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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매화 관련 한시 2수 : 오회지 설후심매(吳晦之 雪後尋梅), 왕면 홍매(王冕 紅梅)

봄을 알리는 매화는 장미과의 식물로 다른 나무보다 꽃이 일찍 핀다. 그래서 매실나무를 꽃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화괴(花魁)라 한다. 매화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향기도 진하고 맑아 예로부터 사군자(四君子)중 봄의 전령사(傳令使)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매화나무는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일찍 피기에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핀다고 ‘동매(冬梅)’, 눈 속에 핀다고 ‘설중매(雪中梅)’라 한다. 아울러 색에 따라 희면 ‘백매(白梅)’, 붉으면 ‘홍매(紅梅)’라 부른다. 우리나라 화가의 경우 대개 18세기까지는 백매를 선호했으나 19세기부터 홍매를 선호했다. 중국 양쯔강 이남 지역에서는 매화를 음력 2월에 볼 수 있다. 그래서 매화를 볼 수 있는 음력 2월을 ‘매견월(梅見月)’이라 부른다.

조선의 거유(巨儒)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매화가 피는 겨울 섣달 초순에 운명했다.

그는 운명하던 날 마지막 유언이 아침 기르던 분매(盆梅)에 "물을 주어라"고 명했다.

퇴계는 이토록 매화를 혹애(酷愛)했기에 매화를 '매형(梅兄)', '매군(梅君)', '매선(梅仙)' 등으로 부르며 깍듯이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했다.

그래서 때로 매화를 의인화(擬人化)시켜 시를 주고받기도 했으며, 생전에 매화를 제재로 한 시만을 모아 매화시첩(梅花詩帖)을 편집해 두기도 했다. 여기에는 90여 수가 실려 있다.

곧 연이어 만개한 매화소식은 남녘으로부터 이틀이 멀다 하고 우리 곁에 찾아올 것이다.

매화 관련 오회지(吳晦之)의 설후심매(雪後尋梅), 왕면(王冕)의 홍매(紅梅) 2수를 행서(行書) 자서(自書)와 작년도 촬영한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설후심매(雪後尋梅 : 눈 온 후 매화를 찾다)   - 오회지(吳晦之)

略彴溪橋小徑斜(략박계교소경사) 개울 위 외나무다리 오솔길 비탈

竹籬茅舍兩三家(죽리모사량삼가) 대나무 울타리에 초가 두세 집.

紅梅似與詩人約(홍매사여시인약) 홍매는 시인과 약속이나 한 듯이

臘雪初消始看花(납설초소시간화) 섣달 눈 처음 녹자 매화꽃 보여주네.

 

오회지(吳晦之)는 남송(南宋) 초기 왕조의 시인으로 자는 원용(元用) 호는 운제(雲梯)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했다. 천부적인 재능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로 잘 표현하였기에 그를 한 시대의 뛰어난 시인으로 불린다.

그는 매화를 매우 좋아했으며 항주 서호(杭州 西湖)의 고산(孤山)에 집을 지어 생향정(生香亭)에 머물며 주변에 매화를 심고 은사(隐士)로서의 삶을 살았다. 재능과 인품이 뛰어나 친구의 추천으로 황실로부터 벼슬을 허락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여전히 초가집에서 조용하고 자유로운 목가적인 삶을 살았으며 계속해서 시를 쓰는데 전념했다. 그는 생전에 명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문학에는 큰 업적을 남겼으며 후세의 존경을 받았다. 시집으로 작사집(嚼蜡集)이 전한다.

 

홍매(紅梅)   - 왕면(王冕)

深院春無限(심원춘무한) 깊은 정원 봄빛이 끝이 없는데

香風吹綠漪(향풍취녹의) 향기로운 바람 불어 초록 물결 일어나누나

玉妃淸夢醒(왕비청몽성) 옥 같은 매화는 고운 꿈 깨어

花雨落胭脂(화우락연지) 꽃비로 붉은 연지 떨어뜨리네

 

왕면(王冕)은 중국 원대(元代)의 화가로 생졸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지원연간(1264~1294)에 출생, 지정 19년(1359)에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자는 원장(元章), 호는 자석산농죽제생(煮石山農竹齊生) 또는 매화옥주(梅花屋主)로 저장성(貯藏性) 출신이다. 진사 시험에 실패한 뒤 관도(官道)에 나가는 것을 체념하고 처사로서 사방을 유력(遊歷)하면서 살았다. 특히 그는 매화를 좋아하여 평생토록 매화를 심고(種梅), 매화를 읊고(詠梅), 매화를 그렸다. 묵매화(墨梅花)를 특기로 화려한 양식을 만들어 명대(明代) 묵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또한 청전석(靑田石)을 사용해서 각인(刻印)을 하여 문인의 전각인(篆刻印) 시조가 되었다. 저서에 죽제시집(竹齊詩集)이 있다.

 

(홍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