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고산 윤선도 한시 몇 수(孤山 尹善道 漢詩 몇 首)

내가 가꾸는 텃밭에도 봄에 해야 할 일들이 끝나고 지금부터 생육을 위한 지원과 결실의 과정만 남았다. 좁은 모종판에서 자란 모종을 정식(定植 : 온상에서 기른 모종을 밭에 내어다 제대로 심는 일)한 지 한 주가 지났다. 정식한 모종은 본능에 따라 넓은 공간으로 바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가일층 깊이 뿌리를 내리고 힘차게 자라 부여받은 유전자의 지시에 따라 충실히 그 역할을 다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것은 봄이 되면 새싹이 돋는 일이다. 하물며 자재보관 창고 귀퉁이에 둥지를 튼 딱새는 산란(産卵)과 포란(抱卵), 줄탁동시(啐啄同時 :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서로 도와야 일이 순조롭게 완성됨을 의미함. 즉, 생명이라는 가치는 내부적 역량과 외부적 환경이 적절히 조화돼 창조되는 것을 말함)와 이소(離巢 : 새의 새끼가 자라 둥지에서 떠나는 일), 그리고 육추(育雛 : 부화한 가금의 새끼를 키우는 일. 조류의 어버이 새가 새끼 새를 돌보며 기르는 것)를 지켜보는 것 또한 경이롭고 위대한 자연의 한 단면을 살펴보는 호사를 누렸다. 이러한 과정에 인간은 절대 개입해서는 안된 다는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외웠던 윤선도(尹善道)의 오우가(五友歌)는 세월이 지날수록 흐릿해진다.

약 430여 년 전에 태어난 윤고산(尹孤山) 선생은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을 지낸 유심(惟深)의 아들이며, 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유기(惟幾)의 양자이다. 8세 때 큰아버지에게 입양되어, 해남으로 내려가 살았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제2의 고향이 된 샘이다

40대 후반 해남에서 지내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 왕이 항복하고 적과 화의 했다는 소식에 접하자, 이를 욕되게 생각하고 제주도로 가던 중 보길도(甫吉島)의 수려한 경치에 이끌려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윤고산은 경사(經史 :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아울러 이르는 말)에 해박하고 의약 ·복서 ·음양 ·지리에도 능통하였으며, 특히 시조문학의 걸작인 오우가를 돌이켜 보며 그가 남긴 한시(漢詩) 몇 수를 살펴보고자 자서(自書)와 함께 올려보고자 한다.

 

오우가(五友歌)

내 벗이 몇 인고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東山)에 달오르니 그이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다섯밖에 더하여 무엇하리.

 

구름 빛이 좋다 하나 검기를 자주 한다

바람서리 맑다 하나 그칠 때가 하도 많다

좋고도 그칠 때 없기는 물 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빨리 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다가 누르는가

아마도 변치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더우면 꽃 피우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가

구천(九泉)에 뿌리 곧은 줄 그로 하여 아노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렇고 사시(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취니

밤중의 광명(光明)이 너만 한 것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고산 윤선도가 56세 때 지은 오우가는 전체 6수의 연시조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 시조의 경지를 한 단계 높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첫 번째 수인 서시에서는 벗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다음부터 이어지는 다섯 수에서는 수(水), 석(石), 송(松), 죽(竹), 월(月)의 특질을 특출한 시각과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담긴 자연물들은 모두 윤선도가 추구했던 유교적 덕목과 이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들로서 다른 자연물들과의 대비(물의 경우에는 구름, 바람과의 속성 대비, 바위의 경우에는 꽃, 풀과의 속성 대비 등) 속에 그 특징이 극대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주요 소재와 몇몇 단어를 제외한 전 구절을 모두 한글로 표현하여 자연물이 지닌 관념성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잘 표현해 내고 있다.

 

당성후만흥(堂後漫興 : 집을 지은 후 흥에 겨워)

入戶靑山不待邀(입호청산불대요) 맞아들이지 않아도 청산은 창으로 들고

滿山花卉整容朝(만산화훼정용조) 산에 가득한 꽃들은 단정히 조회하네

休嫌前瀨長喧耳(휴혐전뢰장훤이) 앞 여울 물소리 시끄럽다 싫어마소

使我無時聽世囂(사아무시청세효) 시끄러운 세상 소식 듣지 않게 해 준다오

 

영일일화(詠一日花 : 하루에 피고 지는 (무궁화?)를 읊다)

甲日花無乙日輝(갑일화무을일휘) 첫날 핀 꽃이 둘째 날 광채가 없으니

一花羞向兩朝暉(일화수향량조휘) 한 꽃으로 두 아침의 해 향하는 게 부끄러워서라네.

