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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차한잔의 여유

당경 취면(唐庚 醉眠)

당경(唐庚 1070 ~ 1120년)은 북송시대 중국 미주(眉州) 단릉(丹棱 : 현재 四川省 眉山市 丹棱縣) 태생으로 자(字)가 자서(子西)이며 사람들이 노국선생(魯國先生)이라 불렀다고 한다. 휘종(徽宗) 때 종자박사(宗子博士)가 되었고, 재상 장상영(張商英)의 천거로 승진하였다가 그가 실각하자 혜주(惠州 : 현재 광동성 혜주시)로 귀양을 가기도 하였다. 소식(蘇軾:1037-1101년. 東坡)을 매우 존경하였고 또 그와 고향이 같은 데다 같은 혜주 땅에 귀양을 갔다고 해서 ‘작은 동파(小東坡)’라 불렸으며, 중국 청대(淸代)의 전종서(錢鍾書)는 그처럼 ‘농교성졸(弄巧成拙 : 지나치게 기교를 부리다가 도리어 서툴게 됨)’한 곳이 있긴 하지만 그는 “당시 아마 가장 간결하고 치밀한 시인”일 것이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잘 다듬어진 조각상 같은 느낌이 드는 당경의 시 취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취면(醉眠 : 취해서 잠들다)

山靜似太古(산정사태고) 산은 고요하여 태고적과 같고

日長如小年(일장여소년) 해는 길어 하루가 작은 한 해만 같네  

餘花猶可醉(여화유가취) 남아 있는 꽃에 아직도 취할 만하고

好鳥不妨眠(호조불방면) 귀여운 새들도 잠을 깨우지 않네

世味門常掩(세미문상엄) 세상 일에 관심 없이 문은 늘 닫아 놓았고

時光簟已便(시광점이편) 계절의 풍광에는 대자리가 이미 잘 어울린다네

夢中頻得句(몽중빈득구) 꿈속에 자주 좋은 시구 떠오르지만

拈筆又忘筌(염필우망전) 붓 잡으면 금새 시구를 잊어버리네

 

당경이 취면을 지을 당시 혜주 땅에 유배 중이어서 조정의 당파(黨派) 논의에 갑론을박(甲論乙駁) 추궁 당하지 않으려고 이웃과도 알고 지내지 않으려고 하던 때였다고 한다. 마지막 ‘망전(忘筌)’이란 말의 ‘전’은 ‘전(詮)’의 차용으로 보아야 자연스러우며, 이는 어떻게 말할지 말을 고른다는 말이다. 연보에 의하면 당경은 1110년 40세 때 유배령을 받고 길을 떠나 이듬해에 아성(鵝城 : 혜주)에 당도하였고, 성남이씨(城南李氏)의 산원(山園)에 더부살이를 하였다. 거기서 그는 기오재(寄傲齋)나 역암(易庵)을 짓고서 책을 읽거나 글을 지으며 서남쪽의 풍호(豊湖) 주변을 유람하며 지내다가 45세 때인 1115년 6월에 유배가 풀리고 복직되어 북쪽으로 돌아갔다고 한다.