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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이고 오도송 운재청천수재병(李翶 悟道頌 雲在靑天水在甁)

이고(李翶 772~841)는 당나라 농서(隴西, 감숙성 秦安) 조군(趙郡)사람으로 자는 습지(習之), 시호는 문(文)이다. 양무소왕(凉武昭王)의 후예로서 정원(貞元) 14년(798) 진사(進士)가 되고, 처음에 교서랑(校書郞)에 올랐다. 이후 국자박사(國子博士)와 사관수찬(史館修撰)을 지냈다. 성격이 강직하고 급해 의론 할 때 피하는 게 없었는데, 항상 사관(史官)들의 기록이 부실하다고 말했다. 권력자들이 그의 학문은 존중했지만 과격한 것을 싫어해 오랫동안 승진하지 못했다. 나중에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을 거쳐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되었다. 또 산남동도절도사(山南東道節度使)를 역임했다.

 

양숙(梁肅)에게 수학했고, 한유(韓愈)의 친한 벗이자 질서(姪壻)로 그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켜 ‘한리(韓李)’라 불렸다. 문체가 웅혼(雄渾)하여 당시 명성을 얻었다. 유가 사상을 숭상하여 공맹(孔孟)의 도를 지키는 것으로써 자신의 임무라 여겼다. 저서에 이문공집(李文公集) 속에 있는 복성설(復性說)과 역전(易詮), 맹자주(孟子注), 논어필해(論語筆解) 등이 있다.

 

소개하고자 하는 내용은 이고의 오도송이자 화두(話頭)로 전해지는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 속에 있다(雲在靑天水在甁)"에 대한 유래를 알아보고자 한다.

 

唐의 약산 *유엄선사(惟儼禪師)가 낭주에서 크게 道名을 떨치고 있을 때 낭주자사(朗州刺史) 이고(李翶)가 스님의 법문을 듣고자 찾아갔으나 약산 유엄이 만나 주지 않았다.

 

"만나봐야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니 만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뵙기를 간절히 바라던 낭주 자사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며칠을 기다렸는데 큰스님을

만나는 순간 바짝 마른 몰골에 실망하고 말았다.

별스럽게 생기지도 않는 유엄이 고급 관리인 나를 며칠 기다리게 하다니…

그러면서 "얼굴을 보는 것이 이름을 듣는 것만 못하구나"(見面不如聞)라고 중얼거렸다.

약산 스님은 이를 듣고 자사를 지긋이 보며 말했다.

"그대 귀는 귀하게 여기고 눈은 천하게 여기는가?"(君何貴耳目賤)

자사는 아차 싶어 참회하고는 "어떤 것이 도입니까?"(如何是道)

"저의 소원은 참다운 도를 얻고자 합니다."

스님은 손을 아래위로 가리키며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 속에 있느니라"(雲在靑天水在甁)

순간 이고는 크게 깨닫고서 스님께 시를 지어 바치게 된다.  이를 이고의 오도송(悟道頌)이라 한다.

 

이 게송이 바로 그 유명한 ‘운재청천수재병(雲在靑天水在甁)’ 이라는 화두(話頭)가 나온 배경이다.

구름은 하늘에 떠있고, 물은 병 속에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當然) 한 일인데, 이 말이 무엇이 그리 대단한 진리일까?  이 말과 같이 진리는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해서 늘 우리 눈앞에 있지만 인간이 眞理, 도(道)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지, 늘 물속에서 살면서도 물을 인식하지 못하는 물고기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공기를 호흡(呼吸)하고 살면서도 공기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간들처럼 진리와 도(道)는 한순간 한시도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듯이 본래(本來) 구족(具足)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진실상(眞實相)이리라.

이 화두(話頭)는 범부인 나로서는 이해 불가한 영역이지만 불가(佛家)에서는 널리 알려진 내용으로 당(唐) 이래 많은 서화가들의 화제(畵題)이기도 하다. 이고(李翶) 시 2수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증약산유엄시(贈藥山惟儼詩( : 약산의 유엄선사에게 시를 바치다)

鍊得身形似鶴形(연득신형사학형) 수행으로 체득한 몸은 학의 모습과 같고

千株松下兩函經(천주송하양함경) 빽빽한 소나무 아래는 경전 두어 권 담은 함뿐

我來問道無餘說(아래문도무여설) 내가 와서 도를 물으니 다른 말씀 없으시고

雲在靑天水在甁(운재청천수재병) 구름은 푸른 하늘에 있고 물은 병 속에 있다 하네

 

選得幽居愜野情(선득유거협야정) 조용한 곳 유거 하며 자연 정취 즐기니

終年無送亦無迎(종년무송역무영) 한 해 다하도록 가고 오는 이 없네

有時直上孤峰頂(유시직상고봉정) 때로는 곧장 고봉 정상에 올라

月下披雲嘯一聲(월하피운소일성) 달 아래 구름 헤치고 긴 휘파람 불어 본다

 

*약산유엄(藥山惟儼, 745-828)선사는 당(唐)의 승려이다.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의 제자로서, 속성은 한(韓)씨이며 산서성(山西省) 출신이다. 17세에 광동성(廣東省)의 혜조(慧照) 선사에게 출가하였으며, 29세 때에 형악사(衡岳寺)의 희조(希藻) 율사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석두희천 문하에서 대오(大悟)한 후 호남성의 작약산(芍藥山)에서 거주하였으므로 약산화상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