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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이언적 임거십오영(李彦迪 林居十五詠) 15수(首) 중 1~3수

양동마을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良洞里)에 있는 600여 년의 전통을 가진 양반 집성촌(集姓村)으로 안동시 하회마을과 함께 대한민국의 10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전통마을이다.

 

양동마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양반인 여주 이씨(驪州李氏)와 경상도의 명문인 경주 손씨(慶州孫氏)가 세거(世居)하는 곳으로 특히 여주 이씨는 우리나라 성리학(性理學)의 태두이자 영남 남인의 종장(宗匠)이며 조선시대 이황(李滉), 이이(李珥), 송시열(宋時烈), 박세채(朴世采), 김집(金集) 등과 함께 문묘 및 종묘에 동시에 배향되어 있는 성리학자이자 재상 문원공(文元公)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을 배출하면서 국반(國班) 대우를 받았다. 그리고 그의 외가인 경주 손씨는 적개공신(敵愾功臣 : 조선 세조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칭호) 양민공 손소(襄敏公 孫昭), 이조판서 등을 지내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된 손중돈(孫仲暾)을 배출하면서 명문 도반(道班)으로 행세했다.

 

양동(良洞)은 조선 중 후기 이후 영남 남인(조선의 붕당 중 하나로 선조 때 동인(東人)에서 갈라져 나온 남인(南人) 중 영남 지역의 정통파)의 구심점 역할을 했으며, 그들의 후손들 중에는 문과 31명 포함 과거 급제자가 총 116명에 달했고 이 밖에도 수많은 학자와 충절대의(忠節大義) 명장 및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면서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회재(晦齋)라는 호는 회암(晦菴: 주자(朱熹)의 호)의 학문을 따른다는 견해를 보여준 것으로 주자(朱子)가 서재에 머물면서 철학, 윤리, 역사 등을 노래한 재거감흥(齋居感興)을 변용(變用)하되, 숲 속에서 은자와 학자, 충신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 산림에 물러나 사는 학자의 삶을 노래하는 전형을 만들었다. 주자의 재거감흥 20수는 차제에 소개토록 하겠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 성리학의 정립에 선구적인 인물로서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업적을 남긴 시가 임거십오영(林居十五詠) 15 수다. 이 시는 회재선생의 나이 45세에 지은 시로 공간을 주목하는 모습과 도학적인 지향점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독락당(獨樂堂) 계정(溪亭)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소요하면서 적은 것으로, 회재 선생이 독락당과 계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이 공간에서 무엇을 성취하고자 했던가를 잘 살필 수 있다.

 

임거십오영은 모두 15 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1영(詠)인 조춘(早春)에서부터 모춘(暮春), 초하(初夏), 추성(秋聲), 초동(初冬), 민한(悶旱), 희우(喜雨), 감물(感物), 무위(無爲), 관물(觀物), 계정(溪亭), 독락(獨樂), 관심(觀心), 존양(存養)을 거쳐 15영 추규(秋葵)에서 마무리된다. 우선 15 수중 3수를 살펴보고자 한다.

 

임거십오영(林居十五詠 : 숲에 살면서 15수를 읊다)

 

1. 조춘(早春 : 이른 봄)

春入雲林景物新(춘입운림경물신) 구름 낀 숲에 봄이 드니 경치가 새로워

澗邊桃杏摠精神(간변도행총정신) 산골짜기 복숭아 살구 모두 고상하고 신비롭네.

芒鞋竹杖從今始(망혜죽장종금시) 짚신에 지팡이 짚고 지금부터 나아가

臨水登山興更眞(임수등산흥갱진) 물을 임하여 산에 올라 참된 흥취를 더하리라.

 

2. 모춘(暮春 : 늦은 봄)

春深山野百花新(춘심산야백화신) 산과 들에 봄이 깊으니 온갖 꽃들이 새로워

獨步閑吟立澗濱(독보한음립간빈) 홀로 걸으며 읊는 틈에 산골 물가에 임하네.

爲問東君何所事(위문동군하소사) 봄의 신에게 묻노니 하는 일이 무엇인가?

紅紅白白自天眞(홍홍백밷자천진) 불긋불긋 희끗희끗 자연 그대로의 참됨일쎄.

 

3. 초하(初夏 : 초여름)

又是溪山四月天(우시계산사월천) 산과 시내를 4월의 자연이 또 다스리니

一年春事已茫然(일년춘사이망연) 한 해의 봄 일에 이미 아무 생각 없이 멍하구나.

郊頭獨立空惆悵(교두독립공추창) 들 머리에 홀로 서서 쓸데없이 실심하고 한탄하며

回首雲峯縹緲邊(회수운봉표묘변) 구름 띤 봉우리 어렴풋한 모퉁이로 고개 돌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