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 위치하고 있는 봉은사(奉恩寺)는 신라시대의 고승 연회국사(緣會國師)가 794년(원성왕 10)에 견성사(見性寺)란 이름으로 창건(創建)하였다고 한다. 서울 봉은사 판전(板殿)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죽기 사흘 전에 쓴 ‘판전’이란 편액이 걸린 곳으로 유명하다.
500여 년 전 봉은사의 모습은 지금과 달리 한양에서 한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반나절이나 가야 도달할 조용한 산사였을 것이다. 조선 3대 기인(奇人)인 북창 정렴(北窓 鄭磏)이 해질 무렵 봉은사의 풍경을 오언절구로 표현했는데 작금에서 오는 느낌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된 모습이 확연하다. 그 당시의 시절로 돌아가 안갯속에 잠긴 봉은사를 상상하며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잠시 다녀오는 것 또한 묘한 감회가 있으리라.
봉은사(奉恩寺)
孤煙橫古渡(고연황고도) 외로운 연기 옛 나루터에 비끼고
落日下遙山(낙일하요산) 지는 해는 먼 산으로 내려온다
一槕歸來晩(일탁귀래만) 노를 저으며 느지막이 돌아오니
*招提杳霧間(초제묘무간) 봉은사는 아득히 안개 속에 잠겼구나
*초제(招提 : 사방에서 모여드는 수행 승려들이 머무는 객사로 봉은사를 말한다)
책에는 낙일(落日)을 한일(寒日)로 무간(霧間)을 애간(靄間)으로 되어있다.
북창 정렴(北窓 鄭磏 1506 ~ 1549)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조선 3대 기인(奇人)인 정렴의 본관은 온양(溫陽)이며, 자는 사결(士潔)이고, 호는 북창(北窓)이다. 좌의정 순붕(順鵬)의 아들이다. 1537년(중종 32) 진사시에 합격하여 장악원주부(掌樂院主簿 :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를 거쳐 관상감(觀象監)·혜민서(惠民署)의 교수를 역임하고 포천현감으로 부임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 아버지가 윤원형(尹元衡)·이기(李芑) 등과 함께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일으켜 많은 선비를 죽이고 귀양 보내자 벼슬을 그만두고 은거하였다.
그는 성리학뿐 아니라 천문·지리·의학·복서(卜筮)와 불교·도교에도 정통했고 그림과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토정 이지함(李之菡)과 더불어 조선의 3대 기인으로 꼽힌다. 이유원(李裕元)이 지은 임하필기(林下筆記) 제24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에 의하면 "정렴은 신묘하게도 여러 나라의 언어를 이해하였다. 일찍이 중국에 갔을 때 유구국(琉球國) 사람이 그를 찾아와 주역(周易)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자, 그는 즉시 유구국의 말로 가르쳐 주었다. 관(館)에 있던 여러 나라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서 찾아오자 각기 그 나라의 언어로써 대화를 나누니, 그를 천인(天人)이라고 칭찬하면서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라고 하여 여러 나라 언어에도 능통했음을 알 수 있다. 저서에 북창비결(北窓秘訣), 용호비결(龍虎泌訣) 등이 있고, 문집인 북창집(北窓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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