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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동곡일타 연지연향 시(東谷日陀 燃指燃香 詩)

근대 고승(高僧)을 논하자면 동곡당 일타(東谷堂 日陀. 1927 ~ 1999) 스님을 빼놓을 수 없다. 동 시대를 함께한 성철(性徹) 스님과는 나이 차이가 17세로 어리지만 해인사에서 함께한 시간이 많았기에 스님의 생전영상을 통하여 철수좌(徹首座 : 성철스님)에 대한 일화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일타화상(日陀和尙)은 성철스님이라는 큰 거목에 살짝 가리어졌던 대선사(大禪師)이시다.

14세대 출가한 스님은 1954년(26세)에 강원도 오대산 서대(西臺)에서 현문 혜암(玄門 惠菴)스님과 함께 생식기도(生食祈禱)와 장좌불와(長座不臥)로 하안거(夏安居)를 마친 뒤 적멸보궁(寂滅寶宮)에서 하루 3천배씩 7일 기도를 하고 연지연향(燃指燃香) 발원하며 남긴 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깨달음을 위한 간절함으로 손가락 4지를 태워 원()을 이루고자 하는 사생결단(死生決斷)의 결행(決行)이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불교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동곡일타 연지연향 시(東谷日陀 燃指燃香 詩)

不憚山高水闊路(불탄산고수활로) 산 높고 물 넓은 이 길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得得來到何所以(득득래도하소이) 헐떡거리며 여기 온 뜻은 무엇이던가?

決欲究明一段事(결욕구명일단사) 결연히 일단대사를 참구 하여 명확히 밝히고자

燃指燃香立戒願(연지연향입계원) 손가락을 향 삼아 태워 서원(誓願)의 계를 세우리다.

吾從今日限十年(오정금일한십년) 내가 오늘부터 십 년을 한정하고

更不下山要專精(갱불하산요전정) 다시는 하산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정진을 요체로 삼으리.

若未發明本家業(약미발명본가업) 만약 이 남아의 대업을 밝히지 못한다면

飛匝天上何所用(기잡천상하소용) 천상에서 돌아다닌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발원을 마친 뒤 스님은 세속과 관련된 사람 노릇에 대한 미련을 모두 버리고 ‘오로지 중노릇만 잘하리라’ 결심하며 오른손 네 손가락을 심지로 삼아 불을 붙였고, 고통을 참는 것이 아니라 잊으시면서 한밤에 시작된 연비는 날이 환해지면서 끝이 났다.

 

이듬해 1955년(27세)에 경북 봉화군 소천면 태백산 도솔암으로 들어가 동구불출(洞口不出), 오후불식(午後不食), 장좌불와(長座不臥)를 지키며 홀로 6년의 결사(結社)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정진을 하다가 1956년 음력 3월 22일에 큰 환희의 경지를 이루어 게송(偈頌)을 지었다.

 

동곡일타 스님 게송 : 동곡일타(東谷日陀) 스님 게송(偈頌) (tistory.com)

 

1996년(68세)부터 스님의 몸은 열반을 감지했음인지 생사리(生)가 나오기 시작했다.

연비 한 오른손에서 한 달에 한 두 과 또는 세 과씩 나와 열반하시기 전까지 백 여과의 사리가 나왔고 그 사리 중의 일부는 증장(增長)하거나 분신(分身)을 하며 여러 개로 나누어지기도 하였다.

스님의 생전 육성을 통해 직접 자신의 생사리를 얼마나 강한지 망치로 내려친 경우도 있는데 이는 부처님 사리는 철퇴로 내려쳐도 깨지지 않는다는 경전 내용을 보고 자신의 사리로 실험했는데 결국 깨졌다고 한다.

스님은 열반 후 800 여과의 사리를 수습했다.

 

불교에서 사리(舍利)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의 결정체이며 깨침의 결과 즉 마음의 열매(心實)인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는 중국과 함께 사리신앙(舍利信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리는 붓다가 남긴 유해의 일부라는 상징성을 지녀 가장 신성한 물건으로 여겨지면서 사리에 대한 신앙은 중국은 물론 한국에 깊숙이 자리 잡는다.

이것은 사리신앙(舍利信仰)이 시각화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나 탑 등의 조형물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리는 다양한 이적(異蹟)을 보이는데, 그중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방광(放光)으로, 다양한 형태와 색상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일어난다.

