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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도연명 음주 20-19수(陶淵明 飮酒 20-19首)

사람에게 인명(人名)이 있는 것과 같이 토지에는 지명(地名)이 있다. 지명은 마을이나 지방, 산천, 지역 등 땅에 붙여진 이름으로 이는 토지에 지명이 정하여 붙여놓는 것이 사회를 구성하여 모여 사는 인간생활에 도움을 주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도 우리 땅에 정착하여 생활하면서 어디에나 알맞은 지명을 정하고 이를 일상생활에 써왔으며, 그러는 동안에 오늘날과 같이 많은 지명이 축적되었다.

근년에 이르러 세계 각국은 그 정도와 방법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고대 지명에서 현대 지명에 이르기까지 조사, 연구하여 많은 업적을 쌓아 왔고 그 결과로 차차 지명학(地名學)으로 기반을 다져왔다. 지명학(地名學)은 지명을 어원적(語源的), 역사적 또는 지리학적으로 연구하여 분류하는 연구이다. 지명학은 그 지명의 언어가 쓰였던 기간, 역사, 인구분산과 같은 중요한 역사적 정보도 알려준다.

그러므로 지명 그 속에는 우리 조상의 사고와 의지가 담긴 것도 있고, 생활 모습을 나타내는 지명도 있어서, 우리 문화 발전의 역사와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가 된다.

 

내 고향 산청(山淸)은 산 높고 물 맑은 곳으로 과거 산음현(山陰縣)과 단성현(丹城縣) 두 현의 변천되어온 지명이다.

지명 관련 흥미로운 두 곳을 살펴보면 우주산업 전진기지인 나로우주센터가 전남 고흥(高興)에 있다. 고흥을 한문으로 풀이하면 높이 흥한다는 의미다. 즉 높다는 것은 우주를 뜻하며 높이 날아올라 흥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지명 때문에 우주산업 기지가 들어선 것이며,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永宗島)를 풀이하면 긴 마루의 섬이다. 이는 과거 활주로(滑走路)를 한문으로 표현한다면 영종(永宗)라는 단어가 적합하게 적용되었을 것이다. 처음 지명을 정한 선조들이 앞날을 내다보는 지혜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으리라.

연이어 소개하고자 하는 도연명의 음주 19수는 도연명의 자술적(自述的) 의미와 귀거래사(歸去來辭)의 축소판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열대야가 가시지 않는 늦은 밤 행서체로 자서해 보았다.

 

도연명 음주 20-19수(陶淵明 飮酒 20-19首)

疇昔苦長飢(주석고장기) 예전에는 늘 배고픔에 시달려서

投耒去學仕(투뢰거학사) 쟁기 버리고 벼슬살이에 나섰다.

將養不得節(장양부득절) 그러나 가족들 부양하기가 어려웠고

凍餒固纏己(동뇌고전기) 늘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렸다오.

是時向立年(시시향입년) 그때가 내 나이 삼십이었으니

志意多所恥(지의다소치) 내 의지와 마음이 부끄러워라.

遂盡介然分(수진개연분) 하지만 나의 성품을 지키려고

拂衣歸田里(불의귀전리) 벼슬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왔다네.

冉冉星氣流(염염성기류) 하늘의 별 위치 따라 세월도 흘러

亭亭復一記(정정부일기) 십 이년이 지나갔네.

世路廓悠悠(세로곽유유) 세상살이는 길이 넓고도 멀어

楊朱所以止(양주소이지) 쾌락에 빠져 흥청대는 *양주처럼 멈출 수는 없다네.

雖無揮金事(수무휘금사) 흥청망청 쓸 돈은 없으나

濁酒聊可恃(탁주요가시) 막걸리라도 마시며 내 마음을 위로해야지.

 

*양주(楊朱) :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BC 475~221) 초기의 도가 철학자, 중국 역사에서 철저한 개인주의자이며 쾌락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는 그가 '각자 자신만을 위한다'는 위아설(爲我說)을 제창했다고 맹자(BC 371경~289)가 비난한 데서 비롯되었다. 맹자는 "털 하나를 뽑아 온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라고 양주를 평하여 그의 이기주의를 비난했다. 그러나 전해지는 그의 말들을 모아보면 양주는 방종과 방탕이 아닌 자연주의의 옹호자였다. "삶을 대하는 유일한 방식은 방해하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라고 하여, 즐겁게 사는 것은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며 이는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