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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이이 풍악증소암노승(李珥 楓嶽贈小菴老僧)

이이(李珥, 1536~1584)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ㆍ석담(石潭)ㆍ우재(愚齋)이다. 1536년(중종 31) 음력 12월 26일에 사헌부 감찰을 지낸 이원수(李元秀)와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의 셋째 아들로 외가가 있던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율곡은 연보를 통해 생애를 정리해 보았다.

1536년 사헌부 감찰을 지낸 이원수와 사임당 신씨의 아들로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 1548년 12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 1554년 금강산 마하연에서 불교를 공부. 1558년 별시에서 천도책을 지어 장원으로 급제. 1564년 정 6품 좌랑으로 관식에 나섬. 1569년 홍문관 부교리로서 춘추관 기사관을 겸하여(명종실록) 편찬에 참여. 1570년 관직에서 물러나 황해도 해주로 가 학문에 전념. 1573년 왕의 부름으로 승정원 동부승지와 우부승지를 지냄. 1581년 홍문관과 예문관 대제학을 지냄. 1583년 병조판서로서 선조에게 <시무육조>를 바침. 1584년 한양 대사동에서 사망

저술로는 <성학집요(聖學輯要)>, <동호문답(東湖問答)>, <경연일기(經筵日記)>, <천도책(天道策)>, <역수책(易數策)>, <문식책(文式策)>, <격몽요결(擊蒙要訣)>, <만언봉사(萬言封事)>, <학교모범(學校模範)>, <육조계(六條啓)>, <시폐칠조책(時弊七條策)>, <답성호원서(答成浩原書)> 등이 있으며,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등의 문학 작품도 전해진다. 그의 저술들은 1611년(광해군 3) 박여룡(朴汝龍)과 성혼(成渾) 등이 간행한 <율곡문집(栗谷文集)>과 1742년(영조 18)에 이재(李縡)와 이진오(李鎭五) 등이 편찬한 <율곡전서(栗谷全書)>이 있다. 율곡 전집에 실려있는 楓嶽贈小菴老僧(풍악증소암노승 : 풍악산 작은 암자에서 노승에게 주다)를 소개하고자 한다.

 

禪詩풍의 시로 불교에 대한 깊은 慧眼을 느끼게 되며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제공하는 해설과 함께 그 의미를 새겨보고자 한다.

 

풍앙증소암노승(楓嶽贈小菴老僧:  풍악산 작은 암자에서 노승에게 주다)

躍鳶飛上下同(어약연비상하동) 물고기는 뛰고 솔개는 날지만 위아래가 같으니

這般非色亦非空(저반비색역비공) 이것은 색도 아니요 공도 아니로다

等閒一笑看身世(등한일소간신세) 무심하게 한 번 웃고 내 몸을 돌아보니

獨立斜陽萬木中(독립사양만목중) 석양의 수많은 나무들 속에 홀로 서 있네.

 

(해설)

율곡 이이가 풍악산(가을에 불리는 금강산)에 구경 갔을 때 작은 암자에서 노승을 만나 진리의 요체에 대해 대화하고 나서 그에게 적어 준 시이다. 이 시를 짓게 된 배경을 적은 서(序)를 대화체로 정리해 보면 이렇다.

율곡 : “여기서 무얼 하시오?”

노승 :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율곡 : “무엇으로 요기를 하시오?”

노승 : (소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이 내 양식이오.”

율곡 : (그가 어떤 주장을 펼지가 궁금해져서 물었다.) “공자와 석가 중 누가 성인이오?”

노승 : “선비는 늙은 중을 놀리지 마시오.”

율곡 : “불교는 오랑캐의 가르침으로, 중국에서는 시행할 수 없소.”

노승 : “순(舜) 임금은 동이(東夷) 사람이고, 문왕(文王)은 서이(西夷) 사람인데, 그렇다면 이들도 오랑캐란 말이오?”

율곡 : “불가(佛家)에서 묘처(妙處)라고 하는 것은 유가 안에도 있는 것이오. 그러니 유가를 버리고 불가에서 구할 게 뭐 있겠소?”

노승 : “유가에도 ‘마음이 곧 부처다.’라는 말이 있소?”

율곡 : “맹자가 성선(性善)을 얘기할 때마다 반드시 요순(堯舜)을 들어 말한 것이 ‘마음이 곧 부처다.’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다만 우리 유가에서는 실리(實理)를 볼 뿐이오.”

노승 : (중은 수긍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말했다.) “색(色)도 아니고 공(空)도 아니라는 말이 무슨 뜻이오?”

율곡 : “이것 또한 눈앞의 경계요.”노승 : (빙그레 웃었다.)

율곡 :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어오른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색이오, 공이오?”

노승 :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닌 것, 그것이 진여(眞如)의 본체요. 이런 시와 비교나 되겠소?”

율곡 : (웃으며 말했다.) “말이 있게 되면 바로 경계가 생기는 것인데, 어찌 그것을 본체라 할 수 있겠소? 만약 그렇다면 유가의 묘처는 말로써 전할 수 없는 데 있는데, 부처의 도(道)는 문자(文字) 너머에 있지 않은 것이 될 것이요.”

노승 : (깜짝 놀라서 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은 속된 선비가 아니오. 나를 위해 시(詩)를 지어서,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글귀의 뜻을 풀이해 주시오.” 

이 시는 이런 만남을 통해 탄생했다.  첫 구의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난다는 것은 『시경(詩經)』「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솔개는 하늘까지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어오른다.[鳶飛戾天,魚躍于淵]”는 말에서 취한 것으로, 천지 사이에 만물이 생동하는 이치가 잘 드러남을 형상화한 말이다.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나는 것을 색이라 하겠는가? 공이라 하겠는가?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니라고 한 말은 “색이기도 하고 공이기도 하다.”라는 말도 될 것이고, “색이면서 공이고 공이면서 색이다.”라는 말도 될 것이다.  율곡은 생동하는 우주의 이치를 바라보며, 시선을 돌려 자신을 바라본다. 자신이 지금 존재하는 곳은 노을이 비끼는 숲 속이다.  이 글을 읽고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곳을 돌아본다.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곳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해도 충분할 만큼 모순 없는 곳이 아니고, “산은 푸르고, 물은 흐른다.”라고 할 만큼 자연의 이치에 따라 움직이는 곳도 아니다. 물고기는 고인 물속에서 죽어서 떠오르고, 솔개는 하늘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오늘날 이 땅에서 본체를 두고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일까? 어렵지 않게 답이 나온다. “산은. 푸르게, 물은 맑게.  (해설 : 하승현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