또한 사리가 불어나는 증과(增果), 반대로 합해져서 줄어드는 합과(合果), 사리가 사라지는 멸과(滅果), 다시 돌아오는 환과(還果) 등의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주로 고승(高僧)이 생전 또는 열반 후 나타나는 사리는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져왔기에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한다.

 

1) 사리(舍利)의 기원

사리의 기원이란 Sarira의 산스크릿트어가 원어인데 중국인들의 세계문화의 중심이 자신들이라는 대단한 자긍심의 발로로 어떠한 외래어도 뜻을 번역을 하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근사치의 한자로 음역을 하는 이유로 설리라(設利羅)또는 실리라(室利羅)라고 번역하였으나 신골(身骨), 유신(有身), 영골(靈骨)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 후 다비(茶毘) 후 요즘 말로 화장 후 8곡 4두(8말 4되)나 되는 사리가 수습된 후로부터 사리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생존 시에 자신이 열반에 들은 후 사리로 인한 쟁탈의 전쟁이 날 것을 미리 아시고 염려하여 열반하시기 전에 여러 나라에 골고루 분배가 되도록 분배를 미리 하였다고 한다. 그런 연고로 하여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서 있는 설악산의 봉정암(鳳頂庵), 통도사의 금강계단(金剛戒壇), 사자산의 법흥사(法興寺),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의 중대(中臺), 태백산 봉암사(鳳巖寺)는 365일 끊이지 않고 참배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도처로서 유명하다.

 

2) 사리의 성분

육바라밀(六波羅蜜) 공덕을 성취하시고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성취하신 스님들의 열반 후 다비를 마치면 유골의 속에서 구슬모양으로나 생전에 이빨 사이에서 나오는 치사리(齒舍利)라 하며, 오방수(五方水)라고 하여 전통 다비 형식 외에 보태어 동서남북과 육신아래 다섯 군데 오방수에서 수습하는 것과 또는 몸 전체가 입적 후 사리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궁금증으로 이론이 분분하던 중 20여 년 전 조계종 총무원장님이시던 손경산( 孫京山. 1917~1979)스님의 열반 후 사리가 콩알크기 정도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의 사리가 130 여과가 나와서 세인의 화제가 되던 중 연세대학교 물리대학에서 실험을 과학적으로 해보고자 원하여 한 과를 수습하여 분석을 해보았으나 어떠한 방법으로도 해체할 수가 없어 물질의 구성원소를 쪼개지는 못하였으나 지금까지 발견된 115가지의 모든 물질을 이루는 구성의 원소를 기준으로 어떤 것인가 현미경으로 확인하여 보니 원소단위에 없고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은 물질로 판명되어 세계인들의 뉴스의 초점이 된 적도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다이아몬드도 1300도의 열을 가하면 탄산가스로 기체화하여 허공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망치로 치기만 하여도 금이 가거나 부스러지는데 사리는 3000도 이상의 열을 가하여도 타지를 않고 쇠망치로 내려치는 정도보다 몇 배 더 강한 가압기로 3톤 이상의 무게로 압력을 가해도 깨지지 않아서 신비감을 더하여준 보도가 당시 각 일간 신문과 여타 잡지에 보도가 된 사실이 있다.

보도 내용은 대한민국에서 사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적이 한 번 있다. 인하대의 임형빈 박사가 사리 1과(顆)를 분석하여 아래와 같은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지름 0.5센티미터 정도의 팥알 크기 사리에서 방사성 원소인 프로트악티늄(Pa), 리튬(Li)을 비롯하여 티타튬, 나트륨, 크롬, 마그네슘, 칼슘, 인산, 산화알루미늄, 불소, 산화규소 등 12종이 검출되었다.

사리의 성분이 일반적으로 뼈 성분과 비슷했으나 프로트악티늄, 리튬, 티타늄 등이 들어있는 것이 큰 특징으로 사리의 굳기 즉 경도는 1만 5000파운드의 압력에서 부서져 1만 2000천 파운드에서 부서지는 강철보다도 단단했다.

