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두보 춘망(杜甫 春望)

많이 알려지고 친숙한 시 춘망(春望)은 당(唐) 나라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안사의 난(安史의 亂 : 755~763년에 이르기까지 약 9년 동안 중국 당나라를 뒤흔든 난으로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 등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난) 때 반란군에게 잡혀 장안(長安)에서 포로로 있으면서 지은 글로 당시의 혼란한 상황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담고 있어 현재까지 널리 알려진 명시를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춘망(春望 : 봄날의 소망)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나라는 망하여도 산하는 남아 있어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성안에 봄이 오니 초목만 무성하구나.

感時花濺淚(감시화천루) 시국을 생각하니 꽃도 눈물을 뿌리게 하고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이별을 한탄하니 새도 마음을 놀라게 한다.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 봉홧불이 석 달이나 계속되니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집에서 오는 편지는 만금에 해당한다.

白頭搔更短(백두소갱단) 흰머리를 긁으니 다시 짧아져서

渾欲不勝簪(혼욕불승잠) 온통 비녀를 이겨내지 못할 것 같구나

 

757년에 두보가 반군에게 함락된 장안에 억류되어 있으면서 전란 중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을 슬퍼하며 나라와 가족에 대한 근심을 시로 나타냈다. 안사의 난 중에 두보가 가족들을 강촌으로 피난시켰을 때 반군은 이미 장안 근처까지 몰려와 있었고 현종(玄宗)은 장안성을 버리고 촉(蜀)으로 도망쳤다. 현종의 피난 행렬이 마외역(馬嵬驛)에 이르렀을 때 어가를 호위하던 진현례(陣玄禮)가 병사들을 앞세워 양국충(楊國忠 : 양귀비의 오빠)의 일행과 양귀비를 죽일 것을 간언 하자 현종은 어쩔 수 없이 이를 허락한다.

 

양귀비가 죽은 후 현종은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촉으로 가고 반군에 대항하기 위해 도성에 남아있던 현종의 태자 이형(李亨)은 영무(靈武)에서 즉위한다. 이 소식을 들은 두보는 나라에 인재가 필요한 때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가족과 이별한 후 숙종의 행재소(行在所)가 있는 영무로 달려간다. 그러나 도중에 반군에게 붙잡혀 장안으로 압송되지만 두보는 관직이 낮아서 포로 신세는 면한 체 장안에 억류되었다. 장안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 반군에 의해 참혹하게 유린되는 참상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이 시기 많은 현실주의 성향의 시를 썼으며 헤어진 가족들에 대한 근심과 걱정을 담은 시들을 지어냈다.

 

봄날의 소망(춘망)에서 두보는 장안에 억류되어 참혹한 관경을 목도하면서 자신 역시 하루하루를 근근이 연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절은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는 걸 슬퍼하고 있다. 만물이 소생하여 잎은 초록으로 무성해지고 꽃은 붉게 타오르는 자연의 화려한 생동감은 장안에 드리워져 있는 검은 죽음의 그림자를 돋보이게 하고 두보로 하여금 더 절망스럽게 한다. 찬란한 봄과 전란의 참혹함은 서로 대비되면서 두보의 슬픔을 심도 있게 표출한 명시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