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둘러보면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만발한 그야말로 봄의 절정으로 가고 있는 일 년 중 가장 호시절이 지금이다.
봄의 향연(饗宴)이 전개되고 있는 이맘때가 화란춘성(花爛春盛)이요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 붙잡을 수없기에 황금 같은 하루가 지나감이 아쉽지만 주말마다 집으로 오면 주말농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2주전에 파종한 10여종의 상추는 새싹이 제법 돋아났고 감자도 초록색 잎을 내밀고 있다. 다행히 토요일 봄비가 내려 멀칭을 완료하였고 완두콩, 당근, 호박, 참외씨앗도 파종을 마쳤다. 5월초 고추, 오이, 가지, 토마토 등 모종을 정식(定植)하면 봄에 해야 할 일은 마치게 된다. 이후부터 풀과의 전쟁을 벌이는 일만 남았다.
30년 넘게 주말농장을 일군 탓인지 나름 전원생활에 대한 준비는 마쳤다고 생각되지만 현실이 발목을 잡고 있기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지만 같이하는 동료들과 땀을 흘리며 마시는 막걸리 한잔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주말마다 들리는 농장에는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있지만 농장으로 향하는 마음은 즐겁고 발걸음은 가볍다.
전원의 즐거움을 찾는 이라면 한 번쯤 읊은 적이 있는 왕유(王維)의 전원락(田園樂) 한시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한시(漢詩)는 보통 오언(五言), 칠언(七言)이라 하여 한 구절이 오언절구(五言絶句)나 칠언절구(七言絶句)로 되어 있는 데 반하여 이 시는 그러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매우 독특한 육언절구(六言絶句)로 표현했다. 왕유 자신도 기존 틀에서 벋어나 육언주필성(六言走筆成 : 붓을 휘둘러 육언 시를 짓다)이라는 부제(副題)를 붙였다.
이 시는 왕유의 인생후기 작품으로 현실정치에 환멸을 느껴 종남산(終南山) 자락 망천별장(輞川別莊)에 은거(隱居)할 때 지은 망천육언(輞川六言)시로 봄날 풍경과 전원생활의 한가로운 정경을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로 그려 보여주는 듯하다. 이 시의 전반부는 이른 봄의 풍경을 마치 그림을 그린 듯 묘사했다면 후반부에서는 전원생활의 한가한 멋을 표현하고 있다.
송나라의 시인이자 화가인 소동파(蘇東坡)의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라는 말은 시인이자 화가인 왕유의 시와 그림을 감상하며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라고 말한 데서 유래했다.
이 시 총 7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시는 독립적으로 장으로 구성되어 하나의 전체로 연결되어 자연과 전원생활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시 모음은 다양한 각도에서 망천의 전원생활과 자연경관을 보여주며, 시인의 생활 태도와 정신적 경지를 깊고 완벽하게 표현하였기에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전원락(田園樂 : 전원생활의 즐거움)
其一.
出入千門萬戶(출입천문만호) 수많은 집을 출입하고
經過北里南隣(경과북리남린) 북쪽 마을 남쪽 이웃을 지나다녔네.
蹀躡鳴珂有底(섭접명가유저) 말 장식 울리며 마음껏 돌아다니는데
崆峒散髮何人(공동산발하인) 공동산에 산발한 사람은 누구이던가.
其二.
再見封侯萬戶(재견봉후만호) 두 번 보고 만호의 제후에 봉해지고
立談賜璧一雙(입담사벽일쌍) 선채로 담화하며 벽옥 한 쌍을 하사 받았다네.
詎勝耦耕南畝(거승우경남무) 어찌 남쪽 밭두둑을 나란히 경작함만 하겠으며
何如高臥東牕(하여고와동창) 어찌 동쪽 창가에 높이 누워 지냄만 하겠는가.
其三.
採菱渡頭風急(채능도두풍급) 마름을 캐는데 나루터에 바람이 거세게 불고
策杖村西日斜(책장촌서일사) 지팡이를 짚고 가는데 마을 서쪽으로 해가 기우네.
杏樹壇邊漁父(앵수단변어부) 은행나무 언덕 근처에 어부가 보이고
桃花源裏人家(도화원이인가) 도화원 안쪽에 인가가 있네.
其四.
萋萋芳草秋綠(처처방초추연) 무성한 방초가 녹음 진 시절
落落長松夏寒(낙낙장송하한) 늘어진 큰 소나무에 시원한 여름.
牛羊自歸村巷(우양자귀촌항) 소와 양은 스스로 마을 거리로 돌아오고
童稚不識衣冠(동치불식의관) 아이들은 벼슬아치를 알아보지 못하네.
其五.
山下孤煙遠村(산하고연원촌) 산 아래 한줄기 연기 피어오르는 마을 저 멀리
天邊獨樹高原(천변독수고원) 하늘가에 한 그루 나무가 우뚝 서있는 언덕.
一瓢顔回陋巷(일표안회누항) 청빈한 안회(공자의 제자)는 궁벽한 마을에서
五柳先生對門(오류선생대문) 오류선생(도연명)과 문을 마주하고 있구나.
其六.
桃紅復含宿雨(도홍복함숙우) 복사꽃 붉은데 또 밤새워 내린 비를 머금었고
柳綠更帶春煙(류녹경대춘연) 버들잎 푸른데 또 봄 안개를 드리웠네.
花落家僮未掃(화락가동미소) 꽃이 지는데 심부름하는 아이는 쓸지 않고
鶯啼山客猶眠(앵제산객유면) 꾀꼬리 울어도 산속 나그네는 아직도 잠들어있네.
其七.
酌酒會臨泉水(작주회임천수) 샘물가에 모여 술을 마시고
抱琴好倚長松(포금호의장송) 큰 소나무에 기대어 거문고 안고 있기를 좋아하네.
南園露葵朝折(남원로규조절) 남쪽 밭 이슬 젖은 아욱은 아침에 뜯고
東谷黃粱夜舂(동곡황양야용) 동쪽 골짜기 노란기장을 밤에 절구질하려네.
(주말농장 주변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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