葵傾日日如馮道(규경일일여풍도) 해바라기 날마다 기울어지는 게 같으니

誰辨千秋似是非(수변천추사시비) 누가 천년의 시비를 분별할까나. 

 

죽령도중(竹嶺道中 : 죽령(대재)을 지나며)

昔歲曾從鳥嶺去(석세증종조령거) 지난해에는 새재를 따라 넘어갔는데

今來竹嶺問前程(금래죽령문전정) 이번에는 대재를 넘으며 앞길을 묻네

如何回避徑行處(여하회피경행처) 전에 지났던 길을 어떻게 피해서 가는냐 하면

愧殺明時有此行(괴살명시유차행) 평화스러운 세상에도 이 길을 가는 것이 부끄러워서라네

 

효우차고운(曉雨次古韻 : 새벽녘에 내리는 비를 옛 시에 차운하다)

淙淙是何聲(종종시하성) 졸졸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曉向簾前滴(효향렴전적) 새벽에 주렴 앞에 물방울 떨어지네

鸚鵡喚人言(앵무환인언) 앵무새가 사람 말로 외치는데

雨來如昨夕(우래여작석) 엊저녁처럼 비가 온다네

 

소은병(小隱屛) 

蒼屛自天造(창병자천조) 푸른 병풍바위는 자연스럽게 하늘이 만든 것이고

小隱因人名(소은인인명) 소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붙여진 이름이네

邈矣塵凡隔(막의진범격) 아득히 세상의 먼지를 모두 막아 주니

修然心地淸(수연심지청) 마음의 본바탕이 자유자재로 맑아지네

 *소은병(小隱屛)은 전남 보길도 낙서재(樂書齋) 뒤편에 있는 병풍바위로 송(宋)의 주자(朱子) 무이구곡(武夷九曲)의 대은병(大隱屛) 뜻을 취하였으나 다소 작았기 때문에 소은병(小隱屛)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미산(薇山)

西山號日薇(서산호일미) 서산을 고사리로 이름 붙였더니

邈邈煙霞裏(막막연하리) 아득히 멀리 안개와 노을 속에 잠겼네

試使夷齊看(시사이제간) 백이숙제 형제에게 보게 한다면

相携定登彼(상유정등피) 서로 손을 잡고 반드시 저 산을 오르리라

 

주희(朱熹)가 무이산(武夷山)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지어 은둔한 것처럼 윤선도는 보길도에 낙서재를 지어 은둔하였다.

 

미산(薇山)은 보길도 낙서재 앞의 산이름 ‘고사리 산’ 미산(薇山)으로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다 굶어 죽은 백이숙제와 연결되니 그들의 절의를 기리고 그들처럼 살겠다는 뜻을 상징한다. 윤선도는 1637년부터 85세로 죽을 때까지 일곱 차례나 보길도에 왕래하면서 13년 동안을 머물렀다.

 

금객유화선제시(琴客遺畵扇題詩 : 거문고 연주자가 그림 부채를 주기에 그 위에 시를 쓰다)

落日低山外(락일저산외) 지는 해는 산 너머로 뉘엿뉘엿 기울고

斜風吹浪頭(사풍취랑두) 비껴 부는 바람은 물결 위로 스쳐 가네

騎驢何處去(기려하처거) 나귀 타고 어디로 가느냐 하면

正好臥江樓(정호와강루) 눕기에 딱 좋은 강가 누각으로 가네

 

차가한화숙혜리운(次寄韓和叔惠梨韻 : (한화숙?)이 배를 보내주면서 지은 시에 차운하다)

縱我本哀梨(종아본애리) 비록 내가 본디 배를 좋아 하지만

猶知勝味色(유지승미색) 가히 그 맛과 빛깔이 뛰어난 것을 알겠구려

何時見縞裙(하시견호군) 언제 배꽃을 보았던가

食實慙花白(식실참화백) 열매를 먹자지 흰 꽃에게 부끄럽기만 하구려

 

텃밭풍경(5.6)

포란중인 딱새 알(4.15)
6개의 알중 5마리 부화(4.30)
어미새의 먹이활동으로 폭풍성장한 딱새유조가 둥지를 꽉 채웠다
이소를 앞두고 있는 1마리(4마리는 무사히 이소를 마쳤다)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