특히 결석의 주성분은 칼슘, 망간, 철, 인 등으로 되어 있는 데다가 고열에 불타 없어지며 경도도 사리처럼 높지 않아 사리는 결석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3) 사리의 색

사리의 색은 기본으로 다섯 가지 흰색, 검은색, 붉은색, 파란색, 투명한 색이 없는 것이 주류를 이루나 아주 파랗지도 않은 연두 정도의 중간색도 간간이 나오며 터키색과 과도 같은 화려한 부처님의 진신사리도 있으며 부처님의 사리에서도 볼 수 없는 찬란한 황금색을 보여서 세상을 놀라게 한 10여 년 전에 입적하신 해인사의 성철(性徹) 스님의 두골 부분에서 수습된 사리는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황금색으로 전 세계의 불교인들에게 신비감과 스님의 수행력에 감탄을 자아내게 한 적이 있다. 사리의 5가지 기본색 외에 연두색과 연푸른색, 쇄신사리로 나오는 사리의 자주 빛 투명색에다가 성철스님의 황금색까지 모두 합쳐 10여 가지 색으로 볼 수가 있다.

 

4) 사리의 크기

부처님의 혈사리(血舍利)라고 하는 아주 작은 깨알의 10분의 1 정도라 할까 아주 작은 붉은색의 쇄신 사리로부터 좁쌀 정도의 크기도 있고 쌀알크기 가지의 작은 것으로부터 팥알만 한 것과 콩알만 한 것 사람의 새끼손톱 정도의 직경을 갖은 중간 정도 7~8밀리에서 1센티가 넘는 크기의 대형 크기까지 있으며. 육조 혜능대사(六祖慧能大師)가 최초로 육신전체를 통채로 사리가 되어진 이래로 신라의 김교각(金喬覺) 스님 외에 15여 년 전 중국에서 온몸전신 사리로 보여준 것 등 외에 십여 명의 전신사리가 되어 있으니 작게는 0.1미리 정도로부터 크기로는 사람의 몸 전체크기의 사리가 있다.

 

5) 사리의 종류

법신사리(法身舍理)는 부처님의 정신이 담겨 있는 팔만사천대장경, 쇄신사리(碎身)는 아주 미세한 구슬로 된 특히 붉은색의 혈사리(血舍利)가 이에 속한다.

생신사리(生身舍利)는 살아있을 때 몸에서 나오는 사리이며, 특히 치사리라고 하여 독립운동 33인의 대표이셨던 우리나라 제일의 전통종단 조계종을 창종(創宗)하신 백용성(白龍城) 대종사님은 범어사(梵魚寺) 극락암에서 경전을 보시던 중 이빨 사이에서 팥알만 한 사리 두과가 나와 대수롭지 않게 극락암 뜨락에 내던져 버렸는데 한밤중에 방광하여 제자들이 줍는 소란을 피우자 그런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공부에 전념하라고 타일렀으나 스승의 몸에서 나온 사리인지라 생전에는 조용히 있다가 열반에 드신 후 사리탑을 조성하여 모셔놓았다고 한다.

전신사리(全身舍利)는 옴 몸이 사리로 변하는 경우이며, 부처님 이후 선종에서 대표 격인 6조 혜능대사의 경우도 전신사리다. 신라시대 중국으로 건너가시어 육신 보살로 화현(化現) 하여 중국인들 모두가 지장보살로 추앙하고 있는 김교각(金喬覺)은 온몸전체가 사리가 된 것을 개금(蓋金)하여 국보로 지정하여 중국 구화산(九華山)에 보존되어 많은 중국인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오방수(五方水)라고 하여 우리나라 많은 전통 사찰 중 백양사(白羊寺)와 범어사(梵魚寺)에서 천여 년 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특이한 사리수습의 방법으로 열반에 드신 스님을 안치(安置)할 자리 밑을 1미터 이상의 땅을 파고 그 자리에 맑은 물을 담은 항아리를 놓고 한지로 몇 겹을 덮고 항아리 뚜껑을 덮은 후 그 위에 개와로 덧씌우고 흙을 덮은 다음 화장할 때 위로부터 화기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하여 공간을 30Cm 둔 다음 두께 5센티 정도의 가로 50센티 세로 1미터 정도의 돌로 덮고 나서 다시 흙으로 덮은 후 화장 하기 위한 숯 등을 준비하고 화장하는 장소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에도 1미터의 땅을 파고 맑은 물을 담은 항아리에 한지를 감싼 후 뚜껑을 덮고 입적(入寂)하신 스님의 육신을 운구하여 오후 한 시부터 불을 댕긴 후 다음날 새벽 6시경 불이 잦아진 후 유골을 수습하여 사리를 분리하고 땅 속 항아리와 땅 위의 동서남북 사방의 오방수를 꺼내어 항아리 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사리를 수습하는 방법이다.

