오려는 데 보니 강이 물이 배로 불어 있었다. 전날 밤 고적은 강이 조수간만의 차로 불었다 줄었다 한다는 것을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문득 어젯밤에 쓴 시에서 일강(一江)란 표현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뒤 돌아가는 길에 떠올린 시어가 일강(一江)에서 물이 줄어든 반강(半江)이다. 고적은 며칠 기다려 다시 시를 남긴 절로 가 시를 고쳤다는 게 이야기의 전체 줄거리다. 이야기의 다른 판본은 아예 고적이 남긴 시를 초당의 천재 시인 낙빈왕이 고쳤다는 내용이 들어있기도 하다. 먼저 앞선 시대를 살다 간 낙빈왕(駱賓王 : 638~684)은 고적의 시를 고치는 게 불가능하다.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 나온 것은 아마도 이 시의 전봉월영반강수(前峰月映半江水)라는 표현이 너무 절묘했기 때문이다. 물 줄어든 강을 달빛으로 채웠다는 표현은 너무 과학적이면서도 시감이 그득한 표현이다. 그 뒤 반강(半江)이란 시어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시에서 반복해 쓰고 있다. (해동주말 : 海東周末 : www.haidongzhoumo.com) 내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