이런 내용을 처음 대하시는 분들은 의아하겠지만 바로 몇 년 전 조계종 방장을 지내셨던 서옹(西翁) 대종사님을 백양사에서 다비를 모신 후 유골의 사리 외에 오방수에서 6과의 사리를 수습을 하였고 30십여 년 전 동래 범어사에서 입적하신 동산(東山) 대종사님의 사리도 당시 참관 하였던 청담(靑潭) 큰스님께서 직접 오방수의 사리를 수습하였다.

이외에도 서옹 큰스님의 스승이셨던 만암(曼庵) 스님 등도 오방수에서 사리를 수습하였다고 한다.

진신사리의 특징에 또 하나는 수 천년, 수 백 년 후에라도 때에 따라 방광(放光)을 하는데 오래전 알려진 방광은 해평 도리사(桃李寺)에서 문화재 절도범이 후불탱화(後佛幀畵)를 면도칼로 그림만 도려내고 돌돌 말아서 훔쳐 달아나던 중 도리사 일주문밖 개울을 건널 때 탱화에서 눈부신 빛을 발하는 광경을 보고 놀라서 탱화를 개울가에 버려두고 도망을 쳤으나 한밤중에 마을에서 도리사에 산불신고로 소방서에서 출동하여 살펴보니 탱화에서 빛을 발하는 것을 확인 후 자세히 살펴본 즉 탱화 하단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로 전래 역사가 기록되어 있어 사리를 수습하게 된 경우도 있고 여타 다른 스님들의 사리도 많이 방광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정작 고승들은 사리에 집착하거나 관심을 두지 말 것을 강조하며 수행정진 하는데 힘쓰라고 경책 하였지만 후학들이나 제자 또는 문도들로서 가신 스승의 유품도 중요하고 뜻을 기리는 상징물로 보관을 하는데 하물며 스승의 몸속에서 화장 후 또는 생전에 나오는 정신적인 결정체를 어찌 함부로 버리거나 소홀히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스님의 정액이 뭉친 것이라고 하거나 담석(膽石)의 일종이다 하는 의견도 있으나 과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고 결석인 경우 쉽게 불에 타거나 생전에 결석이 있는 경우라면 고통이 극심했을 것이라 한다.

사리는 뼈 조각 같은 것을 의미하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나올 순 있죠 하지만 특별히 색이 있거나 반짝이는 사리는 많은 수행을 해야 생긴다고 한다.

또한 사리가 늘어나는 사리증과(舍利增果) 현상도 자주 나타나는데 숭유억불(崇儒抑佛)을 위한 정도전(鄭道傳)의 불씨잡변(佛氏雜辯)의 기록에도 사리증과 기록이 있으며 이러한 기적(奇蹟)은 종종 언론에 보도되기도 한다.

 

< 연합뉴스. 1988.9.16> :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운제산 오어사 자장암(주지 삼현스님, 본명 姜병철 43)에서 부처님 진신사리 7 과가 기도를 시작한 이후 14 과로 늘어났다 고 주장해 진실여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리증과는 자장암이 지난 7월 25일 태국에서 수도를 마치고 돌아온 정신스님으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 7 과를 기증받은 후 지난달 5일 사리친견 3백 일 기도에 들어가면서 희귀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기도를 시작한 후 지난달 21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스님이 이곳을 찾아와 사리 1 과를 기증해 모두 8 과를 보관해 왔으나 기도 30일째인 지난 9일에는 자연적으로 4 과가 증가했다는 것.

이어 10일에는 다시 1 과가 13일에도 1 과가 각각 증가해 16일 현재 모두 14과에 달하고 있다는 것.

진신사리는 대웅전에 마련된 유리보관함(가로. 가로 20㎝)에 넣어져 있으며 쌀알크기다. 자장암 주지 삼현스님은 "과학적으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는 불가사의 한 일"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